BTS와 그들

Map of the Soul: PERSONA, Track-by-track Review

1. Intro: Persona
철학적 서사의 웅장함, RM의 지적인 면모의 힘

앨범의 인트로일 뿐 아니라 ‘영혼의 지도’라는 큰 서사의 첫 질문이 된 ‘나는 누구인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힙합 트랙. 트랩 비트와 록이 만드는 사운드의 시너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철학적 서사는 아이돌 음악에서는 일찍이 듣기 힘들었던 웅장한 무게감을 담고 있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큰 만큼 자칫 유치하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가 적당한 선에서 균형이 잡혀 있는데, 이는 플로우 위주의 잔기교에 의지하지 않고 늘 우직하게 정석적인 방식을 고집한다는 RM의 랩 스타일과 그의 가사가 가진 지적인 면모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결과라 말할 수 있다.

상찬과 비난의 어느 쪽에도 마음 두지 않고 ‘칵 퉤’ 침을 뱉은 채 온전히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자아를 찾기 원하는 모습 역시도 영락없는 그의 면모다. 물론 이 인트로는 단순히 RM 개인만의 이야기는 아니며,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에 의해 떠받들어지고,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까내려질 수밖에 없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가식’이 아닌 ‘나’라고 긍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BTS의 솔직한 고백인 것이다.


2.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타이틀곡다운 완성도, 요소요소의 유려한 연결

앨범 평가에 있어 타이틀곡은 익숙하고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종종 평가 절하된다. ‘Boy With Luv’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앨범 내에서 가장 탁월한 완성도를 가진 이 곡이 별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곡을 이루는 모든 요소요소들이 이음새 없이 유려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곡은 BTS 곡 중에서도 드물게 보컬과 랩의 개별적인 도드라짐이 사운드적으로 최대한 억제돼 있다. 보컬 라인의 모든 퍼포먼스는 각각이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멜로디의 스무드한 느낌을 살리는 데 치중하고 있으며, 랩 파트 역시 메시지보다는 사운드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글로벌 보이밴드로 거듭난 이들의 첫 싱글이라는 점에서 미국 현지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 위화감이 없도록 조율된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맥락에서 할시(Halsey)의 피처링은 짧지만 반복되는 코러스의 멜로디를 호소력 있게 구현함으로써 BTS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조차 거부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배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곡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라면 전반적으로 발랄하고 역동적인 사운드와 그에 걸맞은 화사한 비주얼을 내세움에도 곡에 일말의 서글픔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 곡이 그들이 이룬 모든 화려한 성공의 열매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그들을 지켜준 소중한 이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본다면 그 느낌은 한층 더 미묘해진다.


3. 소우주 Mikrokosmos
디스코그라피 사상 처음 시도된 1980년대 뉴웨이브 사운드

BTS는 그동안 다양한 스타일의 일렉트로 팝 사운드를 시도해왔다. 하지만 ‘소우주’는 디스코그라피 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본격적인 80년대 뉴웨이브 사운드라는 점이 흥미로운데, 마치 80년대 뉴웨이브의 명곡인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의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를 연상시키는 넘실대는 셔플(shuffle) 리듬과 청량한 사운드가 특징이다.

Mikrokosmos는 ‘소우주(小宇宙)’를 뜻하는 microcosm의 변형된 표기로,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가리킨다. ‘우주’라는 단어가 주는 광활함과 덧없음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회와 그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연결성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 자기애의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늘 팬들과의 연대감을 강조해왔던 BTS의 세계관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삶, 인간 그리고 관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선율만큼이나 아름다운 곡이다.


4. Make It Right
씁쓸한 멜로디에 삶의 본질적 질문을 얹다

신시사이저의 반복적인 프레이즈가 만드는 비트의 첫인상은 비교적 경쾌하지만, 제목에 담긴 ‘후회’의 정서를 씁쓸한 멜로디가 정확하게 그려내며 곡의 느낌은 복잡 미묘하게 발전한다. 쉼 없이 달려온 와중에 내버려둬야 했던 수많은 것들, 늘 알면서 소홀히 해온 모든 것들에 대한 늦은 후회가 그려지며, 이는 사막, 바다 그리고 구원 등 BTS의 가사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돼온 키워드와 만나 일체감을 준다.

결국 이 곡 역시 단지 세속적인 사랑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삶의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관한 것임을 짐작케 하며, 한편으로는 그들 커리어와 성공의 본질을 이루는, 하지만 종종 당연하게 여겼을 법한 팬들과 이루고 있는 관계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비친다. 조합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서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보컬 라인의 팔세토 창법이 곡이 가진 묘한 서글픔의 정서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5. Home
BTS에게 Home은 팬(ARMY), 랩 라인과 보컬 라인의 퍼포먼스가 가장 유기적

Make It Right의 정서는 Home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떠나옴’과 ‘돌아감’의 테마를 중심으로 구성된 Home은 우선 그 제목의 이중적인 의미가 흥미롭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 즉 ‘house’와 대비되는 ‘가정’ 혹은 ‘고향’의 의미가 핵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가정, 부모님이 반겨주는 고향 그리고 절대자가 데려갈 ‘본향’의 다양한 의미로 확장이 가능하다.

물론 이 앨범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생각해본다면 그 가장 중요한 의미로 ‘팬’의 존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 곡은 결국 굳이 허락을 받지 않아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날 사랑하는 사람이 늘 웃으며 맞이해줄 것이라 믿는 곳 그리고 굳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해해줄 이들로서의 ‘Home’에 대한 이야기다.

음악적으로 Home의 가장 독특한 측면은 최신 트랩 비트와 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 턴테이블의 잡음과 후렴부의 리드(reed) 음원이 90년대와 2000년대 힙합의 바이브를 동시에 환기한다는 사실이다. 앨범 전체를 통틀어 랩 라인과 보컬 라인의 모든 퍼포먼스가 가장 유기적이고 자연스럽게 조화된 트랙이기도 하다.


6. Jamais Vu
정국의 절제된 감정 표현, 진의 호소력, 제이홉의 부드럽고도 강한 래핑

제이홉, 진, 정국으로 이뤄진 솔로이스트들의 조합은 ‘미시감'을 뜻하는 프랑스어 제목 Jamais Vu만큼이나 독특하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키보드 소리의 미약함이 마치 ‘remedy’를 간절히 바라는, 기운을 다한 심장 박동을 묘사하는 듯하며, 기타와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브릿팝 특유의 코드워크가 가진 서정성이 공간감이 인상적인 후렴의 극적인 도약을 차분히 예비한다.

보컬 라인은 각자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리며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정국의 보컬이 세련된 테크닉을 바탕으로 절제된 감정 표현을 통해 확보하고 있다면, 진은 특유의 짙은 분위기와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곡의 슬픔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제이홉의 래핑은 부드러움과 강함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기본적으로 보컬 곡인 이 곡에서 각각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동시에 그 이야기를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7. Dionysus
완연한 성숙미, ‘옹헤야’ 민요 차용으로 한국 뮤지션 정체성 분명히

〈영혼의 지도〉를 탐색하는 첫 번째 챕터는 뜻밖에 술(혹은 예술)에 취한 한마당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칼 융의 이론에 따라 이후 페르소나와 대비를 이룰 ‘그림자’를 찾는 여정이 이어질 것이라 예상해본다면 마치 출전을 앞둔 전야처럼 일말의 어두움도 감지된다. 이 곡이 음악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전반적으로 팝 사운드에 치중한 이번 앨범에서 인트로와 짝을 이뤄 시작과 끝 모두를 자신들의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몰아치는 에너지감은 힙합 아이돌 시절의 초창기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랩과 보컬의 모든 디테일에서 완연한 성숙미를 보여주고 있어서 그 시절의 곡들과 비교해보면 성장의 폭을 느낄 수 있다. ‘옹헤야’라는 민요의 구절을 차용함으로써 IDOL의 ‘얼쑤’에 이어 한국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한껏 내비치고 있는데, 타령조의 느낌을 주는 후렴구 멜로디와 가사가 자연스런 어울림을 만들어낸다. 세계 최고의 팝 그룹으로 올라선 지금에도 여전히 그들이 걸어온 길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쾌한 작품이다.
  •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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