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하며

익선동의 두 얼굴

공간의 감성이 생각의 결을 움직인다고 믿기에, 저희 부서는 상황이 되면 매달 첫 아이디어 회의는 좀 색다른 곳에서 하려 합니다. 거쳐 간 이동 회의실 몇 개만 공개해볼까요? 성북동 독립서점 ‘부쿠’, 연남동 갤러리 카페 ‘챕터 투’, 문래동 ‘올드문래’, 강화도 ‘조양방직’….

이번 달 회의는 종로구 익선동에서 했습니다. 마침 스페셜 이슈가 ‘뉴트로’여서 뉴트로의 넘버원 성지 순례 겸 간 것이지요. 익선동 골목에 들어선 순간, 과연 동공이 확장됐습니다. ‘와~!’ 탄성이 무의식적으로 터져나오면서 고개가 오른쪽, 왼쪽 구십 도로 왔다 갔다 움직였습니다. 완전히 딴 세상이더군요. 볼거리도, 먹거리도 다양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섞여들어 만들어낸 감성은 생경하고 신기했습니다. 촌스러운 듯 멋스럽고, 익숙한 듯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첫인상의 강렬한 끌림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평일임에도 줄 서서 다녀야 하는 불편함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말도 안 되는 바가지 요금에 스멀스멀 기분이 안 좋아지더니, 급기야 황당해졌습니다.

쇼윈도 너머 보이는 투박한 가마솥 빵의 비주얼에 반해 끌리듯 들어갔습니다. 가마솥 하드웨어와 프로마쥬 소프트웨어와의 만남이라니. 기이한 조합에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음식 냄새에 끌려 이성을 잃은 치히로의 엄마와 아빠처럼요. 하지만 메뉴판을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손바닥 크기의 프로마쥬 빵 하나에 2만 원 내외, 커피 한잔에 1만 원 내외라니요. 넷이서 커피 한잔에 빵 두 개 시키면 8만 원 정도가 나온다는 계산입니다. 게다가 1인 1메뉴 주문이 원칙입니다.

‘이건 좀 아닌데, 우리만 그런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비슷한 반응이 들려왔습니다. “나갈까?” “에잇, 그냥 먹자. 한 번인데 뭐.” 그럼에도 북적북적, 회의를 할 만한 분위기도 아니어서 메뉴판을 덮고 나왔습니다. “다음에 올게요”라는 거짓말을 남기고. 그 빵집뿐 아닙니다. ‘옛것’의 탈을 쓴 ‘새것’의 가치는 생각 이상으로 비쌌습니다. 호떡 하나에도 1500~2500원. 뭐든 다른 지역의 두 배 정도 비싼 듯했습니다.

경험과 공간의 가치에 지불하는 셈 치더라도, 익선동의 입장료가 더해졌다 치더라도,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뻔한 현상을 들먹이지 않아도 익선동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더군요. 한번 와본 사람은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 뉴트로라는 소비 트렌드를 이끄는 주체가 1020세대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세대는 ‘가성비’와 ‘가심비’를 꼼꼼히 따지는 세대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10년이 멀다 하고 세대 특성이 달라지고, 1년이 멀다 하고 트렌드가 변하고 있지요. 2019년 상반기 현재, 뉴트로는 우리 일상 곳곳을 파고드는 거대한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뉴트로의 생명력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나 기억할 것이, 뉴트로의 존재 이유는 ‘즐거움’입니다. 신기하고 촌스러운 감성 자체를 즐기는 즐거움. 그 즐거움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닌 것이 되면 그 트렌드의 생명은 끝입니다.
  •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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