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는 누구?

‘Z세대의 힙플레이스’ 커피한약방

글·사진 : 서경리 기자

‘핫플’과 ‘힙플’의 차이를 아는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장소를 ‘핫플레이스’, 줄여서 핫플이라고 한다면, ‘힙플’은 대중적이기보다 자기만의 취향, 독특한 문화에 더 집중한 장소를 말한다. 커피한약방은 Z세대에서 입소문 난 ‘힙플’이다.
오가는 이들의 어깨가 맞닿을 만큼 좁은. 낡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을지로3가에 커피한약방이 있다.
커피한약방은 ‘레트로’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전인 2012년 문을 열었다. 커피한약방 자리는 조선시대 허준의 ‘혜민서’가 있던 터다. 주인장의 작명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 커피한약방 맞은편에는 디저트를 파는 혜민당이 있다. 커피 볶는 주인장 강윤석(41) 씨는 “동네 어르신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쉼터, 옛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주인장이 발품 팔아 수집한 고풍스러운 샹들리에나 자개장, 한약재를 담는 서랍장과 괘종시계 등이 카페 공간을 개화기의 어느 한때로 이끈다.

커피한약방에 들어서면 구수한 커피 향에 한 번, 벽면의 커다란 자개장에 두 번, 마음을 빼앗긴다.
1900년대 만들어진 네 폭짜리 자개장과 송나라 때 만든 고나무 테이블이 이 집의 자랑. 주인장은 이야기가 담긴 물건으로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주인장이 직접 스테인리스로 만든 원두 직화 로스팅 기계. 한 번에 500g의 원두를 구워낼 수 있는데, 커피 원두의 ‘손맛’을 살리기에 좋다고 귀띔한다.


직화로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만드는 ‘필터 커피’는 이 집의 자랑. 커피 값은 한 잔에 3800~4500원이다.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부모님을 모시고 오면 음료가 공짜다.


커다란 어항이 있는 다방 풍경을 고스란히 재현한 카페 내부.


커피한약방 바로 앞에는 디저트류를 파는 혜민당이 있다. 개화기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에 손님들은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혜민당에서 파는 달달한 빵.


한약재를 담던 수납장. 커피한약방의 낡은 손잡이를 돌리고 들어가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자개장과 오래된 전등, LP판까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기 힘든 소품들이다.



커피 볶는 남자, 강윤석 커피한약방 대표


나는 을지로 골목이 좋다. 골목에 들어선 순간 시간이 과거로 미끄러지는 기분이랄까.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찾았던 을지로는 샛노란 나팔바지 입은 모던 보이가 활개 치던 동네였다. 컬러풀한 패션에 외래문화가 묘하게 뒤섞인. 커다란 어항이 있는 다방에서 중절모의 노 신사가 앉아 커피 마시는 모습이 그리 좋을 수 없었다. 을지로 좁은 골목 안 커피한약방은 내 안에서 끄집어낸 꿈의 기억이다.

춤을 좋아했다. 예고를 졸업하고 유니버시아드 발레단에 들어간, 당시로선 보기 드문 남자 무용수였다. 20대에 고질적인 발목 부상이 ‘꿈의 발목’을 잡으며 춤이 아닌 뮤지컬 무대로 발길을 돌렸다. 〈빌리 엘리어트〉 〈에어포트 베이비〉 〈원스〉 등이 최근 출연작. 배우 인생 30년을 지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배우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무대는 화려하지만, 주머니 사정은 초라한 게 현실. 돈을 벌 요량으로 무대 세트 제작을 도우며 틈틈이 목공 기술을 익혀 지금은 목조 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배우와 건축가의 겸업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새벽에 건축 현장에서 나무를 깎고 오후 5시면 무대에 오른다. 무대 분장을 지우고 나면 밤 12시.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현장으로 나간다. 커피한약방을 시작하며 낮에 커피 볶는 일상이 더해졌다.

꿈을 잃고 방황하던 20대. 캐나다의 한 시골 마을에서 원두커피를 처음 경험했다. 백발노인이 볶은 커피 향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입에는 쓰지만, 코에 닿은 ‘꼬시시’한 향이 좋았다. 오래된 그 기억이 지금까지도 명징하게 남는다. 그때부터 ‘커피 로스팅’을 꿈꿨다.

건축과 연극, 커피는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커피 또한 콩을 태워 향을 만드는 일이기에 창작이나 다름없다. 나무와 커피의 향도 꽤 닮았다. 추운 겨울이면 건축 현장에서 종종 나무를 태울 때가 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나무에서 백발노인의 볶은 커피가 떠올랐다.

커피 테이스팅은 ‘창조적 교류’다. 갖가지 방법으로 볶은 커피가 상대의 취향과 맞닿았을 때의 충족감. 연극은 끝났지만, 배우의 감정이 잔상으로 남는 것과 같은. 거기서 새로운 퍼포먼스가 생긴다. 단골로 가는 소줏집의 소주가 더 맛있는 이유는 공간에 담긴 정서 때문이 아닐까. 한 잔의 커피에 어떤 감성을 넣을지는 공간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도 하나의 창조다.

“나의 꿈은, 몸의 눈이 아닌 내면의 시선이 머무는 방향을 좇는다. 누군가의 말을 따르기보다 심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무엇을 꿈꾸고 싶은지 몰두한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뭔지에 집중하는 일. 오늘도 난 새벽에 나무 깎고 낮엔 커피 볶고 해가 지면 연극 무대에 오른다.”
  •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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