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프로젝트

《#일상의 파괴》 작가 김민수

내 청춘의 초상, 서연에게

글·사진 : 서경리 기자

“파괴라는 어휘는 손상, 와해, 파멸의 유사어입니다. 부정적 의미가 강하죠.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무너짐 없이 새로움이 움트지 않았고, 새로움이라는 것도 결국 또 다른 새로움 앞에 퇴색하고 무릎 꿇었습니다. 인생 역시 크게 보면 별반 다르지 않아요.”

책 《#일상의 파괴》를 쓴 김민수(33) 작가는 ‘파괴는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건설의 시작’이라 말했다. 서른 무렵 일상이 무료할 때 그는 ‘일상의 파괴’를 꿈꾸며 쿠바로 여행을 떠났다.

김민수 작가에게 쿠바는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는 쿠바를 “음악이 있다면 낯선 누구와도 춤을 추고, 작은 것에 크게 기뻐하며 웃고, 솔직하고 꾸밈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했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이상한 나라”라고 묘사했다. 어느 순간 그는 “시간이 멈춘 듯하면서도 심장이 빠르게 뛰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에 매료됐다.

“쿠바에서 저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렵기도 했지만 용기 내어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을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책 《#일상의 파괴》는 남자 주인공의 오랜 친구이자 반려자인 ‘서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쿠바를 여행하는 동안 자신의 무너진 일상을 덤덤한 말투로 되짚는다. 그 안에 쿠바에서 만난 자유분방한 사람들과 이국적인 풍경을 적절히 녹였다.

서연은 허구의 인물로, 작가의 ‘청춘’을 은유한다. 서른 살의 고민이자 과거의 허물, 젊은 날 감정의 집약체다. “서연은 작명소에서 1순위로 꼽히는 이름으로, 주변에 흔히 있는 어느 누구의 평범한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김민수 작가는 이 책을 “에세이와 소설 그 언저리의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무너진 일상도 시간이 지나 치유되듯 사람이 떠난 자리에 또 하나의 성장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작가의 여행기이자 한 남자의 성장기이면서 청춘의 회고록이다.

“여행을 다녀왔다고 인생이 크게 바뀌는 건 없었어요. 다만 다녀오고 나서 문득문득 그 기억을 추억하는 즐거움이 있죠. 짤막짤막 다녀온 여행이 인생의 긴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일생을 사는 최고의 자산이죠.”


그토록 원했던 영화감독이지만…


김민수 작가는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을 꿈꾸며 영화 시나리오나,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왔다. 중학교 3학년 때는 EBS에서 주최하는 어린이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장애를 가진 친구와 우정을 쌓아가는 내용으로, 전문가의 각색을 거쳐 〈친구〉라는 제목으로 방송됐다.

“중학교 때부터 내가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어보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대학에 가서 제대로 영화를 배우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담임선생님과 상담하니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을 먼저 알아야 한다며 심리학과를 추천해주셨습니다.”

학창 시절 그는 내성적이었다. 낯가림도 심해 친해지기 전까진 말도 잘 못 붙였다고 한다. 특별히 튀지 않고 말썽 한 번 피워본 적 없는 그는 유독 꿈을 이루는 일에는 대범했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심리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방황하다가 부모님 도장을 훔쳐 자퇴신청서를 내고 군대에 갔습니다. 제대 후 영화과에 편입 원서를 넣었지만 다 떨어졌어요. 결국 부모님께 이실직고하고 다시 자퇴했던 학교로 돌아갔죠. 그래도 미련을 못 버려서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단편영화를 찍었어요.”

길거리에서 전단을 돌리거나 자동차 공업소에서 부품을 정리하는 등 잡다한 일을 하며 영화 제작 자금을 마련했다. 영화를 위해 촬영감독과 배우를 섭외하고 서울에서 촬영 장비를 대여했다. 학교 동기와 후배들을 스태프로 대동하고 충남 태안까지 가서 영화를 촬영했다. 나이 스물다섯일 때다.

“‘신에게도 선과 악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 시나리오였는데, 결과물이 습작 수준에도 못 미쳤습니다. 촬영기술, 연기, 편집 모든 부분이 엉망이었어요. 제 연출력이 부족했던 거죠. 영화를 만들면서 글을 쓸 때만큼의 재미를 못 느꼈어요. 그때 알았죠. 내가 하고 싶은 건 글쓰기지 연출이 아니구나. 영화감독의 꿈을 버렸습니다.”


착한 마음으로 겸손한 글을 쓰는 사람

연출 욕심을 버리고 나니 글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꾸준하게 글을 쓰면서도 공모전에 노크해 상도 종종 받았다. 2014년 〈날 버린 엄마의 집〉으로 전국창작희곡공모전 금상을 받았고, 2015년 〈아버지의 방〉으로 전국연극제 희곡상, 2017년 〈결혼식 일주인 전〉으로 원주창작희곡공모전 금상을 받았다. 〈화성행 편도티켓〉은 2017년 KBS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됐고, 군 복무 시절 구상한 시나리오 〈다큐멘터리, 진실에 대한 모독〉은 후에 영화 〈트릭〉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라디오 드라마 〈가출〉 〈끝과 시작〉, 연극 〈감정의 몰락〉 〈천원 상담소〉 등을 썼다.

“사실 희곡이 재밌어요. 영화 시나리오가 ‘장면의 문학’이라면 희곡은 ‘대사의 문학’이죠. 인간 심리를 묘사하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 안에서 낯선 소재를 찾죠. 기존의 접근법과 다른 방식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특정 장르를 잘 쓰기보다 소재에 맞춰 다양한 장르를 쓰고 싶어요.”

김민수 작가는 틈틈이 글을 쓰며 대구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동 대학원에서 재활심리학과로 석사를 마친 후 지금은 울산의 한 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상담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양대 대학원에서 대중문화 시나리오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꿈은 ‘착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글을 쓰며 가장 경계하는 건 잘난 척이다. 쉬운 단어를 어려운 말이나 한자어로 푸는 건 ‘글쓴이의 오만’이라고 말했다. 쉬우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그가 말한 ‘겸손한 글’이다.

“‘열여섯부터 글쓰기를 시작 했어요. 작가라는 호칭은 아껴두고 있는 말이에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 평생 기억되고 싶습니다.”
  •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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