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프로젝트

민화작가 김민수

슈퍼맨과 배트맨, 샤넬과 루이비통… 나만의 민화 세계를 만들다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김민수
대구대 서양화과와 대학원 졸업. 대구대 미술디자인대학원 조형예술학 박사. 서울, 대구, 중국 베이징·청도, 이탈리아 밀라노 등에서 20차례 개인전. 중국과 인도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중국 베이징상상국제미술관, 중국문화원, 중국 차박물관, 아랍에미리트 대사관, 대구대박물관 등에서 작품 소장.
민화를 활용한 독특한 그림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김민수 작가. 그는 어느 날 선배에게 “왜 내 그림이 좋다는 이야기보다 ‘김 작가 그림을 걸어놓으니 일이 잘 풀린다. 사업이 잘되고 돈을 잘 번다’는 사람이 많을까요?”라고 하소연했다. 선배는 “그림이 팔리지 않는 것보다 그게 좋지 않아? 그리고 원래 그림의 역할이 그게 아니었어?”라고 말했다.

구석기 사람들은 동굴 벽에 사슴, 들소 같은 동물을 그리면서 사냥이 잘되기를 기원했고, 우리나라 민화에도 부귀영화와 장수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김민수 작가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복을 빌어주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김민수 작가가 민화를 활용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다.

“외가에 가면 고가구나 도자기 같은 옛 물건들이 많았고 어머니가 다도를 하셔서 어릴 때부터 전통문화를 쉽게 접했습니다. 한복을 입고 꽃신을 신으면 어머니가 한복과 꽃신의 전통 문양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어요. 어릴 때는 그런 이야기가 지루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제가 그것을 그리고 있네요.”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어떤 그림을 그릴까?’ 고민할 때 외할머니가 빨간색 보자기에 한 땀 한 땀 수놓은 전통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색 바탕과 전통 문양에 모두 이끌렸다.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민화를 연구했고, 빨간색 바탕 위에 호랑이, 모란꽃 같은 전통 문양을 그렸다. 지금처럼 민화가 각광받지 않던 때였고, 빨간색 바탕에 그리는 작가는 더더욱 없었다.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전시 기회가 많아졌고,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이 20대 작가인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 2008년부터 1년간 중국 베이징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중국 전시가 많아졌다. 지금 그는 국내보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더 인기 있는 작가가 됐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중국 작가들과 금방 친해졌어요. 중국 사람들이 빨간색을 좋아해서인지 제 그림을 금방 좋아했습니다. 제가 외국 화가가 아니라 중국 내 다른 지역에서 온 화가로 여길 정도로 친숙하게 느끼더라고요. 중국은 허름한 우동 가게도 그림 한 점씩은 걸어놓을 정도로 그림을 좋아합니다. 제가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먼저 반기지요.”


스타벅스, m&m초콜릿, 하이힐…

영웅부적(Bullu line)_ 117x91cm, Acrylic on Canvas,2018
그는 민화가 ‘보는 그림’일 뿐 아니라 ‘읽는 그림’이기도 해서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무명의 화가가 서민들을 위해 그린 민화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신앙과 풍속, 해학과 풍자가 담겨 있다. 색채와 문양 하나하나마다 의미와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는 전통 민화의 형식을 답습하기보다 현대인의 생활과 정서에 맞추어 재해석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을 계속 내놓는다. 소재와 도구도 그렇다. 그는 한지에 전통 안료가 아니라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다. 아크릴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조차 답답해 공업용 드라이어로 말리면서 그린다고 한다.

“동양화 물감을 써보기도 했지만, 차분한 색감이 저와 맞지 않았어요. 제가 좋고 싫은 게 분명한 성격이라 중간이 없거든요. 색감도 선명한 게 좋아요. 전통 민화를 이론적으로 공부하긴 했지만, 그리는 법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기 때문에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 같아요.”

민화에서 출발했지만 틀 안에 갇히지 않고 소재나 구성이 자유분방하다.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입신출세를 의미하는 닭,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호랑이와 용, 부부 화합을 뜻하는 원앙 등 전통적인 문양도 그리지만, 스타벅스 커피나 m&m 초콜릿, 하이힐 등 작가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몽땅 그림에 집어넣는다.

영웅부적-자개라인_ 65×53cm, Acrylic on Canvas, 2018
민화 ‘까치와 호랑이’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을 보면, 까치가 호랑이에게 신문을 읽어주거나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들으면서 소식을 전해준다. 까치는 호랑이보다 작은 존재이지만 높고 멀리 날기 때문에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작가의 해석으로, 장난기가 느껴진다. 캔버스를 복숭아로 가득 채우면서 풍속화나 춘화의 에로틱한 장면을 집어넣기도 했다. “복숭아는 장수를 상징하는 과일이면서 음양이 같이 있어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라는 설명이다.

나날이 글로벌화하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보여주듯 그의 그림에는 러시아 전통 인형, 행운을 상징하는 일본의 고양이 인형에 미국 팝아트 작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까지 여러 나라 물건들이 함께 등장한다. 루이비통이나 샤넬 가방, VIP 신용카드 등 현대인의 부귀영화를 대표하는 물건들도 그려 넣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물질주의적인 현대문명을 비꼬는 게 아닌가?”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잘살고 싶은 게 보통사람들의 솔직한 욕망 아닌가요? 그런 욕망을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복 받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린다.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한 다음 부적을 써주는 마음과 같다고 한다. 그게 서민들의 염원을 담아 민화를 그렸던 옛날 무명작가들의 마음 아니었을까?

그는 유독 빨간색을 좋아한다. 빨간색은 에너지의 근원이 되는 색이자 생명과 부귀,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닌 색이라면서 “빨간색을 입으면 에너지가 솟는다”라고 말한다. 무수한 붓질로 바탕에 빨간색을 입히면서 ‘복을 담는다’고 생각한다. “밝은 빨강은 생명의 색이지만 어두운 빨강은 수난을 의미하는 색이에요. 빨간색은 칠할수록 어두워지기 때문에 여러 겹 칠하면서도 밝은 빨강을 유지하는 저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한・중 오가며 개인전 20차례

호랑이가 전하는 현대의 부귀영화_ 150×150cm, 2점, Acrylic on canvas, 2010-2011
그의 그림에는 종교적인 갈등과 차별이 없다. 예수와 열두 제자, 성모마리아, 부처와 사천왕, 중국에서 신으로 받드는 관우와 장비, 무당들이 받드는 무신들까지 동서양의 신이 총출동한다. 작가는 ‘신들의 반상회’라고 표현한다. 4~5년 전부터는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 등 영화와 드라마 속 영웅, 만화 주인공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책장에 놓인 물건들을 그리는 민화인 책가도(冊架圖)도 다양하게 활용한다. 복을 담는 항아리에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전통 문양을 넣어 책장에 진열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성당의 제단화나 만화 형식으로 과감하게 변용하기도 한다.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강렬한 색감과 명료한 선이 두드러지고, 대중적인 이미지와 만화의 형식을 차용한다는 점에서 팝아트와 일맥상통하는 점도 있다.

“어릴 때 보자기를 두르고 슈퍼맨 흉내를 냈고, 원더우먼도 좋아했어요. 영화 속 영웅이나 만화 주인공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나타나 우리를 보호해주면서 수호신 역할을 하잖아요? ‘그런 존재들을 모두 모아서 복을 빌어주는 부적처럼 그려야지’라고 생각했어요.”

전통 문양과 대중문화 속 영웅들을 세필로 그려 캔버스를 빈틈없이 채우면서 ‘영웅부적’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는 평면회화뿐 아니라 입체와 설치작업도 하고, 의류, 가방, 목걸이, 아트토이, 휴대폰 케이스 등 다양한 아트 상품도 만들고 있다. 대구 지하철과 버스에 그의 작품이 등장하고, 중국의 한 커피 회사가 그의 작품을 활용해서 선물용 패키지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의 관심사는 넓다. 대학 시절 미술치료를 복수 전공하면서 섬유, 도자기 등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한 우물을 파기보다 얇고 넓게 섭렵하기를 좋아해요. 알아야 할 것들을 조금씩 섭렵하면 다양하게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작가는 요즘 대구와 중국을 오가면서 작업하고 있다. 40대 초반 나이에 개인전을 20차례 열고, 단체전에 100여 차례 참여했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경계를 넘나들면서 경쾌하게 작업해온 작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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