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프로젝트

사진작가 김민수

‘검은 소’를 그리고 찍는 남자

글·사진 : 서경리 기자

© 김민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전에 없던 일을 꾸미는 데 희열을 느꼈다. 국내 최초로 스마트폰 사진전을 열었고, 1톤 트럭을 개조해 찾아가는 갤러리를 만드는가 하면, 창고를 개조해 문화 공간을 만들고 지역을 위한 재능 나눔 봉사단을 만들었다. 사진작가 김민수(53) 씨의 이야기다.

다부진 몸에 덥수룩한 턱수염, 진한 광주 사투리. 김민수 작가의 첫인상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그를 만난 건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일주도로 옆, 감귤 창고를 개조해 만든 문화예술 공간 ‘몬딱’에서다. 몬딱은 제주어로 ‘모두’ ‘몽땅’을 의미한다. 문화예술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재능을 나누자는 뜻에서 만든 공간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과 ‘재능기부’ 모임을 만들어 지역 봉사를 다니거나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민수 작가가 제주와 연을 맺은 건 2015년 봄, 지인의 소개로 제주 토종 소인 ‘흑우(黑牛)’를 사진으로 기록하면서부터다. 이후 꾸준히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사진작업을 이어오다 두 해 전 제주살이를 결심했다.

4m 높이, 231㎡(70평) 규모의 창고 벽면에는 그렁그렁한 눈망울의 검은 소가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뭇한 바탕 위로 빛을 받아 빛나는 흑우의 털이 한 올 한 올 날카롭게 되살아났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흑우 작품은 뜻밖에도 목탄화였다.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네요? 그림도 그리시나요?”라는 기자의 우문에 그는 “사진보다 그림을 먼저 시작했는걸요” 하며 껄껄 웃는다. 김민수 작가는 50여 년 전 기억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글보다 그림 먼저

김민수 작가.
‘미장원’. 4살의 김민수가 처음 그린 그림은 동네 미장원 간판이다. 글을 배우기 전 그에게 한글은 그리기 좋은 형태의 하나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일찍이 그의 소질을 알아보고 글을 가르치기 전부터 미술도구를 손에 쥐여주었다. 아버지는 1남 1녀 중 둘째인 그를 유독 아꼈다고 한다. 이름 ‘김민수’도 아버지가 직접 지었다. 가을하늘 민(閔)에 물가 수(洙) 자를 쓰는데, 그는 ‘수채화처럼 편안한 이름’이라고 말했다.

강원도에서 태어난 그는 음악 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전남 진도로 이사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내내 그림으로 상을 받으며 이름을 날렸다. 미대 진학을 위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아시안게임이 열린 1986년 성균관대 미술교육대학에 진학했다.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해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김민수 작가의 첫 직장은 넥타이, 스카프 등 섬유제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섬유산업이 호황일 때라 중소기업이었지만 꽤 수입이 좋았다. 그는 섬유제품 중에서도 남성 의류 브랜드 ‘닥스’의 넥타이 디자인을 맡았다. 그가 디자인한 패턴이 제법 히트하며 회사에서 인정받았다. 4년여 동안 섬유디자이너로 활동한 그는 작업차 들른 회사의 시화공단 공장에서 날염 프린트에 매료됐다. 기존 넥타이가 색실로 원단을 짜는 선염 방식이었다면 날염은 원단에 프린트하듯 염색하는 방식이다. 무게는 선염보다 가벼우면서도 다양한 프린트를 구현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는 그 길로 회사로 돌아가 공장으로 보내달라고 청했다.

“주위에서 미쳤다고 했어요. 당시 공장 조색작업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주위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3년 동안 날염 프린트를 배웠습니다.”

선염과 날염 모두를 체득한 그는 창업에 자신감이 생겼다. 30대 초반, 아버지가 간암으로 쓰러지면서 병수발을 위해 회사를 관뒀고, 3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본격적인 준비를 거쳐 섬유디자인 회사를 창업했다. 사업 수완이 좋아 삼성 호암아트갤러리나 삼성문화재단에 들어가는 아트상품 제작을 맡아 했다. 작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스카프, 넥타이 등에 옮기는 작업이었는데, 공장에서 날염을 배웠기에 손쉽게 일을 따낼 수 있었다.


2002 월드컵, 히딩크가 바꾼 운명

김민수 작가가 만든 아트 상품.
김민수 작가에게 2002년은 어느 때보다도 뼈아픈 기억으로 남는 해다.

“2000년 초반에 축구협회에 넥타이를 납품했어요. 축구공을 작게 수놓아서 만든 넥타이였는데, 선물용으로 많이 쓰였어요. 곧 있으면 월드컵이니 돈 좀 벌겠다 기대했죠. 히딩크 감독이 국가대표 감독으로 내정되고 나서 그가 쓸 넥타이를 주문받아 작업했습니다. 한데 번번이 넥타이가 무겁다고 자꾸 재주문을 하더라고요. 결국 그가 경기장에 매고 나간 건 다른 회사의 제품이었습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의 넥타이는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와 함께 사진에 포착됐고 한국 축구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하면서 ‘행운의 넥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김민수 작가는 ‘운이 참 안 맞네. 돈 버는 재주가 없구나’ 하고 넘겼지만 월드컵이 끝나고 불티나게 팔리는 넥타이를 보며 쓰린 속을 달래야만 했다. 이후 섬유산업이 불황기로 들어서며 그는 회사를 접었다.

김민수 작가가 취미로 사진을 시작한 건 마흔이 훨씬 지나서다. 섬유 디자인 회사를 접고 홈페이지 디자인 사무소를 운영하던 때다. 스마트폰이 처음 보급되던 때, 그는 길거리 풍경을 폰 카메라로 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새로운 장난감이었다. 가벼우면서 휴대성이 좋아 촬영에도 용이했다. 처음에는 그림 자료를 모으는 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점점 하루를 기록하는 일상이 되었다.

“출퇴근 길 하루 세 번, 아침 6시와 낮 12시, 저녁 6시에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렸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작업한 이유는 게을러지기 싫어서예요. 나 자신과의 약속이죠. 그게 데일리 아트가 됐습니다.”


유랑하는 사진 갤러리

문화예술 공간 ‘몬딱’.
묵묵히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올리다 보니 1년 사이 1000장이 넘는 사진이 모였고, 주위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진과 함께 짧은 단상을 올렸는데,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13년에는 삼청동에서 1년간 촬영한 1000장의 사진을 모아 개인전을 열었다. 스마트폰 사진만으로 연 전시는 국내 최초였다. 4개 벽면 빼곡하게 A4 사이즈의 사진이 걸렸다.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알게 됐어요. 바쁘게 살다 보니 자연과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치며 살아왔죠. 사진을 통해 삶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됐습니다.”

전시 이후에는 300여 장의 사진을 골라 포토에세이 《스마트폰, 일상이 예술이 되다》를 펴냈다. 출판 3개월 만에 1000권이 팔렸고, 곧이어 2부도 출간했다. 개인전과 두 번의 책 출간으로 언론에 소개되며 그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4년 여름, 김민수 작가는 재충전을 위해 새로운 작당을 모의했다. 14만km 주행거리를 가진 1톤 중고 트럭을 구입해 캠핑카 형태로 개조하고 스마트폰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싣고 다녔다.

“찾아가는 옥외 전시 ‘갤러리트럭 스마트폰 사진 기행’이죠. 작가가 관객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관객을 찾아가는 시도였어요. 제게는 새로운 활력이 되었습니다.”

유랑하는 트럭 갤러리는 환영을 받기도 했지만 때론 난처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활짝 펼쳐진 갤러리 트럭을 보고 놀라움과 새로운 시도라는 칭찬도 들었지만, 더러 불법 푸드 트럭으로 오해받아 쫓겨나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전시 의도를 설명하고 설득하며 허락을 받아야 했죠.”

그는 현장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스마트폰으로 사진 잘 찍는 법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았다. ‘제주 흑우’를 만난 것도 그 무렵이다.

“지인이 제주의 검은 소, 흑우를 사진으로 찍어달라 부탁했어요. 자료를 찾던 중 토종 검은 소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됐어요. 흑우에 대한 관심이 차츰 연민과 애정으로 바뀌어 제주 흑우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여 동안 ‘제주 흑우’를 기록한 사진을 2016년 5월 한 달 동안 서울에서 전시했고, 제주문화예술재단의 후원을 받아 제주도에서도 전시했다. 최근에는 사진에 기록한 흑우를 그림판으로 옮기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업 결과물을 2018년 12월 15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 이중섭창작스튜디오에서 전시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은 시작이 어렵고 힘들지만, 도전이 주특기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제주도 와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 해보고 있습니다. 나이 50까지 동분서주하며 살아왔어요. 우연히 제주 흑우를 만나면서 운명적으로 제주도에 발붙인 지금, 그동안 먼 날의 목표로 두었던 그림 작업에 매진해 보려 해요. ‘몬딱’에서 그림을 그리고 제주 흑우 갤러리도 겸하면서, 문화예술을 잇고, 나누고, 즐기는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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