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과 (간직)

‘뭉클스토리’ 이민섭・정대영 대표

부모님 자서전 만들면서 세대와 세대를 잇습니다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서울대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한 후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과정을 밟던 정대영 씨와 서울시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대기업에서 마케팅 일을 했던 이민섭 씨. 2016년 1월, 이민섭 씨가 서울대에서 조교로 일하던 정대영 씨를 찾아갔다.

“우리 부모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만들어주는 동아리를 조직하고 싶어 찾아보니 이미 그런 동아리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낸 후 찾아갔죠.”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던 정대영 씨는 이민섭 씨에게 대뜸 “이 일을 함께 사업으로 키워보자”고 제안했다. 예비사회적기업 ‘뭉클스토리’의 정대영(38) 이민섭(30) 대표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당황했죠. ‘사기꾼 아니야?’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의심하기에는 신분이 너무 확실했습니다.” 정대영 대표는 2012년부터 보통사람들이 자서전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동아리 ‘뭉클’을 꾸려가고 있었다.

“2010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내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네 살부터 열 살 때까지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로자로 일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 기억이 없어요. 아버지는 중동 생활 동안 계속 일기를 쓰셨고, 어머니에게 편지와 엽서도 많이 보내셨지만 자주 이사를 다니느라 모두 잃어버렸어요. 돌아가시고 나니 아버지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게 후회됐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부모님들의 자서전을 써드리는 동아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주말마다 신청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후 원고를 작성해 자서전을 만들었다. 자서전을 내고 싶다는 신청자는 계속 늘어났고, 대학생 봉사 모임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끼던 터였다. 이민섭 대표는 아버지를 병간호하면서 부모님의 자서전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입사하고 나니 다시 무한 경쟁이 펼쳐졌습니다. ‘여기 앉아있는 100명 중 잘해야 2명 정도만 임원이 된다’는 말을 듣고 ‘과연 저 길밖에 없을까?’ 회의가 들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면서 제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누구에게서든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정작 부모님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부모님께 자서전을 만들어드리겠다고 하니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자서전이냐?’ 하면서 반대하셨어요.”

얼마 후 그는 회사를 퇴직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신장을 기증하셨어요. 수술 전 1주일은 어머니 병실에서, 수술 후 2주일은 아버지 병실에서 지내면서 처음으로 부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동생들 뒷바라지, 결혼 후에는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접어야 했던 어머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또 부모님의 연애 이야기도 자세히 들었어요. 얼굴을 만져본 적도 없는 아버지를 씻겨드리면서 처음으로 마음 터놓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서전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는데, 계속 거절하셨어요. 평범한 사람들이 자서전 내는 것을 보면 마음을 바꾸실 것 같아서 자서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구청 등 단체 의뢰 많아

크라우드펀딩으로 자서전을 낸 파독 근로자, 인터뷰어들과 함께한 정대영(맨 오른쪽), 이민섭 대표(맨 왼쪽).
두 사람은 만난 지 두 달 만인 2016년 3월에 바로 법인을 설립하고 자서전 사업을 시작했다. 자서전 작성에 필요한 인터뷰어를 양성하기 위해 20명을 뽑아 4주간 교육하기도 했다.

“보통 20~30대가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인터뷰한 후 내용을 정리해서 자서전을 만듭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6·25, 민주화 과정 등 격동기를 겪으면서 압축 성장해왔기 때문에 세대마다 살아온 경험이 너무 다릅니다. 어르신들의 자서전을 만드는 과정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과정이자 각 가정의 역사를 통해 근현대사를 미시적으로 복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의 자서전을 만드는 과정에 자녀들도 적극 참여하면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죠.”

누구든 쉽게 자서전을 만들 수 있도록 비용도 낮췄다. 전자책으로 제작하면 170만 원, 단행본으로 만들 때는 기본 10권 제공에 200만 원이다. 비용을 더 부담하면 추가 인쇄를 할 수 있고, 맞춤형으로 더 고급스럽게 제작할 수도 있다.

“구청이나 한국교직원공제회 등 단체에서 의뢰할 때가 많아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파독 근로자들의 자서전도 만들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입견을 바로잡을 때도 많아요. 파독 근로자라는 말을 들으면 영화 〈국제시장〉을 떠올리면서 고달프고 힘들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만, 파독 간호사 중에는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하는 분도 많아요. 1926년에 태어나신 이석규 할아버지의 자서전을 만들 때는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손녀가 ‘우리 할아버지의 기록을 꼭 남겨야 한다’고 신청해서 만든 자서전이었죠. 이석규 할아버지는 초등교원 양성학교인 광주사범학교에 다니던 10대 시절, 무등독서회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했던 일을 떠올리셨습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이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전황을 알려주었고, 무등독서회 회원들이 밤새 그 소식을 전하는 전단을 만들어 거리에 뿌렸다고 해요. 그 때문에 고문을 당하기도 하셨죠. 자서전을 만들다 보면 우리 역사의 갈피갈피가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우리만 읽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는 연세대 학생이 찾아와 “윗세대의 경험을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가 중심이 되어 동아리가 만들어졌고, 독립유공자들을 인터뷰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고를 집필해 책으로 만들기까지 지원하기로 했어요.”


세대 갈등 해결 실마리


두 사람은 사업을 시작한 후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고 한다. 동아리 활동을 사업으로 전환하고 보니 비용을 들여서 자서전을 내겠다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동안 펴낸 자서전은 80여 권. 1년에 40~50권 정도를 출간하고 있다. 대신 과거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단체의 의뢰가 늘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찾기 어려운 동네가 많잖아요? 이전 모습을 기억하는 지역주민이 남아있을 때 구술로라도 그 지역의 역사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영상 촬영도 계획 중입니다. 짧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도 있고요. 자서전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있어요. 과거와 현재, 세대와 세대를 잇는 일이라는 점이지요. 서로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니 세대 갈등이 빚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모님, 어르신들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속속들이 알게 되면 현재의 모습도 훨씬 잘 이해하게 되지요.”

각자 다른 길을 걷다 ‘부모님의 자서전을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공통점 하나로 뭉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두 사람. 그들은 “이 일을 할수록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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