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과 (간직)

최진실 최가네 돌집게장 대표

외할머니 손맛 잇기 위해 스물다섯에 제주로 귀향했어요

글·사진 : 서경리 기자

간장게장은 보기보다 만들기 쉬운 음식이다. 간장 국물을 만들어서 숙성하고 게에 담는 단순한 과정이 전부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오히려 까다로운 음식에 속한다. 게 특유의 비릿한 냄새를 잡는 건 당연지사. 단맛과 짠맛의 적절한 조화가 중요하다.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게 포실한 다리 살을 맛 들이고 단단한 껍데기 밑 쓴맛은 적절하게 덮어줘야 한다. 제주 추자도 앞바다에서 잡은 황게로 간장게장을 만들어 상품화한 청년사업가 최진실(27) 씨의 인생은 간장게장 같다.
성장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단맛, 짠맛, 쓴맛이 적절히 섞인. 동국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직후 스물다섯 살에 제주로 내려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 한라산 동쪽 기슭. 표선면 성읍에 가면 독특한 건물이 하나 있다. 손바닥만 한 현무암을 촘촘히 쌓아 올려 만든 돌집은 거대한 성 같다. 1990년대부터 성읍민속마을의 흑돼지 맛집으로 명성을 얻은 ‘돌집식당’이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 하던 제주 총각 최영근 씨가 서울 처녀 강민선 씨와 결혼하고 귀향해 지었다. 부부의 세 자녀 중 첫딸이 바로 최진실, 최가네 돌집 게장 대표다.

어릴 적 최진실 대표에게 돌집은 생활 터전이자 가장 친숙한 놀이터였다. 온종일 볕을 받은 돌집은 저녁이 되어도 온기가 식지 않았다. 등을 기대면 온기를전해주는 돌과 통유리 창 가득한 파란 하늘, 햇살, 바람에 섞여 오는 바다의 짠 내가 어린 그에게는 세상 전부였다.

동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며 서울로 상경해 ‘타지살이’를 하면서도 늘 고향을 떠올렸다. 그래서였을까. 딸 보러 서울 온 엄마가 다시 제주로 갈 때면 그렇게나 눈물이 났다. 엄마 품이, 온기 품은 돌집이 그리웠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대기업 입사가 아닌 자연과 어우러진 평온한 삶을 꿈꿨다. 10년, 20년 뒤 자신의 모습은 어떨까 생각하다 문득 가족이 있는 돌집이 떠올랐다. ‘돌아가야겠다.’ 대학 졸업 후 지체 없이 제주로 향했다.

“제주로의 귀향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할머니는 저에게 ‘서울로 시집가면 안 된다. 서울 남자 만나면 다시는 고향에 못 돌아올 거다. 가족은 가까이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죠.”

서울로 오가는 교통편이 불편했던 시절, ‘시집간 딸은 남의 자식’이라는 사고가 일반적이었다. 서울로 떠나는 것은 영영 이별하는 것과 같았다. 아버지도, 그도 자연스레 고향인 성읍마을로 마음이 동했다. 최 대표가 고향으로 돌아온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 시절, 한 달 동안 일본에 머무르던 중에 생겼다.

“교토 여행 중에 화과자 만들기 체험을 했어요. 할아버지의 아들, 또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화과자를 만드는 집이었죠. 주인장의 어머니가 과자 만드는 걸 가르쳐주시고, 아들이 나와 손님을 맞았어요. 건물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지은 오래된 집이고요. 온 가족이 그 집 하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거였죠. 분명 후손들도 각자 하고 싶은 일이 있었겠지만 가업이니까 이어받은 거잖아요. 우리 가족을 떠올렸죠.”


교토를 보며 제주를 떠올리다

최진실 대표(왼쪽)와 어머니 강민선 씨.
그가 본 교토는 제주와 꽤 닮아 있었다. 시야를 가리지 않는 낮은 건물들, 한적한 골목길. 그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그랬다. 일본인들의 따뜻한 배려도 제주도 돌담의 온기를 떠올리게 했다.

“교토는 작은 가게의 유리병 하나에도 심오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허투루 만드는 게 하나도 없죠. 상 위에 오르는 반찬 하나까지 정성이 가득했어요. 밥 한 그릇에 배려를 배부르게 먹고 나온 기분이랄까. 엄마에게 전화해서 말했죠. ‘우리도 온기를 전하는 식당이면 좋겠다’라고요.”

그날부터 손바닥만 한 수첩에 빼곡하게 교토에서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가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는 누군가에게 바라는 걸 알려주다 보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주에서의 삶은 정해진 답이 없었다. 입사와 퇴사의 개념도 없었다. 가업을 잇는다는 건 욕심을 버리고 녹아드는 과정일 뿐이었다. 마카롱처럼 달콤했던 서울 생활이 짠 내 나는 시골 생활로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도시에서 누리던 화려한 삶 대신 식당에서의 소박한 생활이, 패셔너블한 옷과 액세서리 대신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식당 일도, 요리도 잘 몰랐지만 그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었어요. ‘젊은 사람이 패기만 있고 할 줄 아는 건 없더라’는 말을 듣기 싫어 더 노력했습니다. 내가 잘못하면 부모님이 욕을 먹으니까 더 노력했고요. 그래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손님을 친절하게 맞이하는 일, 그게 시작이었어요. 힘들어도 일을 놓지 않기. 식당 쉬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출근했습니다. 가족의 일이라고 대충 할 수 없었죠.”


황게 간장게장 판매로 매출 2배

제주산 황게로 만든 간장게장. © 돌집식당
최 대표가 상품화한 황게 간장게장은 식당의 반찬으로 나오던 메뉴다.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아 어머니가 종종 포장해주곤 했는데, 이를 본 최 대표가 제대로 팔아보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황게 간장게장을 판매하면서 식당 매출도 2배 이상 늘었다.

“간장게장은 외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메뉴예요. 할머니가 엄마에게, 또 엄마가 저에게 전수해준 손맛입니다. 황게는 제주도, 특히 추자도 앞바다에서 많이 잡혀요. 일반 꽃게는 껍데기가 단단하지만, 황게는 비교적 부드러워 이가 약한 어르신이나 아이들이 먹기 좋죠. 비리지 않고 개운한 맛이 납니다.”

‘최가네 돌집게장’으로 지난봄 상표 등록을 마쳤다. 상표 이미지와 포장 디자인 모두 최 대표가 맡았다. 어머니의 손맛에 젊은 감각이 더해져 맛과 멋 둘 다 챙겼다.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게장을 팔 때는 소량 포장해서 드리는 정도라 부담이 없었는데, 제대로 판매를 시작하려니 어려움이 많았어요. 특히 택배로 상품을 보냈을 때 국물이 새거나 깨지는 경우도 생겼죠. 그럴 때마다 ‘시작은 손님이다’라는 생각으로 하나씩 고쳐 나갔습니다.”

최 대표는 간장 소스 만드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게장의 바탕이 되는 간장을 만들고 게를 손질해 넣으면 끝. 비린 맛을 잡기 위해 레몬을 넣는 게 비법이다. 게장은 담근 지 이틀이 지나야 맛이 든다. 그래서 아침에 담근 장을 택배로 보내면 제대로 맛이 들 때쯤 고객이 받게 된다. 그가 일하며 가장 뿌듯한 순간은 고객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때다.

“어떤 일이든 어려움이 있어요. 그걸 잘 극복해야 발전합니다. 모든 것이 훈련이죠. 한곳에서 정점을 찍어야 새로운 일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힘들고 지쳐도 매일 아침 가게로 향하는 이유입니다. 게장을 담글 때, 먹는 이들을 생각하며 만들어요. 우리 가족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웃으며 나간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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