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소리, ASMR

영화음악감독 모그

세상에 없던 음악의 조건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김선아 

‘소리의 소리성’을 파고들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음악인은 ‘모그’였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에서 영화만큼 낯선 음악으로 관객을 홀린 영화음악감독 모그. 리얼리티와 상상의 경계를 뒤흔든 영화처럼, 영화의 OST는 정제된 음악과 무규칙 소리의 경계를 뒤흔들었다. ‘세상에 없던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이창동 감독의 주문대로, 영화음악은 충격에 가까울 만큼 낯설었다. 불협화음 같은 음악이 영화에 한 덩어리처럼 녹아들어 영화의 낯섦을 극대화했다.
모그(본명 이성현)는 최근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영화음악감독 중 한 명이다. 얼마 전엔 JTBC 〈방구석 1열〉에 달파란 음악감독과 출연해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가 대중에게 분명한 존재감을 각인시킨 건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다. 영화에서 그는 클래식하면서도 다문화적인 독특한 선율을 선보여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그가 늘 생경하고 실험적인 음악만 선보이는 건 아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영화에 녹아들었다. 〈악마를 보았다〉 〈도가니〉 등 어두운 영화는 물론 〈광해, 왕이 된 남자〉같은 사극, 〈남자사용설명서〉 같은 B급 영화도 소화했다. 〈도가니〉로는 청룡영화상 영화음악상을 받았다. 〈더킹〉 〈대립군〉 〈하루〉 〈VIP〉 〈미옥〉 〈마녀〉 〈인랑〉 의 영화음악도 그가 만들었다.

세상에 없던 음악이 탄생하는 순간 모그 감독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머릿속 이 음악 저 음악의 질료들이 조합을 이루며 탄생할까, 아니면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벼락처럼 찾아올까. 질문을 받은 모그 감독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금 이 공간이 스튜디오잖아요. 공간이 주는 울림이 달라요. 아무리 인터뷰 자체에 집중하려 해도 저도 모르게 카메라가 떠오르고 소리의 울림이 머릿속에 남아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주인공이 낯설어하는 느낌들이 계속 머릿속을 돌아다닙니다. 어느 순간부터 모든 소리와 느낌들이 일상과 거리가 생겨요. 리얼리티 안에 있어도 리얼리티와 멀어집니다. 극 중 ‘사는 게 미스터리 같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딱 그 상황이 됩니다.”


소리와 음악의 경계


소리와 음악, 소음과 예술의 경계. 모그 감독이 주목하는 지점이다. 영화 〈버닝〉의 낯선 음악도 이 지점에서 탄생했다.

“해미(전종서)가 아프리카 이야기를 종종 하잖아요. 안 그래도 종수(유아인)에게는 수많은 벽이 있고 그 벽을 넘을 수 없는 답답함이 있는데, 아프리카는 그 낯선 답답함이 극대화된 공간이에요. 그런데 국악과 아프리카 음악에 묘한 교집합이 있어요. 종교에서 불교와 기독교가 비슷한 지점이 있듯, 민속음악도 마찬가지죠. 벤(스티븐 연)과 종수와 해미는 어떤 지점에서는 소통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소통이 안 되잖아요. 아프리카 음악과 우리나라 음악의 교차점, 일상의 소리가 소음인가 음악인가 헷갈리는 지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에 민감하다. 음악인 DNA가 없는 그가 음악을 하게 된 건 ‘소리 민감성’ 덕이 크다. 일상의 작은 소리에 예민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 목소리만큼 교실 밖 잡음이 세세히 들렸다고 한다. 그 민감성이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그는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후루륵’ 들이켜더니 말을 이었다.

“이 소리 있잖아요. 이 커피도 시원한 맛이 당겨서라기보다 마실 때 나는 이 소리가 좋아서 마셔요. 리프레시한 느낌이 들잖아요. 옷을 입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입는 바지마다 내는 소리가 달라요. 어떤 때는 타이트한 소리가 필요하고, 어떤 때는 물렁물렁한 소리가 필요해요. 그날그날 끌고 다니고 싶은 소리가 있고, 아닌 소리가 있죠. 오늘요? 자다가 비 오는 소리 같은 걸 들었어요. 꿈이었나 봐요. 일어나 보니 너무 화창하잖아요. 빗소리를 끌고 다니고 싶어서 빳빳한 청바지를 골랐어요.”

정글북 주인공 ‘모글리’와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 모그. 늑대들의 세상에 툭 던져져 자신이 늑대인지 아닌지, 존재의 아이덴티티를 고민하는 모글리처럼 그 역시 아이덴티티에 대한 고민이 깊다. 그가 자주 쓰는 단어는 ‘알껍질’이다. 고등학교 때 럭비선수를,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그는 가족의 반대를 뒤로한 채 음악을 하기 위해 뉴욕행을 택했다. 당시 가족관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알껍질을 깨고 나오면 알껍질을 둘러메고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알껍질은 비단 가족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틀, 고정관념과 시선 등을 망라한다. 그는 알껍질을 벗어던지고 순연한 ‘진짜 나’로 오롯이 서기 위한 고민이 깊다.

“알껍질에 둘러싸여 있으면 나는 달걀일 수밖에 없어요. 나는 독수리나 고래, 사자도 될 수 있는데, 달걀이기 때문에 닭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규정짓는 거죠. 저를 덮고 있는 무수한 알껍질들을 어떻게 깨야 할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제까지 여러 번 깼어요. 뉴욕에 간 것, 흑인의 음악과 백인의 음악을 규정짓지 않는 것 같은. 뉴욕행을 택한 건 단지 음악 때문이었다기보다 제가 속한 환경, 문화적 플랫폼 등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뉴욕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 분투했다. 치열함이 어느 정도였냐는 질문에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여유가 있어야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고 했다. “물가와 집값이 싼 곳은 슬럼가예요. 거기에 살면서 가난보다 안전이 걱정됐죠. 총을 맞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제가 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 중 지하철이 가장 럭셔리했는데, 지하철에서 내리면 집까지 뒤도 안 돌아보고 초고속으로 달렸습니다. 험한 꼴 안 당하려고요.”


아티스트는 액션, 영화음악감독은 리액션

뉴욕에서 목숨 걸고 음악을 하면서 그는 천재 베이시스트로 거듭났다. 보통의 4현을 넘어선 7현 베이스를 연주하며 ‘퓨전재즈 최고 스타’로 불렸다. 2004년엔 국내 최초로 베이스 단독 앨범을 내면서 없던 길을 내고 뚜벅뚜벅 걸었다.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아티스트’의 길을 걷던 그는 ‘영화음악감독’으로 길을 틀었다. 그는 이 두 길의 차이에 대해 “아티스트는 액션을 한다면, 음악감독은 리액션을 하는 입장”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그는 10월 개봉을 앞둔 〈완벽한 타인〉, 내년 초 개봉 예정인 〈성난황소〉의 영화음악을 맡아 대중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모그 감독은 ‘영화음악계의 거장’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그 반열에 올랐지만,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음악을 하고 싶으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힘들어하는 청춘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이렇게 답했다.

“제가 뭔가를 이뤘다면 그런 말을 편히 하겠는데,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 선택이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도 없고요. 그때는 그게 맞다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과연 믿을 만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젊은 분들한테 관심이 많아요. 보고 있으면 그냥 아파요. 목표나 꿈이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그런 게 없어요. 저는 그런 걸 껍데기이라고 생각해요.”
  • 2018년 1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남우   ( 2018-11-18 ) 찬성 : 0 반대 : 0
알껍질..
201812

2018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8.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