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소리, ASMR

1세대 ASMR 유튜버 데이나(DANA)

잠이 솔솔~ 오게 해드릴게요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이름 박다함 / 나이 25세 / 사는 곳 수원 / 혈액형 B형 / 별명 OO다함(숙제다함, 과제다함, 청소다함 등) / 좋아하는 것들 각종 라면(한때 엄마가 라면귀신이라고 부를 정도), 강아지와 고양이, 팬톤컬러 중 핑크 아이싱 / 감명 깊게 읽은 책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아트 슈피겔만의 《쥐》 / 성격은 친구들은 나를 ‘달콤살벌’이라고 말함. 평소엔 달콤하고 일할 땐 살벌하다고. / 심심할 때 뭐하나 ‘넷플릭스’ 몰아보기 / 지금 행복한가 네!
“도대체 이런 영상은 누가 왜 만드는 거야?”

무심코 영상을 클릭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푹 빠져들었다. 스르륵, 사라락, 딸깍딸깍, 또르르르. 물건을 두드리는 소리, 귓가에 속삭이는 나긋한 BJ 목소리에 어느새 잠이 들었다. 꼬박 2시간.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의 첫 경험은 야릇했다. 여태껏 못 느껴본 전율, 소름이 온몸에 돋았다.

불면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자장가 같은 묘약을 들려주는 ASMR 전문 유튜버 데이나를 만났다.

“어렸을 때 엄마가 무릎에 누이고 귀를 파줬던 경험, 미용사가 머리 샴푸를 해줄 때 잠이 솔솔 왔던 경험, 산이나 바다의 자연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껴봤을 거예요. 여러 상황에서 시각·촉각·청각 등을 통해 편안함이나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감각적 경험을 ASMR이라 말합니다.”

카메라 뒤에서 만난 그는 예의 바르고 진중한 20대였다. 질문 하나하나 신중하게 답하면서도 성의를 다했다. 데이나는 ASMR이라는 용어가 국내에서 대중화되기도 전인 2013년, 유튜브 채널에서 ASMR 방송을 시작했다. 친구에게 속삭이는 듯 편안하고 친근한 말투, 귀를 간질이는 다양한 두드림(태핑), 독특한 상황극(롤플레이)이 그의 주특기다. 매일 밤 업로드되는 영상을 기다리는 구독자가 80만 명이 넘는다. 방송이 유명해지며 그녀를 알아보는 이들도 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길에서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종일 생각날 정도로 쑥스러움이 많았다고.

“옷을 후줄근하게 입고 나가면 영상 봤다는 시청자를 꼭 만나요. 예쁘게 단장하고 나가면 아무도 못 알아봐 주고. 일인 콘텐츠 제작자의 비애랄까. 이걸 두고 유명하다 할 수 있나 싶기도 하네요. 하하”

ASMR이 불러일으키는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렇기에 ASMR이 구현하는 소리의 범위는 무한대다. 이에 대한 반응 또한 천차만별. 보통 불면에 시달리거나 심리적 안정을 원하는 이들, 또 집중이 필요한 수험생이 그의 영상을 찾는다고 한다.

데이나가 ASMR을 시작한 계기도 비슷하다. 불면에 시달리던 어느 날, 해외 유튜버 ‘Pigsbum53’의 영상을 보고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중고등학교 3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대입 준비를 위해 고2 때 한국에 돌아왔어요. 가장 예민한 시기에 환경을 바꾼 탓도 있고, 한국식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면증에 시달리게 됐어요. 그때 처음 ASMR 영상을 접했는데 속삭이듯 하는 말에 어느새 집중하고 있더군요. 1년 정도 해외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다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취미에 가까웠다. 방음시설 없는 자취방에서 휴대폰이나 노트북으로 촬영했다. 영상은 화질이 떨어지고 잡음으로 가득했지만 친구와 대화하는 듯 나긋한 그의 목소리는 호감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다음 영상을 기대한다’는 댓글이 달렸고, 하나둘 구독자가 늘어났다. 기왕 만드는 영상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음향장비와 촬영용 카메라를 구매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롤플레이 전문


‘슬립닥터 데이나 클리닉’ ‘동쪽마녀 데이나의 포션가게’ ‘데이나살롱 면도’ ‘어린이집 낮잠시간’ ‘홈로봇 정기검사 수리공’ ‘1인칭 클렌징 룸’ ‘피부과 레이저 시술’ ‘친구야 귀 파줄게’ 등 데이나의 유튜브 채널에는 독특한 제목의 영상이 많다. ASMR깨나 들었다 하는 사람들은 제목만 들어도 상상이 갈 것. 데이나가 수리공이나 피부과 시술의, 어린이집 교사 등으로 분해 상황을 연출하고 홀로 연기하며 극을 이끌어 가는 일명 ‘ASMR 롤플레이’이다. 대략 40~50분 분량으로 만드는데, 배경이나 대사, 상황 설정과 더불어 귀로 들려오는 소리 하나까지 완벽한 구성과 기획을 통해 꼼꼼하게 만든다.

반응이 가장 좋았던 영상은 ‘친구야 귀 파줄게’다. 침대 위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며 귀를 파주는 설정극으로 10대와 20대의 공감을 끌어냈다.

“하루 끝에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했어요.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상황 위주로 대본을 쓰다 보니 제 나이 또래의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혼자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게 어색했는데, 친구와 대화한다고 생각하며 촬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처음에는 쉽게 연기할 수 있는 피부숍 직원이나 친구 역할을 연기했다. 독자가 늘고 조회 수가 늘어나며 그의 말마따나 ‘근자감’이 생기고서부터 제대로 된 연기 영상도 만들었다. 특히 마녀로 분해 마치 마녀 수프를 만들 듯 사물로 소리를 만들어낸 방송은 높은 조회 수가 나왔다. 지금까지도 데이나의 ASMR 하면 빠지지 않는 영상으로 꼽힌다.

데이나의 ASMR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영어 말하기’다. 종종 외국인 독자를 위해 한글 자막을 곁들여 영어로 영상을 만드는데, 발음이 부드럽고 감미롭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발음을 잘하고 싶어서 외국인 친구들하고만 어울렸어요. 스피킹에 중점을 두고 공부했죠. 해외 유튜브를 보면 ‘S’발음이 귀에 따갑게 들릴 때가 있거든요. 저는 일부러 살짝 뭉개요. 부드럽게 들리도록 거의 ‘흐’에 가깝게 발음하죠. 그러다 보니 가끔은 발음을 정확하게 해달라는 댓글도 달려요.”

데이나가 1인 방송을 시작한 지 5년 차. 영상으로 독자를 만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다.

“어린이집 낮잠 시간을 상황극으로 보여준 적이 있어요. 밥도 먹이고, 양치 시켜 재우고 하는 상황극이었죠. 이 영상에 ‘어느새 아프면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직장인이 됐는데, 어렸을 때 나는 예쁨 받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단 걸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이런 댓글이 차곡차곡 쌓여 영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대중화된 독자층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볼 때 찾아오는 독자나 반응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처음에는 불면증이 심해서 영상을 찾아서 보는 마니아층이 많았어요. 당시엔 조금만 소리가 커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민감해하셨죠. 불면증이 심하다고 고백하거나 하는 소소한 커뮤니티가 만들어졌어요.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춘 이후에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온다는 분이 많아졌어요.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됐죠. 점점 제 영상의 콘셉트도 명확해지고. 대중화되는 느낌이 강해요.”

영상 녹화가 이루어지는 작업실에는 소품과 장비로 가득하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작업실에 설치된 6평 규모의 방음 부스. 그 안에서 기본적인 영상이나 녹음 촬영이 이루어진다. ASMR 영상을 만드는 데는 기본적으로 카메라와 마이크, 동영상을 편집할 컴퓨터가 필요하다. 물론 만들고자 하는 영상에 따라 장비는 하나로 충분하기도 하고, 열댓 가지로 늘어나기도 한다.

“비싼 마이크보다 자신의 성향에 맞는 것을 고르면 좋아요. 중요한 건 스테레오로 할 것이냐인데, 저는 음질을 깨끗하게 분리하기 위해 똑같은 마이크를 두 대 놓고 녹음합니다. 10만 원 미만의 저가 장비부터 100만 원대를 호가하는 장비까지 두루 있어요. ASMR에서 많이 쓰이는 실리콘 귀가 달린 마이크 3Dio는 70만 원에서 300만 원대의 고가 장비예요. 돈이 모일 때마다 조금씩 사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또래의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할까 말까 고민된다면 무조건 하세요. 제가 시작할 때도 이렇게 영상을 만들어 돈을 벌지 몰랐고, 이렇게 독자 수가 늘어날지도 몰랐어요. 그저 하고 싶어서 한 일입니다. 단순한 취미나 만남도 마찬가지예요. 고민된다면 일단 해보세요. 생각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할 말은 하며 사는 게 멋있는 겁니다.”
  •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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