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서점, 설렘

책방 얘기를 책으로 낸 서점 주인이 몇 있습니다. 김소영 아나운서의 《진작 할 걸 그랬어》는 베스트셀러가 됐고, 가수 요조가 낸 《오늘도, 무사》도 꽤 유명하죠. 두툼한 모노톤의 노란 책이 하도 예뻐 저도 모르게 집어 들고 말았습니다. 읽다 보니 작은 책방의 존재감이 확 와 닿더군요. 소설가 장강명의 말마따나 “작지만 신실한 세계를 품고” “크고 너절한 세계에 맞서” 싸우는 공간으로서의 ‘책방무사’는 ‘동네책방 분투기’를 넘어 ‘예측불허 인간군상 분투기’로 읽혔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를 자신의 필명으로 삼을 만큼 세상과 사람의 온도에 예민한 한 음악가가, 언제, 어떤 사람이, 어떻게 들어올지 모르는 작은 책방을 제주에서 운영하며 세상과 맞서고 부딪치고 어우러지는 과정은 각본 없는 드라마였습니다.

그보다 앞서, 원조 격쯤 되는 책방 주인장의 책이 있습니다. 금호동 동네책방 ‘프루스트의 서재’의 책방 일기 《되찾은 시간》. 동네책방 순례자들에겐 꽤 유명한 책입니다. 책 제목이 재치 있지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응답하듯 ‘되찾은 시간’이랍니다. 온라인 서점을 뒤적였지만 찾기 쉽지 않아 직접 가서 사기로 했습니다.

‘프루스트의 서재’로 가는 길은 가깝지만 멀었습니다. 금호동 마을 언덕에 있다는 그곳은 왠지 도보로 가야 할 것 같아 지도 앱을 열고 길을 나섰습니다. 무조건 위쪽이 북쪽처럼 느껴지는 순도 100% 길치인 저에겐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언덕배기 아파트를 한참 오르고, 인적 드문 가게 몇 곳을 지나고, 길모퉁이를 돌아 한참 올라갔습니다. 도무지 있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에 엄마 잃은 미아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한참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거짓말처럼 작은 간판 ‘프루스트의 서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녁 7시 30분, 서점 주인장 아버지가 만들어줬다는 작은 간판의 불빛이 연보랏빛 저녁 하늘과 기막히게 잘 어울리더군요. “어쩌죠? 딱 한 권 있었는데, 조금 전 팔렸어요.” 감동도 잠시, 책방 주인장이자 책방 일기의 저자 박성민 씨의 말에 힘이 빠졌습니다. “정식 책을 내기 전 제가 보려고 만든 가제본이 있는데, 이거라도 빌려드릴까요?”라며 내미는 그 책은, 세상에, 작품 같았습니다. 손바닥보다 작은 사이즈, 세로글씨, 연둣빛 헝겊 커버로 씌운 가제본. 이름도, 사는 곳도, 직업도 모르는 방문객에게 기꺼이 귀한 책을 빌려주겠다니요. 그 조건 없는 무한 신뢰가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책 두 권을 사 들고 내려오다 보니 어둠이 깔리고 낯익은 시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늘 보던 풍경인데 이상하게도 달라 보이더군요. 마치 먼 나라 여행을 다녀온 듯 낯선 설렘이 감돌았습니다. 책 제목대로였습니다. ‘되찾은 시간’.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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