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서점 시대

해방촌 책방 탐방기

스토리지북앤필름 / 별책부록 / 고요서사 / 벨리븐

편한 신발과 스마트폰의 지도 앱,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마음. 해방촌 책방 투어를 위해 필요한 준비물이다. 지도 앱 하나에 의존해 높은 지대에 있는 좁은 해방촌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작은 책방 한구석에서 내 취향에 꼭 맞는 책을 발견할 때의 기쁨은 육체의 고단함을 잊게 만든다.

해방촌은 ‘포스트 경리단길’로 불린다. 다양한 국적의 요리를 파는 식당들과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아담한 카페들은 경리단길과 똑 닮았다. 최근 들어 해방촌의 인기는 경리단길을 능가한다. 경리단길에는 없는, 개성 강한 작은 책방들이 한몫한다. 활발한 SNS 활동은 이 인기가 식지 않게 부채질한다. 해방촌의 책방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몇 만 명의 팔로어를 지닌 인플루언서다. SNS에 신규 도서 입고 일정이나 북토크 등의 이벤트를 부지런히 공지하는 포스팅은 대형 서점 부럽지 않은 마케팅 홍보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해방촌 책방 투어는 ‘시작이 반’이다. 책방 간 거리는 도보로 15분 이내여서 반나절이면 구경하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모두 높은 지대에 있어 투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해방촌 입구에서 족히 30분은 걸어 올라가야 한다. 체력을 아끼려면 ‘용산 02’번 마을버스를 타고 첫 번째 책방 근처에서 내리는 것을 추천한다.


스토리지북앤필름
진귀한 독립출판물 저장소


무채색의 대리석 건물과 낡은 벽돌 주택 사이에 초록색 페인트 벽이 눈에 띈다. 그 옆에 흰색으로 ‘STORAGE BOOK STORE’라 쓰여 있는 통유리 가게가 첫 번째 목적지다. 갈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책으로 가득한 ‘storage(저장공간, 창고)’와 마주하게 된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매대에 놓인 책들이다. 글이 거의 없는 손바닥 크기의 그림책부터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표지를 디자인한 책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벽 쪽 선반에도 빈틈없이 높이도, 두께도 제각각인 책들이 꽂혀 있다. 스토리지북앤필름은 독립출판물 등 주로 소규모 출판물을 ‘저장’한다. 직원 5명이 의견을 모아 책을 선별하는데, 최대한 많은 방문객의 취향에 맞길 바라며 지나치게 자극적인 콘텐츠는 지양한다. 독립출판물에 대한 애정은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도 묻어난다. 책방 운영자인 강영규 대표가 직접 강의하는 ‘나만의 책 만들기’나 책 제본법을 배울 수 있는 ‘북 바인딩 워크숍’은 독립출판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한다.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115-1 / instagram.com/storagebookandfilm


별책부록
책도 내고, 책도 팔고, 문구도 있어요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출발해 오르막길 5분, 용산2동 주민센터가 보이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또 5분을 걸으면 책 모양의 회색 입간판이 보인다. 환한 조명과 널찍한 공간 덕에 밝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정면에는 직원 2명이 앉아있는 카운터, 양쪽 벽 책장에는 국내외 도서와 잡지가 잘 정리되어 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패션과 디자인 등 예술 관련 서적이 많다. 개중에는 별책부록에서 자체 제작한 책들도 있다. 영화비평지인 《CAST》와 올해 6월 창간한 《Poetic Paper》가 그것이다. 《Poetic Paper》는 한 명의 디자이너와 한 명의 작가가 함께 만드는 엽서 책이다. 별책부록은 책방이자 출판사인 셈이다. 책을 구경하다 보면 ‘부록’에 해당하는 굿즈와 문구류가 눈에 들어온다. 벽 쪽 선반에는 파스텔 색상의 트위드 가방과 자수 에코백이 걸려 있다. 카운터 쪽 책장에는 일상을 기록할 수 있는 메모지와 캐릭터 배지가 진열되어 있다. 다채로운 책과 귀여운 ‘부록’ 덕에 책방을 둘러보는 내내 눈이 즐겁다.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16길 7 / instagram.com/byeolcheck


고요서사
고요한 문학의 심연으로


별책부록에서 5분만 걸으면 세 번째 목적지가 보인다. 알록달록한 포스터 여러 장이 붙어 있는 작은 벽돌로 지은 집의 이름은 고요서사다. ‘문학 서점’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을 정도로 소설책과 시집이 중심이 되는 곳이다. 작은 메모가 잔뜩 붙어 있는 나무 책장이 특징적이다. 책과 책방 행사에 대해 운영자가 직접 적은 손글씨 메모는 푸근하고 정겨운 느낌을 안긴다. 소설 종류는 다양하다. 김애란, 김연수 등 유명 국내 작가의 최신작부터 다자이 오사무나 스콧 피츠제럴드와 같은 외국 작가의 고전까지 빼곡히 꽂혀있다. ‘취향 저격 책 추천’ 서비스가 있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면 작은 책갈피 모양의 설문지를 작성해 직원에게 건네면 된다. 취향 분석과 문학에 정통한 직원이 설문지를 기반으로 책을 추천해준다. 책을 구매하는 방문객들은 ‘사서함’을 개설할 수 있는데, 일종의 멤버십 제도다. 고요서사의 낭독회, 글쓰기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미리 공지 받고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현재 140명이 등록되어 있다.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15길 18-4 / instagram.com/goyo_bookshop


벨리븐
해방촌 책방 투어의 쉼표이자 마침표


해방촌 책방 세 군데를 구경하고 나면 앉아 쉴 곳이 간절해진다. 해방촌 입구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벨리븐은 책방 투어의 마침표를 찍기에 좋다. 책방과 카페가 결합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출입문 쪽으로 다양한 책이 가득하고, 가게 안쪽에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넉넉한 크기의 소파가 있다. 벨리븐의 책은 어느 한 장르에 국한하지 않는다. 유럽에서만 구할 수 있는 예술 잡지부터 60년 전에 출판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나 박목월의 《영란시감상》 초판본도 있다. 매월 하나의 주제를 정해 가게 한구석에서 전시를 하기도 한다. ‘건축디자인’이 주제였던 8월에는 다양한 건축물을 다룬 예술잡지와 엽서를 볼 수 있었다. 그림책을 찾아 오는 꼬마 손님부터 영어로 된 두꺼운 소설책을 사 가는 외국인까지 벨리븐의 방문객은 책만큼이나 다양하다. 카페에서는 커피와 차는 물론 맥주와 와인까지 즐길 수 있다. 때로는 스크린을 내려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하고, 소규모 동호회에 대관을 해주기도 하는 유동적인 공간이다. 올해 1월 문을 연 벨리븐은 경리단길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12길 5 / instagram.com/beleben.seoul
  • 2018년 10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812

2018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8.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