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청년 기업가들

세계적 블록체인포럼 만든 큰손, 업그라운드 한승환 대표

“더 안전하고 평등한 금융생태계를 꿈꿉니다”

“블록체인 생태계가 인간 경제에 의미 있는 기술이 되도록 돕는다.”
지난 몇 년 새 전 세계 신규 산업 가운데 블록체인은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한 영역일 것이다. 블록체인은 사회, 경제,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중앙화돼 있던 기존 권력을 분산화, 탈중앙화할 가능성을 열어줬다. 금융영역에서 먼저 시작된 이 원리는 투표, 비금전적 자산, 무형의 콘텐츠 거래 등으로 확산되며 사회적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일각에서 블록체인의 등장을 두고 “지폐의 발명 이후 가장 극적인 화폐경제 시스템의 전환”이라고 평하는 이유다.

한승환 업그라운드(Upground) 대표는 이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큰손이자 가장 주목받는 사업가 중 한 사람이다. 오미세고(Omisego), 큐텀(Qtum) 등 다양한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자문을 해온 그는 3월부터 블록체인 관련 기업을 지원하고 양성하기 위한 업그라운드의 대표를 맡고 있다. 업그라운드는 블록체인 전문 기업 액트투테크놀로지스와 한화그룹 금융계열사가 함께 만든 블록체인 허브다.

서울 서초구 드림플러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숫자와 실리를 따지는 기업인의 전형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처음부터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가장 철저하게 신경을 쓰는 부분은 블록체인 모델이 인간 경제에 얼마나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할 것인가입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그의 철학과 이상을 말했다. 그 가운데 ‘매출’, ‘수익’, ‘손실’이란 단어는 기자가 물어보기 전까진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수익 창출만을 위한 투자는 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철학이라고 했다.


자칭 ‘분산경제 연구가’

그는 성공한 기업인, 혹은 어느 회사의 대표라는 직함보다는 ‘분산경제 연구가’라는 스스로 만든 직함으로 불리길 원했다. ‘분산경제’는 올 초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블록체인 포럼 ‘디코노미2018’을 준비하면서 한 대표가 고안해낸 단어다.

디코노미2018은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개최된 수많은 포럼 가운데 단연 독보적이었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을 포함해 세계 블록체인·암호화폐 커뮤니티를 이끄는 80여 명의 인사가 대거 참가하면서 한자리에 모으기 어려운 유명 인사들을 한국으로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유명인사들이 어떠한 비용도 받지 않고 이 포럼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고, 그 앞에서 기조연설을 한 이가 바로 29세의 청년 한승환 대표다.

“어렸을 적부터 주된 관심사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였습니다. 화폐의 역사를 공부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비트코인을 접하게 됐죠. 비트코인은 경제, 금융, 분배와 혁신 등 내 관심사가 다 모여 있는 분야였어요. 2012년이었습니다.”

한 대표가 블록체인 기술과 운명적 만남을 한 것은 2012년 말이다. “궁금하면 원론적으로 기초부터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는 그는 2013년 본격적으로 블록체인 투자 및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엔 관련 커뮤니티가 없었고, 외국에선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영어 학습지 영업사원

10여 개의 블록체인 프로젝트 이력 때문에 마치 블록체인 한 우물만 파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블록체인 말고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지만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경영에 재미를 느꼈다. 일찍부터 유통·물류 스타트업을 만들어 창업 전선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았다.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시작한 일은 바닥부터 제대로 해나가고 싶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투자하도록 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된 그는 ‘거절당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 영어 학습지 현장판매 영업직 사원으로 들어가 일했다. 그는 “이때 많은 것을 배웠다”며 “잠재적 고객과의 관계 맺기가 비즈니스의 성패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2015년, 올 초 디코노미포럼을 함께 조직한 백종찬(26) 대표를 만나 블록체인 전문 컨설팅 회사 ‘피넥터’를 설립했다.

한 대표가 이끄는 업그라운드는 지난해부터 한화그룹 금융계열사와 손잡고 업계에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신생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대등한 파트너십을 맺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드물다. 탈중앙화 암호화폐거래소 웨일엑스,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 블록인프레스 등과 파트너십 관계에서 가지를 확장해가고 있으며 최근엔 이 브랜드들을 통합한 탈중앙형 회사체 ‘피어스’를 설립했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


일 외적으로 사람을 만나 놀 시간도 없다는 그를 지금도 달리게 하는 것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시 장애우 활동보조인 프로그램 1기로 들어가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당시의 경험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봉사란 단순히 누굴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같이하는 것이란 걸 깨닫게 됐습니다.”

이후로 그의 목표엔 늘 ‘사회공헌’이란 키워드가 올랐다.

“돌이켜보면 처음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 ‘비트코인 톡’에서 초기부터 활동한 그는 오로지 기술적인 측면으로만 비트코인에 접근하는 기술자들의 세계에 갑갑함을 느꼈다. 당시 비트코인 커뮤니티 활동을 하던 대다수의 과학자와는 달리, 그는 기술적으로 얼마나 혁신적인지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제게는 비트코인을 가능케 한 이 기술의 실질적 가치와 현실 작동 여부가 중요했어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그는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직접 찾아가 해당 프로젝트가 좀 더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자처했다. “초창기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은 과학자, 개발자들끼리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와의 접점이 적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죠.”

그는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비트코인 생태계를 그 태동기부터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 마침 그 세계가 현실 세계에서 중요한 영역으로 성장했다는 점, 늘 주변에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고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 때문이다.

“제가 블록체인에 대해 철저하게 비즈니스 차원의 접근을 했다면 아마 암호화폐를 포함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투자만 했을 겁니다. 그럴 만한 환경이었고 여력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에겐 뭔가에 기여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어야 중요합니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지난 3월 그는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달성했다. 3월 10일 아너소사이어티 경기 132호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서른 전에 사랑의열매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는 게 버킷리스트였다”며 웃는 그는 여전히 ‘돈’보다 ‘블록체인 생태계의 긍정적 파급력’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스타트업 구성원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결과는 개인과 기업 경험의 동반 성장”이라고 단언했다. 기업이란 결국 설립자의 가치에서 출발하지만 혼자만의 여정은 아니란 게 그의 생각이다.

“회사 동료들이 새로운 업무 구조 속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 성장엔 비전이라는 무형의 것과 수치라는 유형의 것이 모두 포함됩니다. 주어진 구조 속에서 최대한 유연한 방식으로 실질적 가치를 창조해내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 2018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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