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 덕후력

덕업일치의 조건 #1 다르게 생각하라

정치호 작가 / 궁극의 디자인, 그 이상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바야흐로 덕후가 주도하는 세상이다. 한때 ‘덕후’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사회부적응자 같은 시선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불과 4~5년 사이 덕후의 지위가 급상승했다. 취향존중 시대에 덕후는 문화적 우성 유전자로 추앙되고, 무취향의 유행 추적자들은 열성 유전자로 비치기까지 한다. 궁극의 디자인을 추구해 자신만의 디자인 그룹을 일군 정치호 작가. 그는 취향과 자존심이 남다른 덕후들의 세계에서 ‘덕후들의 덕후’로 인정받는다.
사진작가, 가구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트 디렉터, 브랜딩 디자이너, 컬렉터… 정치호 작가의 일을 딱 잘라 말하긴 쉽지 않다. 그가 덕후가 인정하는 덕후가 된 건 진귀한 컬렉션 때문만이 아니다. 사진이든 디자인이든 그의 결과물은 도드라졌다. “정치호가 누구야?”라는 반응을 달고 다닌다.

그의 작업실은 차라리 디자인 박물관이었다. 눈길 가는 곳마다, 손길 가는 곳마다 예사로운 것이 없었다. 존재 자체로 시선을 잡아끄는 물건들은 저마다 스토리가 가득했다. 작업실의 주인 정치호 작가는 “한 물건에 대해 두 시간 동안 말할 수 있어요”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책상 위 심드렁하게 놓인 금빛 스테이플러를 잡아끌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엘 카스코’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는데요, 대공황 때 총 만드는 회사가….” 회전목마에 관해서도, 스털링 엔진을 장착한 외연기관차 미니어처에 관해서도 같은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이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 컬렉터다. 1층 작업실은 워밍업 수준. 작업실 2층 선반에는 전 세계에서 경매로, 혹은 직구로 구매한 희귀 물건들로 그득하다. 미스터 크리스마스 회전목마 79172,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 인형(상자째 그대로. 컬렉터 세계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애플 매킨토시 최초의 컴퓨터 ‘128K’, 엘 카스코(El Casco)의 ‘M430-LN’ 연필깎이가 눈에 띈다. 이 연필깎이는 데이비드 리스가 쓴 《연필깎이의 정석》에서 “세계 최고의 이중 날 회전식 연필깎이”라고 극찬한 ​엘 카스코 M430 시리즈의 하나다.

‘돈이 많으니 진귀한 물건을 취미 삼아 사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 ‘정치호의 견물생심(見物生心)’에 이런 철학을 적었다.

“비싼 것이 귀한 것은 아니고, 귀한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이 내 것만은 아니다. 디자인 관련 제품을 수집하지만 소위 말하는 디자인 명품과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내게 소장하고픈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그 속의 이야기 존재 여부이다.”


정 작가의 작업 영역은 넓고 깊다. 그 스스로도 “디자인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합니다”라고 공언하듯, 그의 덕질 영역은 다방면으로 뻗어 있다. 행위로 표현하자면 모으고, 찍고, 배치하는 작업 같은 건데 이 모든 행위는 한 곳으로 수렴된다. 바로 ‘시각미’다.

그가 운영하는 디자인그룹 ‘엇모스트(UTMOST)’는 궁극의 디자인을 추구한다. 상주직원 4명 포함, 20명이 그룹 멤버다. 그룹에서는 디자인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한다. 가구 디자인, 잡지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 금속공예, 인테리어, 큐레이팅, 조소 등. 도자 브랜드 ‘이도’, 잡지 《노블레스》, 《빅이슈 코리아》 등이 대표적 고객사다.


보도사진상 휩쓸어

정치호 작가가 찍은 인물사진들. 프랑스 구두장인 피에르 코르테(왼쪽)와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제가 가장 잘하는 건 사진 같아요.” 덕후의 세계에서는 컬렉터로 유명하지만, 독자나 일반인들에게 그는 사진으로 친근하다. 중앙일보에서 5년간 사진기자로 일했고, 최근엔 얼굴을 잘 찍는 사진작가로 명성이 높다. 《빅이슈 코리아》, 《더스쿠프》 등에 ‘정치호의 얼굴’을 연재 중이다. 유명인이든, 장삼이사든 그의 앵글 안에서는 ‘작품’이 된다. 신문사 재직 시절에는 보도사진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이달의 보도사진상’을 8회 수상했고, 3회 연속 수상한 적도 있다.

그의 사진은 다르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사람을 두고 매체들이 릴레이 인터뷰를 할 때 특히 빛났다. 남들이 발효음식 연구가를 밖에서 찍을 때, 그는 장독 안에 들어가 파란 하늘을 인 사진을 담았다. 스스로 장이 되어 우물 안에서 우물 밖 세상을 담듯 말이다. 또 남들은 구두를 들거나 신고 있는 구두장인 사진을 찍을 때, 그는 머리에 이게 했다. 프랑스 구두장인 피에르 코르테를 찍은 이 사진은 그해 한국보도사진전에서 ‘인물사진’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남과는 다른 시선으로 “정치호가 누구냐?”는 반응을 달고 다니는 정치호 작가. 비결을 물었다. “늘 다르게 생각하려 했다”는 예상 가능한 상식적인 답변을 했다. 다시 물었다. “그 다른 발상은 어느 순간 어떻게 탄생하는가”라고.

“접근의 문제 같습니다. 늘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어요. 그 강박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에너지입니다. 사진은 나만의 언어잖아요. 어떻게 하면 남과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그는 모든 걸 다 가진 듯 보인다. 갖고 싶은 컬렉션이 가득하고, 30대에 건물주가 되어 실력파 디자인 그룹을 거느리고 있다.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것을 이룬 것이 아닐까. 도대체 얼마나 빨리 이 분야에 발을 디뎠기에 이만큼 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피어난다.

반전이 있다. 정 작가의 ‘시각미’ 덕질은 한참이나 지각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몰랐다. 부모가 정해준 대로 이과를 택해 공대에 들어갔다. 그는 고2부터 5년간을 ‘잃어버린 시간’으로 표현한다. “무엇을 해도 자신 없었고, 재미없었고, 게을렀습니다. 나는 원래 게으른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사진을 만나면서 딴사람이 됐다. 전역 후 돌고 돌아 중앙대 사진학과에 입학한 정 작가는 그때부터 날개를 달았다. “이제 만난 거죠”라고 표현했다. “결국 만나는 문제예요. 저는 운이 좋아서 사진을 일찍 만났습니다. 좋아하는 분야를 찾으니 자존감이 급상승했어요. 누구나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찾으면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술·담배 안 하고 새벽 5시 기상

자신이 간절히 좋아하는 분야를 찾은 이후 본격 덕질이 시작됐다. 그가 중시하는 건 ‘디자인의 원류’와 ‘사용하지 않을 때의 디자인’이다.

“디자인의 맨 처음을 생각하고 상상합니다. 원류를 찾아서 파고들고 탐닉하고요. 유럽은 사용하지 않을 때의 디자인에서 출발합니다. 주차해둔 자동차, 꺼둔 텔레비전, 사용하지 않을 때의 접시 등.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능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얇고, 가장 선명한 텔레비전을 생산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꺼뒀을 때는 어떤가요. 시커먼 흉물 같죠.”

‘디자인의 원류’는 비단 무생물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사람에게 있어 디자인의 원류는 한 존재의 뿌리에 도사리는 ‘소질과 적성’이다. 그걸 만나야 빛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사람 디자인’에도 마음을 쏟는다. 쉽게 말해 멘토링이다. 민화작가를 투화(鬪花) 작가로, 가구 디자이너를 브랜드 로고 디자이너로 성공적으로 변신시킨 전력이 있다.

엇모스트는 세상에 없던 기업 구조로 운영된다. 말이 회사이지,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가 없다. 그와 직원 관계는 갑을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다. 월급이 따로 없다. 소속 직원에게 해당 프로젝트의 전권을 주고, 프로젝트비도 전부 갖게 한다. 느슨한 협업 관계다. 그는 엇모스트 그룹의 프로젝트가 궁극의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디렉터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말한다. 젊은 나이에 성공해서 좋겠다고. 신문사를 나와 불과 5년 사이에 이룬 성과가 놀랍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상도동 옥탑방에서 1인 기업을 열어 연희동 건물에 디자인 그룹을 거느리기까지 무수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우여곡절을 딛고 올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은 ‘자기 원칙과 소신’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기상 시간은 새벽 5시. 지금의 결과는 그런 과정의 축적이다. 그는 덕후들이 대부분 그렇듯,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진심으로 즐긴다. 매 순간 ‘나는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를 최대치로 고민하면서. 인터뷰가 끝나고 그에게서 문자가 날아들었다. ‘과정’ 숭배에 관한 얘기였다.

“결과에 묻힌 과정의 홀대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과정의 순도를 최대치로 높이면 공식에 없는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 201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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