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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는 세계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일 즈음 태어나(추정), 2015년 박근혜 대통령 집권 3년 차에 세상을 떴다. 그 13년간 세 명의 대통령 집권기를 살아가며 정세의 흐름에 항상 관심을 갖고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주로 간식과 따뜻한 잠자리를 추구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빈둥대며 보냈다. 내가 사랑했던 고양이 ‘김고냥’ 이야기다.

김고냥은 어느 날 겨울 한 식구가 됐다. 집 마당 구석에서 발견됐다. 어미는 출산 후 죽은 건지 새끼들만 한겨울 추위에 떨고 있었다. 며칠 굶주린 듯했다는 게 발견한 동생의 증언이다. 형제들은 다른 집으로 입양 보냈는데, 한 마리가 남아 어쩔 수 없이 키우게 됐다. 개는 꽤 여러 종류를 키워봤지만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키울 수 있을지, 키워야 하는 건지 몰라 이름을 제때 못 지어줬다. 결국 ‘고냥’이가 돼버렸다. 가장 흔한 성을 붙이자는 엄마의 제안으로 김고냥이 됐다.(생각해보면 상당히 이상한 제안이다) 사람으로 치면 ‘김사람’으로 지은 격이다. 그때만 해도 고양이를 대부분 부정적으로 보던 시절이었다. 목숨이 아홉 개라는 둥, 귀신을 본다는 둥, 공동묘지에서 검은 고양이가 울고 있다는 둥 지금 생각하면 근거 없는 비방인 얘기들이 상식처럼 통했다.

한마디로 ‘고알못’인 가족이었다. 과연 겨울에 태어나면 머리가 좋은 걸까. 김고냥은 비상한 지능과 눈치로 집사들을 탄복시켰다. 이를테면, 화장실 교육을 따로 안 했는데 알아서 화장실 수챗구멍에 대소변을 보는 식이었다. 깜박하고 화장실 문을 닫아놓은 어느 날엔 싱크대 배수구에 소변을 보기도 했다. 사료를 잔뜩 부어놓으면 알아서 끼니마다 챙겨 먹는 식이었다. 반려동물이라기보단 월세를 내지 않는 말 없는 하숙생의 느낌이라고 할까. 급기야 우리 가족은 김고냥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잊게 됐다. 한밤에 훈제 닭 다리를 훔쳐 먹는 걸 발견하고 ‘아, 동물이었지’ 하는 식이었다.

김고냥과 동거하며 느낀 건 세 가지다. 첫째, 단정한 자세의 매력이다. 고양이는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바른(?) 자세를 하고 있다. 흐트러져 있는 걸 좀처럼 볼 수 없단 얘기다. 오도카니 앉아 있거나 식빵 자세로 엎드려 있거나 하는 식이다. 집사가 특별히 씻기지 않아도 외관이 깨끗하다. 눈에 왕방울만 한 눈곱을 달고 있다거나 정수리(라고 할 수 있는 부위)에 새집을 짓고 있다거나 하지 않는다. 시간만 나면 몸을 뒤틀어가며 혀로 몸을 단장해서다. 만약 고양이가 지저분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다면 병에 걸렸나 의심해봐야 한다. 고고한 자세로 창밖을 응시하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완전히 망하진 않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마저 생긴다.

둘째, 무표정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개는 뭐랄까 표정이 있다. 고양이는 대부분 무표정이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보면, 그 뒤에 기쁨을, 슬픔을 숨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 날 내 방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었던 적이 있다. 속상한 날이었다. 이유는 잊었다. 한참 후, 고개를 들어보니 김고냥 녀석이 바로 앞에서 왔다 갔다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보통은 목이 터져라 불러대도 무시하는 녀석이었다. 얼굴은 예의 그 무표정인데, 눈빛에 걱정이 가득했다. 이 녀석이 제대로 ‘츤데레’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다.(츤데레는 겉으론 퉁명스럽지만 속으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쯤이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세월을 뛰어넘어 위로를 받는다. 물론 영혼의 속내를 잠시 보여준 후 녀석은 다시 냉혹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지극히 주관적 평가지만, 이를테면 친구에 비유하면 이렇다. 개는 학창 시절 단짝이었지만 졸업 후 얼굴마저 희미해진 친구 같다면, 고양이는 항상 무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던 아이 같다.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는데 한번 얘기를 나눠본 후 반하게 된. 그런 사람은 잘 잊히지 않는다.

셋째, 이 순간의 최선이다. 아직도 김고냥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흔들리는 건 어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탓인 것 같다. 김고냥이 세상을 떠나던 순간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자책 같은. 결국 우리는, 결코 같은 고양이를 두 번 만날 수 없다. 삼십몇 년간 생각해보면 숨 가쁘게 타인들의 세계를 거쳐 왔다. 그중 가장 보드랍고, 흥미롭고, 그리운 세계는 고양이라는 세계였다.
  • 201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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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윤원진   ( 2018-07-19 ) 찬성 : 8 반대 : 8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예전 집 근처 '만두'라는 길고양이가 자주 생각 나네요.
 지금은 좋은 주인 만나서 호강하며 살지만.
 그때 그 애교에 심쿵한 적이 많았었는데.... 가끔씩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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