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장동건

다시 멋있는 배우

사진제공 : CJ 엔터테인먼트
장동건은 그의 말마따나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조각같이 근사한 인물’을 비유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유명인이자 미남의 기준이 된 그에게 대중이 느끼는 건 경이감 또는 위화감이다. 포털에 ‘장동건’을 검색하면 ‘장동건 실물 보면 느낌이 어때요’라는 문의가 뒤를 잇는다. 그의 실물을 본 느낌은 뭐랄까, 아이러니다. 장동건이라는 명사가 가진 화려함과 그가 가진 소탈함의 동사가 충돌하면서 기분 좋은 배반을 만든다.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는데, 답은 그에게 있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 〈7년의 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렇지, 그래야 내 딸이지”, 암흑 속으로 도망치는 딸을 향한 포효는 이글대는 그의 눈빛과 어우러져 공포의 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한편 궁금했다. 장동건은 실제로 자기 아들과 딸을 보며 그런 느낌을 가진 순간이 없었을까. 혹은 ‘태어나보니 아빠가 장동건’이라 장동건의 아들딸로 살아가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그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군요.(웃음) 아들은 클수록 저를 닮았어요. 성품이 그렇죠. ‘내성적인 것 같지만 활달하고, 속 깊은’ 면이 그래요. 딸은 너무 예뻐요. 너무 예뻐서 걱정될 정도로요.”

‘내성적인 것 같지만 활달하고, 속 깊은’은 그대로 장동건에게 ‘붙여넣기’ 할 수 있다. 그는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분명 재미없는 사람도 아니다. 차분한 문장의 행간에 장난기를 슬쩍 녹여 넣는다. 그 농담을 알아봐 주면, 슬쩍 수줍게 웃기도 한다. 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이미지’가 무거워 버겁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이미지를 살짝 비틀어 재미난 상황을 만들어낸다. 비로소 갖게 된 여유다.


다시, 내가 멋있게 보이기 시작한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검은 문장들이 흰 종이에서 일어나 제각기 형상을 만들어 낸다. 《7년의 밤》을 읽으면 세령호를 본 적도 없는데, 세령마을에 다녀온 느낌이 든다. 그 검고 깊은 호수가 책을 읽는 내내 곁에서 너울대는 착시다. 영화 〈7년의 밤〉은 바로 그 호수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수면 위로 드러난 나무의 앙상한 가지는 작품의 메시지다. 수면 위에 드러난 사실과 수면 아래 숨겨진 진실의 경계, 추창민 감독은 그 사실과 진실 사이의 ‘그러나’에 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책이 출간된 뒤 무려 15개 회사가 판권 경쟁을 벌였다. 위더스 필름과 펀치볼이 제작을,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신기한 인연은 배우 류승룡과 장동건 역시 이 소설이 영화화되기 전에 책을 읽었다는 점이다. 책장을 덮은 두 사람의 생각은 동일했다.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 강렬한 예감이 통했는지 류승룡은 최현수 역에, 장동건은 오영제 역에 캐스팅됐다. 오영제는 비뚤어진 인간이다. 비뚤어진 채로 너무 거대해져서 바로 세우기도 어려운 인물이다. 그는 사고로 딸을 잃고, 복수를 결심한다.

“선해 보이는 인물이 가해자가 되고, 악해 보이는 인물이 피해자가 되잖아요. 선과 악의 경계가 뒤엉킨 그 전개가 인상적이었어요. 영화의 오영제는 소설 속 오영제보다는 조금 더 ‘인간 같은’ 인물이죠.”

소설이 출간되고 영화로 개봉하기까지 꼭 7년이 걸렸다. 그 안에는 추창민 감독이 영상을 가다듬고 편집한 2년도 포함돼 있다. 장동건은 추창민 감독이 보여준 ‘작품을 향한 한결같은 정성’에 감동했다고 한다. 현장은 어두웠고, 인물은 무거웠으나 그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추창민 감독이 이마를 ‘M자형’으로 만들어보자고 할 때는 조금 고민도 됐다. 그런 장치들이 인물에 접근하는 데 방해가 될까 싶었다. 감독은 살을 좀 더 찌우라고도 제안했다.

“굳이 살을 찌우고 이마를 밀어 인상을 바꿀 거라면 굳이 저를 왜 캐스팅하셨을까 싶기도 했어요.(일동 웃음) 감독님은 제가 가진 이미지를 비틀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가면을 쓴 사냥꾼 느낌을 내면 더 강렬한 에너지가 나올 것 같다고요.”

신경질적으로 솟은 이마와 굽슬굽슬한 머리카락은 그가 폭주할 때마다 함께 휘몰아친다. 차분하고 젠틀한 장동건에게서 광기를 발견하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저도 제 모습이 신선했어요. 배우는 그럴 때 반갑죠. 그동안 보여줬던 얼굴이 아닌 새로운 인상이 나올 때요. 그 전에는 항상 고민이었어요. 더는 새롭지 않은 저에 대해서 식상한 느낌도 들고요. 영화를 하면서 다시 제가 멋있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웃음)”


장동건, 신사의 품격

영화 〈7년의 밤〉
장동건은 MBC 공채 탤런트 21기 출신이다. 2년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로 입학했다. ‘연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갈증’ 때문이었다. 이미 〈마지막 승부〉로 청춘스타가 된 후였다. 당시는 학업과 연기를 병행할 수 없는 학교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데뷔를 한 탤런트임에도 학업에 집중했다. 한예종 동기 및 후배들에게 장동건은 전설 같은 존재였다. 독보적인 외모에 이미 스타가 된 선배, 농구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외모에 가려진 연기력’은 그가 끊임없이 극복해야 하는 숙제였는데, 이는 영화를 통해 돌파했다. 드라마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과 영화에 담긴 그의 얼굴은 달랐다. 특히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안성기, 박중훈과 함께한 시간은 그에게 전환점이 됐다. 이후 〈친구〉의 동수를 만났다. 가난한 유년기, 2인자의 열등감, 출세의 욕망 등이 뒤엉킨 인물, 그러니까 그 순간이 장동건이 ‘내가 멋있어 보이기 시작한 때’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외모는 자랑할 부분이 아니라고 예전부터 생각해 왔어요. 그건 제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라 부모님이 그냥 주신 거잖아요. 내세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 〈무극〉, 〈태풍〉 등이 지나갔다. 그 사이 장동건은 청룡영화제의 신인상, 조연상, 주연상 3관왕을 거머쥔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그의 인생영화는 따로 있다. 배우 고소영을 만난 〈연풍연가〉다.

“〈연풍연가〉는 고소영 씨를 만나게 된 작품이기도 하고, 지금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뜻깊어요.”

사실 그가 찍은 작품 중에 흔쾌히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는 많지 않다. 특히 최근작인 〈브이아이피〉나 〈7년의 밤〉, 〈창궐〉 등은 더 그렇다. 실제로 머리를 밀고 분장한 아빠의 사진을 보고 딸은 ‘괴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M자형으로 탈모가 생길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금은 많이 회복됐습니다.(웃음) 외모뿐 아니라 내면도 많이 회복됐어요. 워낙 〈7년의 밤〉이 다 같이 깊은 호수에 풍덩 빠진 것 같은 작품이라 후유증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 같이 열심히 후회 없이 달리고 나니까 오히려 후련하고 개운한 느낌이에요.”

추창민 감독은 〈7년의 밤〉으로 사실과 진실 사이의 ‘그러나’를 찾고 싶었다고 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진실 그 아래의 자맥질에 대해서 말이다. 실제 〈7년의 밤〉은 배우 장동건의 ‘그러나’를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 수면 위에 드러난 그의 이미지와 성품을 배반하는 ‘그러나’다. 장동건의 말처럼 인간은 원래 악하거나 선하지 않다. 악함과 선함이 발현되는 상황이 있을 뿐이다. 장동건이라는 배우는 어떤 상황에 밀어 넣느냐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다. 지금껏 그는 ‘근사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뿐이다. 최근 ‘센’ 영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 비슷한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다음 그의 선택은 〈슈츠〉다. 다시 슈트를 입고 신사가 된 장동건을 볼 수 있다. 근사해서가 아니라,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장동건은 ‘다시 멋있어 보일’ 예정이다.
  •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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