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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세상을 순례하는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사진제공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배가 고프다, 그리고 인터뷰가 기다려진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을 만나면 묻고 싶은 몇 가지를 메모해 두었다. 눈은 화면에 고정해둔 채였다. 겨울, 봄, 여름, 가을의 자연을 담은 영화는 겨우내 쌓인 노폐물을 깨끗이 닦아주는 느낌이었다. 그저 제철에 나는 곡식으로 밥을 해 먹고, 과실을 따서 겨우내 먹을거리를 저장해두는 장면인데 지루하지 않았다.

삼청동에서 만난 임순례 감독은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봄볕을 쬐고 있었다. 볕이 눈부셔 좀 안쪽에 앉는 걸 권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그는 보통 양평에서 생활한다. 육식을 하지 않는 그는 작물을 길러서 먹는다. 〈리틀 포레스트〉의 원작자인 일본 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도 동북지방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 그 경험이 만화가 됐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에게나 임순례 감독에게나 그들의 ‘작은 숲’은 자연이다. 그리고 그 자연의 심상을 부려 놓을 수 있는 게 작품이다.

―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 원작 만화를 샀습니다. 집에 가서는 배추된장국을 끓여 먹었고요.(웃음)

“다른 반찬이 없어도 충분하죠? 영화에서 혜원(김태리)이 눈 속에서 배추를 찾아 된장을 풀어 국을 끓여 먹는 장면은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원작 만화는 어땠나요?”

― 만화도 좋았지만 저는 영화 쪽이 더…(웃음), 원작은 아무래도 일본 정서가 더 짙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원작을 봤을 때 느낌도 그랬어요. 이 느낌을 어떻게 한국적인 모습으로 구현할까가 고민이었고요. 일단 음식은 한국의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바뀌었고, 엄마가 떠나는 장면도 되도록 공감대를 높이려고 했어요.”


―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닌 것이다’라는 대사에서 많이 웃었습니다.

“일단 혜원이 혼자 사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위험해 보이지 않길 바랐어요. 근처에 친척이 있었으면 했고요. 대본은 저를 포함해 3명이 각색했습니다. 그러면서 잔재미가 생겨난 것 같아요.”

― 임순례 감독이 넣은 대사는 어떤 게 있나요.

“‘모든 온기 있는 것들은 위안이 된다’는 말은 제가 넣은 것 같아요. 실제로 그렇게 믿어요.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서도, 생명 있는 것들이 주는 위안이 있죠.”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에서 활동을 오래 하고 계시죠. 전작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0)에서는 소와 함께하는 여행기를 담았고요.

“동물과 함께 촬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들의 컨디션에 모든 일정을 맞춰야 하죠. 그럼에도 보람 있는 일들은 촬영하면서 생기는 변화예요. 예를 들어, 우리 스태프 중에서도 ‘살아있는 소를 처음 보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처음엔 무서워하죠. 촬영하다 보면 어느새 친해져요. 제일 먼저 소의 안부를 묻고요. 이번에 〈리틀 포레스트〉 촬영을 하면서도 그랬어요. 한 스태프가 유기 고양이를 구조해왔죠. 지난 작품에서도 그랬거든요. 우리끼리는 영화팀인지 동물구조대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해요.(웃음)”


이유 없이 여유 없는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 자연을 그리워한다는 건 자연이 주는 힘을 안다는 건데, 그 경험이 없는 채로 자란 이들도 많죠. 그런 면에서는 저도 돌아갈 고향이 있는 혜원이 부럽기도 해요.

“젊은 친구 중에 많더라고요. 우리 영화가 젊은이들의 고민을 담고 있기도 해서, 어른 세대에 공감을 줄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오히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분들이 영화를 좋아해주시기도 하더라고요. 혜원처럼 도시생활을 하다가 지친 분들이오.”

― 감독님도 그중 한 명이겠네요.

“며칠이긴 하지만 도시에 나와 있으면 힘들긴 해요. 숙소가 있지만 집에 간 느낌은 아니에요.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답답한 기분이죠. 전에는 일 있는 동안은 도시에 나와 있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웃음) 물론 시골 생활이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아요. 불편하죠. 그런데 며칠 있다가 집에 가 보면, 토마토가 이렇게 자라있고, 피지 않았던 꽃이 피어있고 그래요. 너무 반갑죠.”


― 극 중 혜원 그리고 혜원의 엄마는 자연의 모든 걸 흡수하지만 그 안에는 단단함도 있습니다. 주변의 평가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느낌이죠. 그건 감독의 성향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글쎄요. 저도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그럼에도 저의 중심을 잡아주는 두 가지가 있다면 그건 불교와 자연일 거예요. 두 가지가 제 삶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죠. 이번 영화를 통해서는 이유 없이 여유 없는 삶을 돌아보고 싶었어요.”

― 저는 감독님을 보며 ‘순례자’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름은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건가요.

“순할 순(順)에, 예도 례(禮) 자를 써요. 어릴 적에 제가 무척 순했대요. 잘 울지도 않고요. 그래서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커서는 말을 잘 안 들었지만.(웃음)”


― 학교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맞지 않아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고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갔죠. 영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어떤 걸까요.

“워낙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프랑스 문화원에서였어요. 거기에서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특히 누벨바그(Nouvelle Vague,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으로 기존 권위주의와 관습에 저항하는 1950년대 후반 프랑스 영화계에 일어난 새로운 풍조) 시기의 영화가 많은 자극을 줬어요. 장뤼크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등의 영화를 봤죠.”

― 1996년 〈세 친구〉를 시작으로 영화를 만든 지 꽤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영화를 통해 꿈꾸던 바를 이루어가는 중일까요.

“글쎄,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저 제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동물보호단체나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대표 같은 직책을 맡지 않으면 영화에 더 집중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기에 모른 척하면 제가 행복하지가 않은 거예요. 결국 선택한 거죠. 무엇을 할 것인가.”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미투(#Metoo)’ 운동으로 촉발되어 곧 개소를 앞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공동대표로 곧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면 한동안 그는 그의 ‘작은 숲’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 척박한 도시에 남기로 했다. 자연이 말하는 바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 자연의 일부로 살기로 한 그도,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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