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앞장선 서울대 허대석 교수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연명의료결정제도가 2월 4일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연명의료결정제도란 무의미하게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제도다.

이 제도의 초석을 놓은 이가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다. 허 교수는 진행기 암환자를 항암제로 치료하는 종양내과학 세부전문 분야 교수로 30여 년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일하면서 많은 환자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가 직·간접으로 지켜본 죽음만 6000~7000명에 달한다. 그 죽음을 지켜보면서 허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연명의료결정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법의 시행을 위해 노력해왔다.

허 교수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이란 “죽기 전 재산 같은 걸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 상처 정리가 더 중요하다. 말기 환자와 상담하다 보면 누구나 가족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있다. 인생의 마지막 장에서 상처를 정리하고 떠나는 것”이다.


그 ‘좋은 죽음’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이 연명의료였다. 그는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생명존중을 강조하는 종교계와 부딪히는 등 지난한 길을 걸어왔다. 허 교수는 최근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글항아리 간)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누구도 고통스러운 임종을 원치 않는다”면서 “삶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허 교수의 허락을 얻어 그가 책 속에서 밝힌 그가 지켜본 죽음들과 죽음을 맞는 자세 등에 대해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허 교수는 머리말에서 그가 이 책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유쾌하지도 않을뿐더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죽음에 관해서는 이야기할지언정 누구든 자신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꺼린다. … 연명의료 문제는 법을 시행하고 단속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어떤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새로운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연명의료란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게 한다든가 신장이 나빠지면 혈액투석을 해서 혈액의 노폐물을 걸러내든가 하면서 생명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다.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가족은 임종을 지킬 수도 없다. 당연히 고인이 살아 있을 때 마지막 그의 온기를 느껴볼 수도 없다.

다음은 허 교수가 소개하는 사례들이다.


#1 임종을 지킬 수 없었던 환자 이야기

20년 전 폐렴을 앓아 한쪽 폐를 절제한 70대 폐렴 환자가 있었다. 그는 다시 폐렴에 걸렸다. 항생제를 사용해도 병은 악화됐고 호흡곤란은 더욱 심해졌다. 그는 병원 화장실에서 칼로 몸을 자해해 자살을 기도했다. 의료진의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그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1주일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다.

호흡기능 저하는 점점 더 악화됐다. 아내와 그의 자녀들은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게 해달라고 의료진에게 요청했다. 의료진이 보기에도 한쪽 폐만 있는 환자가 원인균을 알 수 없는 폐렴을 앓으면 치료될 가능성은 낮았다. 다행히 중환자실에서 환자는 잠깐 의식을 회복했는데 그는 또 인공호흡기에 연결된 관을 제거하며 자살을 기도했다.

문제는 그가 평소 연명장치에 의존하는 삶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가족에게 이야기해왔다는 점이다. 유서에서도 그는 자기 입장을 더욱 명확히 했기 때문에 가족은 그가 편안히 임종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채 중환자실에서 2주를 더 버티다가 사망했다.

의료진도 심정적으로는 환자와 가족의 뜻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당시로서는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는 일이어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2 만 7.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아기

태어난 지 5개월 된 남자아이가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진단 결과 아기는 척수성 근위축이었다. 감정표현 등 신체의 기본 기능은 유지되지만 근육이 점점 약해져 자발호흡이 어려워지고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어른으로 치면 루게릭병과 유사하다.

아기는 발열, 기침, 가래 등으로 호흡곤란이 있어 응급실로 여러 차례 왔고 입원까지 했다. 그러던 중 생후 7개월째 되던 시점에 심한 호흡곤란으로 다시 입원했다. 의료진은 아기가 근위축으로 자발호흡이 안 되니 기관 내 삽관을 한 뒤 인공호흡기를 사용할 것을 강하게 권했다. 반면 아기의 부모는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면 인공호흡기 사용을 반대했다.

이런 견해차로 병원윤리위원회의 자문까지 받았지만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아기에게 산소 공급은 했어도 인공호흡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죽음을 맞는 아기가 고통받지 않도록 의료진은 충분한 양의 안정제를 주입했다. 마지막으로 입원한 지 13일 만에 아기는 세상을 떠났다. 태어난 지 7개월 반 만이었다.


환자의 소원을 들어주었지만 가슴 아팠던 이야기 셋

열 살 백혈병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1년 넘게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소년의 소원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었다. 소년의 부모는 “회생 가능성이 없으면 집에 데려가도 되겠느냐”고 의료진에게 요청했다. 소년의 마지막 소원인 강아지를 키우는 일을 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소년의 부모는 소년이 강아지를 키우다가 면역력이 떨어질까 봐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고 했다. 의료진은 결국 부모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퇴원 한 달 후 소년은 강아지를 안고 집에서 편안하게 숨졌다.

한 여성 유방암 환자가 있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밥을 해주고 설거지를 해주는 일이었다.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 가서 그의 마지막 소원을 풀었다. 밥을 해주고 설거지를 하고…. 병원으로 돌아온 그 환자는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20대였지만 말기 신장암 여성 환자가 있었다. 그의 소원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임용고시에 합격한 상태였다. 교사가 되려면 2주일 동안 교사연수를 받아야 했다. 그는 그 연수를 받기 위해 퇴원했다.


연명의료는 이 같은 소원 풀기를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가족들은 어떻게 임종을 지킬 것인가. 허 교수는 이런 사례를 들려준다.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던 50대 남자가 폐렴이 악화돼 점점 심해지는 호흡곤란으로 인공호흡기 사용이 불가피한 상태가 됐다. 의료진은 가족에게 인공호흡을 시작한 뒤 호전되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으니 환자와 나누고 싶은 대화가 있으면 지금 나누라고 했다.

시술하기 전 아내와 자식들은 남편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울먹이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했다. 환자는 말은 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했다. 그 가족은 지금도 환자가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한 긴 시간보다 고인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던 그 짧은 시간을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간직하고 있다.

아직은 작은 출발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을 반기는 이유다.”
  • 2018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811

201811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8.11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