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 피움랩스 대표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향기의 주크박스 만드는 디퓨저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아침이면 상쾌한 향기로 뇌를 깨워주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은은한 향기로 피로를 풀어준다. 저녁이면 수면을 촉진하는 향기가 퍼진다. 시간과 상황, 취향에 따라 각기 다른 향기를 뿜어주는 ‘스마트 디퓨저’를 개발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김재연 피움랩스 대표(CEO)를 만났다.

피움랩스의 본사가 있는 뉴욕에서 일하는 그가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였다. 피움랩스는 2016년 10월 법인을 설립한 후 제품을 개발해 2017년 8월 세계 최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세계시장에 선보였고, 올해 4월 시판할 예정이다. ‘스마트 디퓨저’는 아로마 세러피(향기 치료)의 효능을 체험한 김재연 대표의 개인적인 경험에 코넬대 박사과정에서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던 그의 전문성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미국 북쪽 지방에 있는 코넬 대학은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습니다. 공부 스트레스도 높아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환경이지요. 저 역시 우울한 기분이 들고 기운이 떨어져 있을 때 친구 집에서 로즈메리 향을 맡고 기분이 확 좋아졌습니다. ‘후각에는 시각, 청각으로 대체할 수 없는 힘이 있구나’ 하고 그때 느꼈죠. 그때부터 에센셜 오일의 효능에 대해 공부하고, 제 생활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84년생인 김재연 대표는 구글, 야후, 네이버, 다음 등 검색엔진 서비스가 비약적으로 몸짓을 키워가던 때 본고장에서 공부하고 싶어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일리노이 공대를 거쳐 코넬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그는 ‘기술 개발이 사람들의 삶에 와 닿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황성재 피움랩스 CSO(최고전략책임자)와는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 관련 국제학회에서 만난 사이다.

“저는 미국의 코넬대, 황성재 박사는 한국의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지만 매년 학회에서 만났습니다. 같은 분야라서 서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죠.”

1982년생인 황성재 박사는 10여 개국에서 300여 건의 특허를 출원하면서 ‘발명왕’이라 불리는 인물. 여러 기업에 기술이전을 하면서 모은 자금으로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양성하면서 투자하는 ‘퓨처플레이’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퓨처플레이는 스타트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투자뿐 아니라 기술 개발, 특허출원, 법률, 회계 등 다방면으로 지원하는 곳이다. 김재연 대표는 2014년 박사과정을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온 후 퓨처플레이에 합류해 황성재 박사와 함께 일했다.

“나만의 아이디어로 제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싶었어요. 오감 관련 사업을 분석해보니 시각, 청각, 촉각에 관한 특허는 많이 나와 있지만, 미각과 후각 관련 특허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후각은 사업화하기 좋은 분야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디퓨저에 사물인터넷을 접목

피움랩스 황성재 CSO(왼쪽)와 김재연 CEO.
향초, 디퓨저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일상생활에서 향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커졌지만, 아직은 기술혁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이들은 주목했다. 보통 자연 증발이나 스프레이, 향초 등으로 향기를 활용하고, 전기로 팬을 돌려 향기를 퍼뜨리는 전자 디퓨저가 있긴 하지만 끄고 켜는 간단한 기능밖에 없었다.

이들은 디퓨저에 사물인터넷을 접목한 ‘스마트 디퓨저’를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언제 어떤 향을 어느 강도로 퍼뜨릴지 컴퓨터나 스마트폰, 인공지능 스피커 등으로 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알맞은 향을 추천받을 수도 있는 디퓨저다. ‘이 멋진 제품을 세상에 퍼뜨려보자’며 직접 사업에 뛰어들기로 의기투합한 이들은 ‘피움랩스’라는 이름으로 별도 법인을 설립하면서 김재연 씨가 CEO를, 황성재 박사가 CSO를 맡았다.

“캡슐커피 머신처럼 에센셜 오일이 들어 있는 캡슐 3개를 꽂아 사용하는 디퓨저입니다. 자연 증발하는 디퓨저와 달리 시간을 정해놓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알람처럼 향기가 퍼지도록 시간을 설정해 놓으면 아침에는 뇌를 깨우는 레몬이나 로즈메리, 바질 향 등을 맡으며 일어나고, 퇴근 후 집에 들어설 때는 기분이 좋아지는 달콤한 로즈 향을 맡고, 편안한 라벤더 향을 맡으며 잠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없을 때는 사용을 중단해 오일을 아낄 수 있지요. 인공지능 스피커에게 ‘피움에게 피곤하다고 말해줘’라고 이야기하면 ‘당신을 위해 이런 향을 준비했어요’라면서 긴장을 풀어주는 향을 내뿜을 수도 있습니다.

전자제품의 소리를 조절하듯 향기의 강도도 조절할 수 있어요. 캡슐에 들어 있는 세 가지 향을 섞어서 다양한 향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향을 어떤 비율로 섞는지, 바탕에 어떤 향기를 깔고 중간에 어떤 향기, 마지막에 어떤 향기를 더하는지에 따라 정말 다양한 조합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신이 번쩍 나는 록 음악, 편안한 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향기의 주크박스라고 생각해요. 사용자들끼리 경험을 주고받으면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죠. 캡슐의 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그동안의 사용 패턴을 분석해 ‘다음 패키지로 이것을 준비해보았어요’라고 새로운 향을 추천해줍니다.

어떤 알레르기가 있는지,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지, 임신을 했거나 아기가 있는지 등 개인적인 상황을 알려주면 거기에 맞춰 향을 골라줍니다. 동그란 기기에서 사방으로 향이 퍼져나가는 데다 팬으로 강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디퓨저보다는 훨씬 넓은 공간을 향으로 채웁니다. 호텔, 카페 같은 상업 공간이나 사무실에서 활용하기도 좋지요.”

김재연 대표는 이 디퓨저에 대해 우선 자신이 사용하기 좋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주로 물에 에센셜 오일을 두세 방울 떨어뜨려 사용했어요. 매일 아침 씻어줘야 해서 번거롭고, 매일 같은 향기를 같은 강도로 맡다 보면 향에 둔감해져요. 무난한 향기만 시도하다 보니 정작 내가 좋아하는 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희 제품은 캡슐 커피를 골라 마시듯 다양한 향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또 어느 지역에서 어느 연령대의 소비자가 어떤 향을 선호하는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모을 수 있어 향기 업체들이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시장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지요.”


세계로 간다


이 제품이 공개되자 세계 곳곳의 향수업체와 방향제업체, 그중에서도 미국과 프랑스의 향수업체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한다. 지금은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세계적인 향수업체에서 향을 공급받으면서 공동 브랜드로 제품을 출시해 세계시장을 겨냥할 계획이다. 뉴욕에 본사를 둔 것도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제품 생산은 한국에서 하지만, 마케팅과 판매 기반은 미국에 둘 예정이다. 김재연 대표는 미국에서, 황성재 CSO는 한국에서 일하지만 채팅 프로그램 등을 통해 수시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말한다. 피움랩스의 조직 규모는 크지 않다. 제조와 마케팅 등을 대부분 협업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맡아 시행착오를 거듭하기보다 검증된 업체에 맡기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저희는 향기로 공간을 디자인하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향기를 사용하는지에 대해 풍부한 데이터를 갖출 수 있다는 게 우리의 본질적인 가치지요. 그런 면에서는 샤넬도 우리를 따라올 수 없을 거예요.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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