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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뿌리를 아는 순간, 치유는 시작된다.

‘월간 정여울’ 프로젝트 시작한 정여울 작가

“우리가 괜찮다, 힘들지 않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 안의 어떤 것이 짓밟히고 있다. 시들어 간다. 그 무언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트라우마, 그림자, 그리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중에서)

사진제공 : 이승원
정여울 작가는 신간 에세이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민음사)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픔을 치유하려면 그저 괜찮다는 말로 무조건 덮을 게 아니라 그 아픔이 어디에서 오는지 뿌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 뿌리를 찾는 유용한 도구로 심리학을 꼽는다.

정여울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융 심리학에 빠져 살았다. 이번 책에서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발견하고 이를 융 심리학 공부로 치유해온 과정, 트라우마의 다양한 유형을 문학작품 속 인물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정여울 작가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 세 딸을 낳아 기른 어머니 밑에서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맏딸로 자라며 갖게 된 트라우마가 있다”고 고백했다. 이 트라우마가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혀 왔음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거쳐 융 심리학에 입문했고, 이제는 문학마저도 심리학의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이번 책 제목처럼 저는 늘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괜찮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저는 작가가 되길 원했지만 부모님은 제가 사법고시를 보길 바랐죠. 또 국문학과 박사과정 땐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좋아하는 장르였던 영화 리뷰와 문학평론 등을 썼어요. 그런데 교수님과 선배들은 저를 비난하거나 좋게 보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걸 할 때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외로웠어요. 그러다 문득 이런 외로운 마음이 왜 드는지, 다른 사람들은 왜 내게 비난을 하는 건지 궁금해졌어요.”

그는 자기 이해와 자존감을 찾기 위해 심리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알프레드 아들러, 프로이트, 융 등의 다양한 심리학을 통해 주위 사람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왜 싫어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그건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사였어요. 자신의 마음에 비춰 상대를 보는 거죠. 예를 들면 부모님의 경우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맏딸로 자라야 한다는 마음에 비춰 저를 봤기 때문에 사법고시 보길 바랐던 것이었어요. 교수님의 경우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는 건 학자로서의 길이 아니라는 마음에 비춰 저를 봤기 때문에 제 행동이 싫었던 거죠. 다른 사람의 입장은 그렇더라도 ‘왜 나는 이토록 괴로운 것일까’ 고민하며 저 자신 밑바닥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니 저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던 거예요. 조금이라도 저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심이 있었던 거죠. 그렇게 심리학을 통해 제 마음이 돌아가는 과정과 흐름을 알게 됐어요.”


융 심리학을 만나다


그는 박사과정의 조직문화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고, 슬럼프에 빠졌을 당시 우연히 조지프 캠벨의 《신화와 심리학》이란 책을 접하게 됐다.

“이 책을 보면서 고민과 걱정이 싹 사라졌어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죠. 이때 느꼈던 걸 《씨네 필 다이어리》에 썼어요.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지프 캠벨의 심리학을 연결해 우리 삶에 드러난 상처를 비춰보는 주제의 글이었어요. 이때만 해도 월세 낼 돈이 없어 힘들었지만 이 글을 쓰면서 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 글을 쓰면서였고요. 이런 마음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졌는지 많이 공감해줬고 강연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심리학을 주제로 책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는 이미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공부할 권리》,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에도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융 심리학과 관련된 내용을 책 곳곳에 담아내 왔다. 그가 융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사람의 심리를 정확하게 분석해 마치 과학적으로 진단하듯 풀어내는 프로이트,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아들러도 좋지만 인간의 다채로운 욕망의 긍정성에 주목한 융을 가장 좋아해요. 심리학자이자 의사이기도 한 융은 환자를 대할 때 ‘눕지 말아라,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프지 않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부분이다. 당신은 자신이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저 그 힘을 꺼내주는 조력자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스스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융 심리학이 저에게도 큰 힘이 됐어요.”

융이 환자를 사례로 들어 자신의 이론을 설명했듯 그는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치유 경험을 솔직하게 얘기한다.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에는 모범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엘리너와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매리앤 자매가 나온다. 그는 “제가 엘리너와 같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매리앤과 같은 사람을 미워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융 심리학을 통해 저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한 후 그 반대라는 걸 깨달았어요. 융이 말한 그림자란 자기 안의 ‘열등한 인격’을 뜻해요. 결핍, 콤플렉스, 집착, 질투, 트라우마, 분노, 이기심 등 모든 부정적인 사실이 그림자의 세포를 구성하는 것이죠. 그 그림자를 찾는 것이 상처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치유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해요. 심리학을 통해 저는 거절할 권리를 배웠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덜 하고 싶은 걸 내려놓는 거죠.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마음을 알고 건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과정 같아요. 설령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이더라도요.”


‘당신의 감각을 깨울 12개월 프로젝트’

그는 올 한 해 매달 1권씩, 총 12권의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이름하여 ‘월간 정여울’이다. ‘당신의 감각을 깨울 12개월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붙은 ‘월간 정여울’은 매달 의성어나 의태어 하나를 중심으로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낼 예정이다.

“매체의 성향이나 단행본의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조금 더 자유로운 글, 저다운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의성어, 의태어와 어울리는 영화, 시, 음악, 그림, 소설, 문학 등 일상에서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에요.”

1월의 주제는 ‘똑똑’이다. 그가 독자에게 다가설 때마다 느끼는 부끄러움과 수줍음을 나타낸 표현이라고 한다. ‘똑똑’이라는 노크 소리처럼 문을 두드리며 새롭게 시작하는 1월의 계절 이야기, 어린 조카와의 대화에서 얻은 깨달음, 글쓰기 수업에서 학생들을 멘토링하며 고민했던 것,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인가 등 다양한 주제의 얘기로 구성됐다. ‘똑똑’에 이어 콜록콜록, 까르륵까르륵, 와르르, 달그락달그락, 옥신각신 등을 차례로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매달 단행본을 내는 게 새로운 시도인 만큼 1년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평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하지 않지만 독자들과 오프라인에서 글을 통해 소통하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그래서 단행본에 독자 편지를 넣었어요. 손편지를 준 독자들과 만나 고민을 나누는 ‘작가와의 대화’라는 자리도 마련할 계획이에요. 그저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는 위로가 아닌 상처를 있는 그대로 말하고, 괜찮지 않은 마음을 꾸밈없이 얘기할 수 있는 자리를 통해 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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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가습기   ( 2018-02-03 ) 찬성 : 0 반대 : 0
작가님 글 참 좋아하는데 월간 프로젝트 기대됩니다 1월 똑똑 부터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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