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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좋은 광대가 되고 싶다”

평범한, 그래서 위대한 사람 〈대장 김창수〉 그리고 배우 조진웅

사진제공 : 키위미디어
“가보입시다.”

〈대장 김창수〉의 대장 김창수가 되기로 결정한 조진웅이 한 말이다. 결정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명량〉을 함께 했던 배우 최민식이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선배는 기어이 그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은 ‘아직’ 아니었다.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 받았을 때부터, ‘이제 내 차례인가…’ 싶은 예감은 들었다. 미룰 수는 있어도 피할 길은 없다. 배우 조진웅의 연기 인생에서도 다음 막이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변화구는 없다. 직구만 있다’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제 조진웅의 차례

청년 김창수가 백범 김구임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김구가 아닌 김창수로 살던 시절의 이야기는 더욱 알려지지 않았다. 〈대장 김창수〉를 완주하고 조진웅에게 찾아온 마음은 뜻밖에 ‘당당함’이었다. 선택하기까지는 어려웠지만, 달려온 길은 오히려 후련했다. 아무리 어려운 장면, 피나는 고생도 ‘실제 김창수와 그의 동지들이 겪은 일’에 비하면 풍족했다. 컷 소리가 나면 빠져나올 수 있는 현실이었다. 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시절을 살다 간 이들에게 “부족한 우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예쁘게 봐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찍었다. 현장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1%의 불협도 없는 기이한 현장이었다. 조진웅은 〈대장 김창수〉에서 연극하던 시절을 떠올렸다고 했다. 영화에서도 이렇게 다 같이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일 수 있음에 감격하던 나날이었다.

— 결정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대장 김창수〉는 어떻게 찾아왔습니까?

“생전 김구 선생님이 풍채가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캐스팅할 수 있는 배우군이 좁아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웃음) 처음엔 피했습니다. 제작사 대표가 저를 잘 아는 분입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잘 아는 분이고요. 속으로는 ‘올 게 왔구나’ 싶었습니다. 제 가장 친한 친구인 아내도 ‘결국 할 거면서 왜 그래’라고 했고요. 하지만 못 본 척했습니다. 다른 분이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리기도 했고요. 이원태 감독님을 만나서 투정도 부렸습니다. ‘(책)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농담도 했었죠. 하지만 전 이미 봤는걸요. 그렇게 3년이 지나고 ‘한번 해보자’ 싶었습니다.”

— 지금은 도리어 편안해 보이는데요.

“한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이렇게 ‘당당해’본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앞으로 김구라는 인물의 궤적을 살필 때 〈대장 김창수〉는 하나의 자료가 될 겁니다. 제가 그 작품에 김창수로 참여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요. 영화가 잘되면 좋겠지만, 꼭 잘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이 영화 자체가 가진 고귀함 때문입니다. 살면서 우리는 언제든 이 인물을 만날 겁니다. 지금이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가 될 수도 있죠. 우리 자식들이 보게 될 수도 있고요. 그때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영화예요. 그 때문에 저도 이 작품에 누가 되지 않게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뭐, 광대가 어디 가지는 않겠지만 좀 더 좋은 광대가 되리라 믿고요.(웃음)”

— 김구 선생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청년 김창수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 걸 영화를 보며 알았습니다. 특히 감옥에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친 장면은 인상적이었어요.

“저에게 감동을 준 건, 그분 역시 아무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 평범한 사람이, 자신과 똑같이 평범한 사람들과 손을 잡고 일어난 겁니다. 처음부터 위대한 지도자였던 게 아니라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한 사람인 거죠. 저는 그의 그런 시절을 연기했다는 게 참 좋습니다.”

— 끼워 맞추기 같긴 하지만, 군 시절 군대에서 연극반을 만들어 연기를 가르쳤다고 들었습니다.

“신념화교육 시간이 있었습니다. 훈련과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시간이었는데, 제가 연극을 해보자고 건의했죠. 후임병 중에 건달 같은 친구 둘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둘을 캐스팅해서 역할을 맡겼는데, 서로 티격태격하느라 연기를 못하는 겁니다. 저는 극작법을 배웠으니, 대사나 음악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았습니다. 덕분에 우리 부대가 1등을 했고, 다 같이 포상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그때 그 친구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저 제대할 때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위로는 개기고, 아래로는 갈구자


— 동료들과의 관계도 유독 돈독해 보입니다.

“남동생이나 형이 없어서 그런지 선후배들을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살뜰하게 챙기는 건 아니에요. 제 신조가 ‘위로는 개기고, 아래로는 갈구자’ 입니다.(일동 웃음) 이번 현장에서도 모두 형·동생으로 지냈습니다. 역할은 다 달라도,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죠. 그 힘과 의지가 주는 에너지는 뜨겁습니다. 〈대장 김창수〉로 저는 받은 게 무척 많아요.”

— 살뜰하게 챙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다작(多作)하는 중에도 카메오로도 자주 만납니다. 〈마차타고 고래고래〉, 〈범죄도시〉 등에서도 잠깐 등장해 화면을 집어삼켰죠. 반갑기는 하지만 버겁지는 않은지 궁금합니다.

“〈마차타고 고래고래〉는 조한선 배우가 오랜만에 하는 영화니까 뭐라도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범죄도시〉는 강윤성 감독님도 오래 알던 사이고, 마동석 형이 하는 영화니까 꼭 돕고 싶었고요. 영화 보니까 형이 고생을 많이 했더라고요. 저희는 어디가 어떻게 아프겠다 싶은 게 다 보이니까, 안쓰럽죠. ‘형 몸 좀 살피면서 해’ 그런 말이 저절로 나와요.”

— 정작 본인도 몸을 아끼는 것 같진 않습니다. 하나를 하면 ‘끝까지 하고야 마는’ 우직함이 보이고요.

“그건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일 겁니다. 저희 아버지가 그런 분이세요. 크게 소리를 내거나 윽박지르지도 않으시는데, ‘아닌 건 아닌’ 분입니다. 차라리 화를 내면 대들기라도 하겠는데, 긴 말을 안 하세요. 저랑 외모는 전혀 다르신데, 저희 어머님과 제 아내는 아버지와 제가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 심지어는 이름까지 같죠.(조진웅의 본명은 조원준이나, 데뷔 때부터 아버지의 이름인 조진웅을 쓰고 있다.)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좋았습니다. 누가 전화를 걸어서 조원준을 찾으면 사적인 일이고, 조진웅을 찾으면 작품과 관련된 일이었으니까요. 지금은 ‘로열티’가 너무 비쌉니다.(웃음) 집에 제가 받은 상이 제법 쌓였는데, 저보다 아버지가 더 흐뭇하게 보세요. 상 받으면 본인이 받은 것처럼 여기저기 밥도 사고 다니시고요.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라,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참에 김창수로 바꾸든지 할까 봅니다.(일동 폭소)”


그렇게, 가보겠습니다


아버지 조진웅은 그에게 배우로서의 첫 이름을 갖게 해준 존재다. 김창수는 그에게 두 번째 이름이 될 만큼의 흔적을 남겼다. 이 만남은 그가 가진 성정과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진웅은 대화 중에도 몇 번이나 자신의 뺨을 치며 “정신 차리자”라는 말을 했다. 촬영 중에도 몇 번이나 “할배 정말 대단하시네요”라는 말을 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의 곱절의 나이를 먹고도 연기만으로도 이렇게 두려운데, 그는 그 푸른 나이에 어떻게 이 모든 일을 감당해 냈는가’ 경이로워서다.

영화의 마지막, 김창수가 김구가 되어 백두대간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도 그는 가슴에 담아 두었다. 이 눈부신 나라가 누군가 자신을 던져 지켜낸 나라라는 걸 잊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그때 썼던 그 안경은 지금도 조진웅과 함께 있다. ‘할배’의 한 조각을 간직하고 싶어 소품팀에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 김구 선생의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

“김구 선생님의 삶은 직구예요. 변화구가 없어요. 아플 줄 알면서, 맞을 줄 알면서 가요. 그래도 또 던져요. 한 시절 그렇게 살아보니, 마음이 떳떳해요. 저도 이제 그렇게 가보려고요.”
  •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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