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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산업의 기수들

‘농부가 바람나지 않고서야 어찌 먹고 살겠나’

우리 밀과 우리 쌀로 건강빵 만드는 ‘바람난 농부’ 유지혜 대표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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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대표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 중국어를 전공했다. 중국 유학을 다녀와 2년간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귀농을 결심했다. 고향인 전북 김제 진봉면에서 부모님과 함께 논 26만 4462㎡(약 8만 평)에 벼와 밀, 보리를 재배하고, 직접 농사지은 곡식으로 빵·쿠키 등을 만들어 6차산업을 일구어가고 있다. 100% 우리 밀과 우리 쌀로 만든 수제 건강빵 ‘바람난 농부’는 그가 만든 대표 브랜드다.

사진제공 : 유지혜
자신만의 농법으로 농업의 미래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는 처녀 농부가 있다. 우리 밀과 우리 쌀 100%로 만든 수제 건강빵 브랜드 ‘바람난 농부’의 유지혜(33) 대표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 꿈꾸던 ‘농부’의 길을 걸으며 당차게 6차산업의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 중국어를 복수 전공하고 중국에 유학을 다녀와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유지혜 대표는 스물일곱이 되던 해인 2010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 중 하나는 “반드시 남자만 가업을 이어받아야 하나라는 반감이 작용했다”고 한다.

“여자라고 농사를 못 지을 리 없잖아요. 대학을 마치고 유학까지 다녀온 이유는 농촌에 있는 사람들은 학교도 못 나오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깨고 싶어서였어요. 단순하게 할 일 없어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제대로 농사짓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사실 ‘농사를 지어야지’ 하고 막연히 생각만 했지, 농업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부모의 권유로 전북대 평생교육원에서 ‘농식품마케팅’ 교육을 받은 게 본격적인 농촌 생활의 출발이 됐다.

“농민들과 교류도 하고 선도 농가를 만날 좋은 기회였어요. 예전에는 성실하게 농사지으면 먹고살 수 있다고 했는데, 농업으로 억대 매출 내는 사람들을 만나며 열심히 하면 농업에 비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매력이었던 건 해외 농장 탐방이었어요. 열흘 정도 터키의 올리브 농장에 다녀왔는데, 해외 농업 사례를 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유지혜 대표가 터키에서 만난 농업은 우리와 달랐다. 농민 본인은 물론이고 관련 기관까지 농업을 대하는 태도부터 너무 달랐다. 우리나라는 농산물 가공 하나를 하려 해도 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햇섭(HACCP) 인증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한 데 반해 외국은 법의 잣대 위에 농가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농업과 관련한 각종 법규는 농업을 규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을 돕는 보조 장치로 기능했다.

농민들의 농업을 대하는 자세도 달랐다. 이들은 당장 농사로 돈을 벌기보다는 후대를 생각했다. 후대를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은 정직하게 농사를 짓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직한 농사는 곧 소비자에게 농민이 생산한 농작물에 대한 신뢰를, 후대에는 물려받아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가업으로 만들었다.  


농외소득으로 시작한 건강빵


유지혜 대표는 7년 차 농부다. 이제는 이앙기, 지게차 작업은 물론 밀 파종과 건조작업을 도맡아 할 정도로 능숙한 농군이 됐다. 그의 농장은 가족 3명의 분업으로 돌아간다. 트랙터나 콤바인 작업은 부친이, 전체적인 운영과 관리는 모친이 맡았다. 

“농사는 인건비가 관건이에요. 농사에 드는 고정비용은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한계가 있지만, 인력만큼은 가족이 발 벗고 나서면 충분히 줄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농장일이란 게 매일 바쁜 건 아니다. 6월에 보리와 밀을 수확하고, 동시에 모내기를 한다. 10월과 11월에는 벼를 수확하면서 보리 파종을 한다. 나머지 달은 생육 기간이라 관리만 하면 되기에 수월하지만, 이모작의 교체가 이루어지는 6월과 10월에는 일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유 대표가 농사일을 배우며 밀 파종은 그가, 모내기 작업은 아버지가 맡아 농장의 인건비가 줄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농사는 연대의식이 있는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7년 차 농부로서 농업에 대한 물리를 일부 터득했지만 그 ‘깨달음’을 소득 증대로 이어가는 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그는 외국 농가에서 봤던 농산물 가공을 떠올렸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빵과 쿠키다.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농한기에는 시간적 여유는 많지만 돈이 없어요. 농촌은 월급 개념이 없어서 한 번 수확해서 번 돈을 12개월로 나눠서 생활해야 합니다. 세 식구가 소득 없이 노는 시기가 많더군요. 농외소득을 위해 체험교실을 구상했어요. 쌀로 만들 수 있는 가공식품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쉽게 체험할 수 있는 ‘빵’을 떠올렸죠.”

제빵 기술을 2개월 동안 배웠다. 직접 농사지은 쌀과 밀로 만들었다. 밀을 재배하고 제빵 기술을 익혀 빵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SNS에 올렸더니 알음알음 소문이 나며 반응이 왔다. ‘빵을 사 먹고 싶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량이 늘었다.

“아무리 빵을 잘 만들어도 대기업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틈새시장을 찾다가 건강빵을 떠올렸어요. 빵은 먹고 싶은데 건강상의 이유로 밀가루 빵을 못 먹는 사람들에게 우리 밀과 우리 쌀을 섞어 만든 빵을 팔아보자는 아이디어였죠. 반응이 좋았습니다. 먹어본 사람들이 수입 밀로 만든 빵에 비해 부드럽진 않지만 달지 않고 속이 편하다는 말을 했어요.” 

SNS를 통해 주문이 이어졌다. 단팥빵과 곰보빵 두 가지를 선보였는데, 첫 달에 600개의 주문이 들어왔다. 그동안 SNS를 통해 밀농사 짓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준 점이 한몫했다. 처음 농사일을 시작하며 마음먹었던 ‘먹거리는 무엇보다 신뢰가 우선’이라는 신념이 맞아 떨어졌다.


‘건강빵’은 만들었지만 그에게 빼어난 제빵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원도 다니고 레시피도 만들었지만 어떤 날은 반죽이 질었고 어떤 날은 반죽이 흐물흐물했다. 또 쌀만으로 빵을 만들려니 맛이 없고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유 대표는 매일매일 빵을 만들고 기록을 하면서 알맞은 밀가루와 쌀가루의 비율을 찾아갔다.

“시작한 지 1년이 넘어서야 레시피와 빵의 맛을 표준화시켰어요. 1년 전에 내 빵을 처음 먹어본 손님들에게 빵 맛 좋아졌다는 말을 종종 들어요. 연습해온 성과이기도 합니다. 주문이 계속 들어와서 이제는 1년 내내 빵을 만들어요.”

유지혜 대표는 농산물 가공식품 허가를 낸 지 1년 만인 지난해 4월까지 1년 동안 14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주위에서 “생각보다 못 벌었네?”라고 말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부업일 뿐”이라고 받아넘긴다.

“1400만 원을 12개월로 나누면 농외소득으로는 괜찮은 편이에요. 무조건 억대 매출을 내야만 성공한 건 아니잖아요. 한 달에 50만 원씩만 벌자 생각했는데, 계산해 보니 더 많이 벌었어요. 적은 돈이 아닌 거죠. 주위에서 매장을 내보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거절했어요. 단 10명이라도 건강을 위해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꾸준히 파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주업은 농사고 빵과 쿠키는 농외소득일 뿐이에요. 욕심 없어요.”


빵과 쿠키를 굽느라 바쁜 유지혜 대표에게 지난해에는 새로운 직함이 생겼다. 농협이 젊은 여성 농민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힘을 모으기 위해 출범시킨 청년여성농업인CEO중앙연합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10명의 농군으로 시작해 지금은 50여 명의 회원으로 규모가 커졌다.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제 일만 하고 농사짓고 쉴 때 쉬고 남는 시간에 빵 만들고 했는데, 지금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이 늘었죠. 인터뷰가 많아지고 방송에 나가게 되면서 주위에서 스타 농업인이라고 불러요.” 

주위의 관심이 커질수록 젊은 농군으로서 짊어진 그의 책임감은 더 무겁기만 하다.

“사람들이 대부분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지어야지’라고 말하는데, 이게 진짜 어려운 일이에요. 시기에 맞춰 농작물을 심고 파종해 수확하기까지 신경 쓸 일이 많죠.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없으면 못 하는 직업입니다. 모두가 대기업에 들어가고 공무원이 될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는 국민 먹거리를 책임져야죠. 농촌에 있다고 농사만 짓는 게 아니에요. 농사지어 1차 생산물을 만들고 그걸로 가공도 하고, 체험교육도 진행하죠. 또 농업과 관련한 강의도 나갈 수 있어요. 당당하면 뭐든 이룰 수 있습니다.”

최근 유지혜 대표는 아이들이 우리 밀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공간을 만들고 있다. 체험 학습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마을을 홍보하고 지역 판로도 개척하기 위해서다.

“외할머니가 늘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 간다’는 말을 했어요. 큰 나무 하나 있으면 그 그늘이 멀리까지 혜택을 준다는 의미죠. 제가 만든 빵이 잘 팔리면 주변 농가에서 만든 팥도 사주고, 근처 사람들 인력도 쓰고 일자리도 창출해줄 수 있습니다. 저는 돈 벌어서 좋고, 일자리가 늘어나니 동네가 살고 결국은 김제가 살고, 농촌이 잘되면 우리나라도 잘살게 되지 않을까요. 나 하나만 잘사는 게 아니라 내 힘으로 주변에 도움을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죠.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조금씩 그 꿈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유지혜 대표는 ‘바람난 농부’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독특한 브랜드다.

유 대표가 그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언젠가 농장으로 저를 찾아 지인이 왔는데, 교육 때문에 늘 밖으로 나돌 때였어요. 지인이 ‘농부가 농사는 안 짓고 밖으로만 다닌다’며 ‘농부가 바람났네’ 하셨죠. 그 말에서 ‘바람난 농부’라는 브랜드를 떠올렸어요.”

유 대표는 정말 1년 365일을 바쁘게 지내는 농부다. 철 따라 농사도 지어야 하고, 농산물로 가공식품도 만들어야 한다. 또 직거래 장터에 다니랴, 교육받으랴. 지금은 강의도 나가야 한다. 1년 내내 바쁘지 않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바람난 농부’다.
  •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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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김수영   ( 2017-11-12 ) 찬성 : 3 반대 : 0
와우 바람난농부 짱 ~^^
 일자리창출등
 더불어사는세상 ~
 
 저도귀농 3년차 열심히 해볼생각입니다
 화이팅 합시다 유대표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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