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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신념대로 농사지을 수 있도록 응원하는 펀드를 만들다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

사진제공 : 농사펀드
서민 식탁에 만만하게 오르던 달걀도 살충제 파동으로 먹기 꺼려지는 세상이다. 사실은 동물을 학대해서라도 인간의 이익만 최대한 챙기려는 태도가 이런 사태를 불러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때보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요즘, 먹거리 생산자와 소비자를 신뢰로 연결하는 곳이 있다. 농부와 어부가 자신의 철학대로 농업이나 축산업, 수산업을 할 수 있도록 투자한 후 건강한 먹거리로 돌려받는 크라우드 펀딩 업체 ‘농사펀드’가 그곳이다.

“경북 봉화에서 다섯 농가가 모여 소규모 자연 양돈을 하고 있습니다. 돼지 한 마리당 도시 투자자 약 40명, 매주 5마리 정도의 꾸준한 수요가 있다면 안정적으로 자연 양돈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미리 수요를 파악해 신선한 돼지고기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농사펀드 홈페이지에서 투자자를 모으고 있는 ‘땅 파는 까망돼지’이다. 그들이 키우는 돼지는 동물복지 인증 기준의 10배인 널찍한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생활한다. 채소와 과일, 온갖 풀과 발효시킨 쌀겨, 깻묵 등 건강한 먹이를 먹으면서 자란 돼지는 배합사료로 키운 돼지보다 몸집이 작다. 하지만 살코기에 붙은 비계까지 고소하고, 균형 잡힌 영양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일교차가 큰 경북 영주의 소백산 자락에서 사과를 키우는 농부는 단단하고 아삭한 식감이 일품인 양광, 초록색 아오리보다 더 익혀 단맛이 강한 붉은 아오리, 새콤한 홍옥 등 시장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사과들의 수확을 앞두고 투자를 받았고, 목표액을 훌쩍 넘겼다. 제초제, 성장촉진제, 화학비료, 반사필름 등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농가로, 농학을 전공한 아들이 부모님의 뒤를 잇고 있다. 농사펀드에 올라온 농산물들은 이렇게 누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사진을 곁들여 자세히 밝히고 있다.

2015년 봄 ‘농사펀드’를 시작한 박종범 대표는 “농부들을 만나면 ‘빚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까’, ‘내 철학과 신념대로 농사지을 수 있는 날이 올까’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세요. 그분들이 돈 걱정하지 않고 소신대로 일하실 수 있다면 도시 소비자는 건강한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불안을 덜어드리기 위해 ‘자금의 흐름을 역전시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농사에 크라우드 펀딩을 접목했습니다. 투자자는 농부의 농사계획을 보고 투자한 후 수확 때 건강한 농산물로 돌려받고, 농부는 영농자금을 확보해 빚을 지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거지요”라고 말한다.

강원대에서 컴퓨터정보통신을 전공한 박종범 대표는 대학 3학년 때인 2003년부터 홈페이지 제작 업체에서 일하면서 농촌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 회사가 수익사업으로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 ‘농촌넷’을 만들었어요. 홈페이지를 통해 지역 축제를 알리면서 농촌의 빈 방을 민박으로 소개하는 일이었는데, 사업이 확장되면서 농촌 컨설팅도 맡았습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는 행정안전부의 ‘정보화마을 운영사업단’에서 일하면서 전국을 누볐다. 정보화와 전자상거래를 통해 농촌의 수익을 늘릴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일이었다. 2012~2014년에는 ‘총각네 야채가게’에서 온라인 사업을 맡았다.

“전국 구석구석을 다니며 정말 많은 농부를 만났습니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농부도 있지만, ‘내가 지금 농부를 만나는지, 철학자를 만나는지’ 혼동이 될 정도로 자기 철학이 뚜렷한 농부가 많았습니다. 농촌에 틀어박혀 살면서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고, 안전한 먹거리, 지속가능한 농사에 대한 신념이 강해 정말 배울 게 많았습니다. 그분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친환경 식재료 개발도

농부가 기른 식재료로 유명 셰프가 요리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뿌리밥상’.
2013년 그는 개인적으로 농산물 크라우드 펀딩을 처음 시도했다. 부여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부의 쌀에 대한 투자를 받았지만, 목표액의 50%밖에 모이지 않았다. 콘텐츠를 보완하고 홍보와 마케팅을 강화하자 그 이듬해에는 1300만 원 정도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2015년 3월 농사펀드 법인을 설립했다. 2년여가 지난 현재 농사펀드에 등록된 농가는 350가구, 투자자는 1만 2000여 명에 달한다. 없던 시장을 만들어 기반을 다졌고, 매출은 가파른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급하게 확장할 생각은 없다. 농사펀드에서 투자를 받으려면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자신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적정 규모의 농사를 짓는 농부들만 선별합니다. 토양까지 오염시키는 제초제는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현재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거나 친환경 농사로 전환하고 있는 농부, 성장촉진제나 성장억제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자연의 속도로 농업을 하는 농부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친환경 농사로 전환하려면 몇 년 동안 수확량이 줄어드는데 판로는 확보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 농가를 후원한다는 의미도 있지요.”

농사펀드의 에디터들이 꼼꼼하게 확인해 친환경 농산물만 담은 펀드 상품들.
투자할 농가가 정해지면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에디터들이 현장을 찾아가 꼼꼼히 취재한다. 어떤 농부가 농사짓는지, 환경과 토양은 어떤지, 농사를 짓는 과정이나 가축에 주는 먹이까지 세세히 확인하고 사진을 곁들여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다. 가격은 농부가 직접 정하는 게 원칙이다.

“유통 단계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보통 백화점이나 마트의 친환경 상품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합니다. 가격이 높으면 펀딩이 잘 안 될 수도 있어 이 과정을 겪으면서 농부들 스스로 시장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지요. 원래는 영농계획을 세울 때 투자를 받아야 하지만, 처음 투자하는 분들을 위해 한 달이나 열흘, 1주일 후에 받아볼 수 있는 상품들도 있어요. 재구매율이 높아 이제 ‘농사는 원래 그런 거야’라면서 기다림에 익숙해진 소비자도 많습니다. 홈페이지상에서 결제할 때 농부에게 보내는 ‘응원 한마디’를 써야 합니다. 컴퓨터 사용이 익숙지 않은 농부들에게는 이 응원 글을 출력해서 보내드리는데, ‘나를 이렇게 믿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하면서 감격해서 우는 분들도 계세요. 이렇게 농부와 도시 소비자 사이에 다리가 놓이고, 소통과 신뢰가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첨가물을 빼는 대신 속초에서 잡은 홍게의 살을 넣어 만드는 고추장,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고 말리는 건자두, 발색제와 첨가물을 넣지 않은 저염 명란, 커피믹스처럼 소포장해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미숫가루 등 투자를 받아 개발하는 상품들도 많다.

“40~50대는 좋은 식재료를 찾고, 20대와 30대는 과일이나 간편식을 많이 찾습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상품 개발을 하도록 농가에 조언하기도 합니다. 깨끗이 손질해서 1인용으로 포장한 생선, 무항생제 돼지고기를 국산 재료로 양념한 1인용 양념 곱창 등 1인용 상품도 인기예요.”

박종범 대표와 에디터, 투자자들이 농사펀드 1호 농부의 논에서 손모내기 체험을 하고 있다.
농사펀드는 모내기와 벼 베기 등 농사 체험, 농부가 기른 식재료로 유명 셰프가 요리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뿌리밥상’도 마련한다. ‘뿌리밥상’에서는 농부가 그 식재료를 어떻게 길렀는지, 요리사는 왜 그렇게 요리했는지 설명을 들으면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지난 8월 20일 열린 ‘뿌리밥상’에서는 유기농 닭을 활용한 5가지 코스 요리가 나왔다. 유기 사료를 먹이면서 풀어 키운 유기농 닭은 졸깃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현장을 방문해 농부의 안내로 닭의 사육부터 가공까지 확인한 셰프들은 닭 가슴살과 껍질, 간 등을 이용해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먹는 식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야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농부는 신념대로 정직하게 농사짓고, 소비자는 기꺼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어요.”
  •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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