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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산업의 기수들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장 큰 유산은 사랑하는 가족”

절임 배추와 누룽지로 2억 원대 소득 내는 처녀 농군 모인팜스 손모아 대표

청년의 패기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농촌에서 새로운 농업 문화를 개척하는 이가 있다. 유기농법으로 키운 쌀로 구수한 누룽지를 만들어 팔고, 직접 농사지어 만든 절임 배추로 억대 소득을 올리고 있는 모인팜스 손모아(29) 대표다.

사진제공 : 모인팜스
전남 영암군 시종면에 위치한 2만 6446㎡(8000평) 규모의 모인팜스는 손모아(29)·병인(27) 남매가 할머니 때부터 시작해 3대째 운영하는 농장이다. ‘모인’이라는 이름은 남매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지금은 농군이라는 말이 익숙한 손 대표지만 농부가 되기 전까진 대학에서 중국어와 무역통상을 배우고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사 1급 국가자격증을 받을 만큼 학구열이 넘치고 꿈 많은 소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암 선고와 일 년여의 투병,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시간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놨다.

손 대표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이어온 땅이라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모인팜스가 자리한 영암군 시종면은 15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농장 자리는 손모아 대표와 그의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자, 할머니의 고향이다. 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땅을 일구며 고추와 쌀 농사로 자식들을 키웠다. 할머니가 일군 땅을 손 대표의 아버지가 물려받았고, 지금은 남매가 이어오고 있다. 손 대표의 부모님은 배추와 쌀, 참깨, 콩 등 작물을 농사지었다. 특히 2002년부터는 유기농법을 도입해 저탄소·유기재배를 시작했다.

수확량은 많지 않았지만 입소문이 나며 직거래도 늘었다. 남매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부모님을 도와 작물을 심거나 직거래 장터에서 물건을 파는 일, 택배 주문이 들어오면 물품을 확인해서 보내는 소일거리를 맡아 했다. 땅이 크거나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버지는 맏이인 손모아 대표에게는 무역통상을 전공하길 권했고, 동생 병인 씨는 농고를 졸업하고 한국농수산대학으로 진학해 실질적인 농업기술을 배우도록 했다. 어렸던 셋째에게는 ‘농사는 기계다. 식품도 기계를 써야 하니까 집안에서 한 명은 기계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며 공고에 진학시켰다. 현재 스무 살인 셋째 병주 씨는 한국폴리텍대학을 다니며 설비 시스템을 배우고 있다.

손 대표는 “삼 남매 중 한 명이라도 없으면 농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며 “모두 아버지의 선견지명이고, 큰 뜻을 품고 우리를 이렇게 키우셨다. 가족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장 큰 유산”이라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손모아 대표가 본격적으로 농장 운영을 맡은 것은 2014년이다. 손 대표는 기존 유통 상인과 직거래로만 운영되던 농장의 판로를 다양화하기 위해 모인팜스 법인을 세웠다. 이어 농산물 생산을 체계화하고 유기농 농산물 직판장 등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판로를 뚫었으며, 가공 상품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또, 전남농원기술원과 영암군농업기술센터에서 농작물 생산 및 관리에 관해 배웠다. 첫 결실을 본 것은 절임 배추였다. 손 대표의 부모님이 배추 농사를 처음 시작한 해에 하필 배춧값이 폭락했다고 한다. 당시는 배추 농사를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어도 비용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마이너스인 상황이었다고. 그의 아버지가 고육지책으로 낸 게 절임 배추였다. 김장철에 맞춰 그해 재배한 배추를 소금에 절여 팔았다. 처음에는 친척들에게 ‘배추를 절여서 보내줄 테니 그걸로 김장하고 맛이 좋으면 주변에 소개해달라’면서 시작했다. 그 소개가 이어지고 이어져 지금은 절임 배추 고객이 1500명 정도로 늘었고, 연 매출 2억여 원을 올리는 효자 상품이 됐다. 남매에게는 아버지가 물려준 가장 고마운 상품이다.

“우리 배추가 잘 팔리는 이유는 무르지 않아서입니다. 일체의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요. 물도 많이 주지 않죠. 배추를 크게 키우는 농가는 비료를 쓰고 물을 많이 줘요. 그렇게 되면 식물 자체의 조직이 연해져 김치를 담갔을 때 아삭한 맛이 덜하고, 수분이 많아 빨리 무르죠. 우리는 직접 만든 질 좋은 영양제를 써서 정상적인 속도로 자라도록 해요. 단단하면서도 잘 여문 배추. 그게 우리 절임 배추 맛의 비밀입니다.”

손 대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모님이 기존에 재배하던 유기농 기능성 쌀, 유기농 고추, 무청 시래기 등을 유기재배와 무농약 재배로 키워 농산물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도 노력했다.


유기농 쌀로 만든 누룽지


지금의 성과를 내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번은 농장의 쌀로 수출을 시도했다가 큰 손해를 본 적도 있다. 손 대표가 모인팜스를 법인으로 만들고서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다. 미국 수출을 대행하는 국내 회사로부터 수출 제안이 들어왔고 얼떨결에 해외 판로가 열렸다. 처음에는 ‘이렇게 쉽게도 일이 풀리는구나’ 했다. 신나서 상표도 만들고, 포장지에 붙일 스티커를 만들러 돌아다녔다. 대표를 맡고 첫 성과였기 때문에 주변에 자랑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수출 대행 회사가 미국으로 쌀을 보냈는데, 현지에서 전량 폐기됐다는 것이다. 냉장 컨테이너에 담아서 보낸 쌀이 중간 유통에서 고온 다습한 창고로 옮겨지며 곰팡이는 물론 벌레가 생긴 것이다.

“당시 쌀 3톤가량을 전량 폐기했어요. 금액으로는 2000만 원 정도를 손해봤죠. 주변에서 말하길 처음 수출을 시도하는 초보 업체들이 겪는 실수라고 해요. 손해도 손해지만 마음을 다쳤어요. 그때부터 사람을 못 믿겠고, 위축됐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출에 대한 꿈은 접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돌파구로 찾은 것이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이었다. 쌀 수출의 실패를 발판으로 ‘누룽지’를 만들었다.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유기농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차별화된 제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답이 누룽지였죠. 처음에는 쌀 과자를 만들까도 했어요. 누룽지를 선택한 이유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것,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또 유통기한이 1년 가까이고, 부피가 작고 가볍고 파손 위험이 없어 보관과 운송이 쉬웠죠. 여러모로 가공 상품으로는 최적이었습니다.”

쌀을 수출할 때는 1kg에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렸다. 무게가 워낙 나가다 보니 금액 대비 운송비가 너무 많이 들어 수익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가공 상품은 무게도 가볍고, 유통도 까다롭지 않은 데다 수익 비율이 1차 농산물에 비해서 높았다. 1차 농산물은 유통 마진이 적고 산지 가격이 노출되어 있다 보니 변동이 많고, 수익률이 낮았다. 가공 상품은 가격 결정을 직접 할 수 있고, 유통 마진을 회사에서 결정할 수 있었다. 1차 농산물 수익률이 10%면, 가공 상품은 30%였다.

손 대표는 가공식품을 만드는 일이 훨씬 이득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개발한 상품은 ‘할머니 손맛 누룽지’. 전통식품이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수출할 때는 ‘홈 메이드 누룽지’라고 쓴다. 누룽지는 성인 1인 기준 한 끼 분량의 소포장 3개(180g)가 한 세트이며 55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유기농 쌀에 찹쌀을 섞어 만들어 끓이지 않고도 뜨거운 물을 붓고 3~4분이 지나면 눌은밥을 먹을 수 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일반 쌀을 판매하는 것보다 10배 이상의 부가가치 효과를 냈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시작한 절임 배추 이후로 모인팜스의 대표 상품이 됐다.

이러한 성과로 손 대표는 지난해 농림부 장관상을 받았고, 2015년에는 미래농업스타상 시상식에서 유통마케팅 분야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또한 누룽지 판매와 함께 유기농 쌀의 수출마케팅 활성화를 위해 지난 2012년 일본 유기농(JAS) 인증과 저탄소 농산물 인증도 취득했다. 미국, 홍콩 등 3개국과의 수출계약도 성공했다. 누룽지 맛에 대한 확신과 호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청년 농군의 꿈


손모아 대표의 일 년 준비는 2~3월 보리를 파종하고 논에 심을 종자를 준비하는 일로 시작된다. 4월부터 모내기를 준비해 5~6월에 모를 심고, 6월에는 보리 수확을 한다. 그런 다음 땅을 갈아엎고 7~8월에 배추를 파종해 9월에 심어 10월부터 배추를 절인다. 그런 뒤 11~12월에 택배로 절임 배추를 판다. 절임 배추가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그에게 김장철은 연중 제일 바쁠 때지만 그 틈틈이 직거래 장터도 다니고, 체험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농장에 견학 오면 쌀을 이용한 강정이나 케이크, 떡, 빵을 만들어보는 체험이다. 최근에는 청년을 위한 강의로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달에 3~6회 정도 강연을 해요. 처음에는 농업인 사례 발표를 주로 하다가 요즘은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한 진로교육으로 ‘농업’ 분야를 강연하고 있어요. 자유학기제가 생기면서 기회가 더 늘었죠. 진로교육에서 ‘농업’을 다룬다는 것은 큰 변화입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농업에 호기심이 많아요. 대학생들은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죠. 어떤 작물을 재배해 어떻게 상품화하고 어떤 사업과 접목할지 구체적인 컨설팅을 요구해요. 농업을 자신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먼 시골에서 벌어지는 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미래의 직업으로까지 느끼는 것이죠. 긍정적인 효과입니다.”

손 대표는 “농촌의 일자리는 거부하면서 청년들 일자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농사는 힘들지만 재밌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알려주어야 한다는 소명감을 갖고 있다.

“돈보다는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가 더 중요해졌어요. 주변에서도 그 가치를 높이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요. 이런 행복의 가치를 어렸을 때부터 알았다면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을 거고, 우리나라의 농업자원도 풍부해졌을 겁니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어요. 농업에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농부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할까요. 내 아이들이 자라서도 엄마가 농부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가질 수 없습니다. 주변의 반응도 중요합니다. ‘엄마는 농부예요’라고 했을 때 ‘부럽다’는 반응을 들을 수 있도록, 농촌의 참된 가치를 알리는 일이 제가 할 일이고 청년 농부가 꿈꾸는 미래입니다.”

20대 농군의 농업에 대한 신념과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뚜렷했다.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 그중에서도 ‘식’과 관련한 산업은 앞으로 큰 부가가치를 낼 것이다. 미래는 분명 농업으로 풍요로워질 것이다. 청년 농부들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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