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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이 모두 성공한 스포츠 스타는?

사진 : 뉴시스, 구글이미지
이종범
같은 길을 걷는 부모와 자식은 스포츠계에 꽤 많다. 그런데 부모 자식 모두 성공의 길을 걷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버지들의 그 우월한 유전자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스포츠계의 오랜 미스터리다.

넥센 히어로즈의 신인 이정후를 주목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긴 하나 그가 청출어람에 성공할 가능성이 꽤 크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이종범의 아들이다. 이종범은 해태 유니폼을 입고 데뷔한 1993년 타율 0.280, 16홈런 73도루를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한 경기 3도루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쥔 레전드다. 이정후는 서석초 시절부터 리틀야구 도루왕을 차지하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휘문고 2학년 때는 11경기에서 타율 0.521(48타수 25안타), 12타점 7도루를 기록하며 고교생 최고의 야수로 꼽혔다. 그는 제 실력으로 프로 1차 지명을 받았지만, 아버지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프로 입단 후 이정후가 받아든 성적표는 ‘A’다. 그는 대주자, 대타로 출전할 것이란 전망을 깨고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프로야구 신인왕 1순위다. 1호 홈런은 아버지보다도 빨리 쳤다. 이종범이 프로야구 1호 홈런을 친 날은 해태의 시즌 17번째 경기였지만 이정후는 7번째 경기 만에 홈런을 때렸다. 이정후는 야구를 시작하고부터는 줄곧 ‘선수 이정후’보단 ‘이종범의 아들’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아버지보다 야구를 더 잘하지 않는 이상 이정후는 평생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정후가 현재의 활약을 이어간다면 이종범이 ‘이정후의 아버지’로 불릴 날이 올 것이다.

이정후
야구 전문가의 이야기다.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괴물 신인 10년 주기설’이 있습니다. 1986년 MBC 김건우를 시작으로 데뷔하자마자 30-30클럽에 가입한 1996년 박재홍, 그리고 역대 최고의 신인으로 평가받는 2006년 류현진이 그들이죠. 안타깝게 2016년에는 괴물 신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오지 않은 괴물 신인이 올해(2017년)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보면 그게 이정후 선수로 보입니다.”


켄 그리피 시니어·주니어 부자

켄 그리피 시니어(왼쪽)・주니어
해외에는 부모 자식 모두 성공한 스포츠 스타가 꽤 있다. 대표적인 게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였던 켄 그리피 시니어(George Kenneth Griffey, Sr)와 켄 그리피 주니어(George Kenneth Griffey, Jr) 부자다.

켄 그리피 시니어는 빅 레드 머신(1970년대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의 강타선을 일컫는 말)의 일원으로서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전성기였던 1976시즌에는 타율 0.336, 34도루, 111득점을 기록하며 그해 내셔널리그(NL) MVP 투표에서 8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3차례 올스타에 선정됐고, 1980시즌엔 올스타 경기 MVP에 올랐다. 1973년 신시내티 레즈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뉴욕 양키스와 애틀랜타, 시애틀 등을 거치며 1991년까지 19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뛴 그는 통산 타율 0.296, 2143안타, 859타점을 남겼다.

그의 아들인 켄 그리피 주니어는 역대 메이저리그 타자 중 가장 부드러운 스윙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지명됐다. 그는 시애틀과 신시내티 등에서 22시즌을 뛰며 통산 630홈런(6위)을 작성했다. 또 13차례 올스타와 4차례 아메리칸리그(AL) 홈런 1위, 10차례 골든글러브 수상 등 최고 기량을 과시했다. 특히 시애틀 시절인 1990년 9월 15일에는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와 부자 초유의 ‘백투백 홈런’을 작성하기도 했다. 부자 백투백 홈런은 앞으로도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같은 시즌에 현역으로 뛴 부자였다. 켄 그리피 주니어는 기량뿐만 아니라 뛰어난 품성으로 커다란 칭송을 받은 선수였다. 홈런을 치고 나서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를 도는 장면은 켄 그리피 주니어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메이저리그 약물 시대로 불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 활약한 선수이지만 단 한 차례도 약물논란에 휩싸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청정 선수’였다.


이탈리아 축구의 뿌리 말디니가(家)

체사레 말디니(왼쪽)와 파울로 말디니
체사레 말디니(Cesare Maldini)는 1954년 AC밀란(이탈리아 명문 축구 구단)에 입단했다. 체사레는 팀에 빠르게 적응했고, 수비의 중심으로서 활약했다. 팀의 주장이 된 그는 1963년 런던 웸블리구장에서 열린 벤피카와의 결승에서 상대 골잡이 에우제비오를 봉쇄하며 2-1 승리의 공신이 됐다. AC밀란이 사상 처음으로 안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이었다. 체사레는 AC밀란 입단 이후 6년 만에 세 개의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체사레는 2016년 4월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그의 아들 파울로 말디니(Paolo Maldini)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한 축구 선수였다. 187㎝의 훤칠한 키에 푸른 눈을 가진, 로마시대의 조각상 같은 멋진 용모를 뽐내는 그는 이탈리아 국민의 우상이었다. 아버지처럼 AC밀란의 캡틴이었던 그는 2002~2003시즌 유벤투스와 치른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3-2로 승리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주장 완장을 차고 빅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드는 이색 기록이 세워진 순간이었다.

파울로는 1985년부터 2009년까지 AC밀란에서만 25년간 647경기를 뛰면서 세리에A 7회, 챔피언스리그 4회, 유럽 챔피언스리그 5회 등 총 26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체사레가 들어 올린 6개 트로피까지 합치면 말디니 부자는 32번의 우승을 AC밀란에 가져왔다. 1899년 창단한 AC밀란은 총 48번의 우승을 했다. 말디니 부자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감독과 주장으로 나서 이탈리아의 8강 진출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브라질리안 주짓수 3부자

엘리오 그레이시
엘리오 그레이시(Helio Gracie)는 브라질리안 주짓수의 창시자다. 주짓수는 유도의 전신인 유술(柔術)의 일본식 발음이다. 유술은 마에다 미쓰요가 만들었다. 유술의 기본 원리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상대방의 관절(급소)을 제압하는 것이다. 마에다 미쓰요는 ‘나를 이기면 1000달러(You can get 1000$ by defeating me!)’라는 간판을 걸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2000회에 달하는 길거리 싸움을 벌여 모두 승리했다. 무기를 든 상대는 물론이고, 브라질의 거칠고 힘센 노예들과 갱을 상대하기도 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이민자 집안의 가스티아오 그레이시(Gastao Gracie)는 그런 마에다 미쓰요에 매료됐다. 그는 마에다를 초청해 자신의 아들인 엘리오에게 유술을 가르치게 했다. 너무 작고 몸이 약했던 엘리오는 유술을 브라질 고유의 ‘발리 투도’라는 격투술과 접목해 독자적 형태의 무술인 ‘브라질리안 주짓수’를 만들었다. 이후 엘리오 그레이시는 연약한 몸으로도 수많은 대결에서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그에게 패배를 안긴 상대는 일본 유도의 신으로 불리는 기무라 마사히코 단 한 명뿐이다. 1913년생인 엘리오 그레이시는 불혹의 나이에 기무라와 장시간 대결을 펼치다가 팔을 꺾여 패했다. 후에 사람들은 엘리오에게 패배를 안겨준 이 기술에 대해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기무라의 팔을 꺾는 공격을 ‘기무라 록’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셋째 아들 힉슨 그레이시(Rickson Gracie)는 450전 450승 무패의 전설로 매우 유명한 파이터다. 6세 때부터 주짓수를 수련한 힉슨 그레이시는 15세 때 본격적으로 입문해 전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주짓수 대회, 삼보 대회, 발리투도(포르투갈어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의미의 무규칙 무제한 경기)에 참가해 모두 승리했다. 힉슨 그레이시는 무적의 파이터였다. 꺾고 조르며 상대를 제압하는 그라운드 기술이 천하무적이었다. 게다가 엄청난 맷집까지 갖고 있었다. 그는 은퇴 이후 미국 LA에서 ‘힉슨 그레이시 국제 주짓수센터’를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

엘리오 그레이시의 여섯째 아들인 호이스 그레이시(Royce Gracie)는 현재 세계 최고의 MMA(Mixed Martial Arts·종합격투기) 단체로 인정받는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의 토너먼트 초대(1대) 챔피언이었다. 그는 2회, 4회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호이스 그레이시는 2004년 UFC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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