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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산업의 기수들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시작한 사업이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게 최우선”

‘톳쌀’로 쌀 시장에 붐을 일으키는 명성제분 차경숙 상무이사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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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철분이 가득한 톳이 만났다. 이름은 ‘톳쌀’. 뒤늦게 농사일을 배운 한 여성이 톳쌀을 만들어 상품화했다. 이 상품을 개발한 이는 명성제분 차경숙 상무이사다. 그는 힘들게 개발한 제품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고민하다 농협이 운영하는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거짓말처럼 판로가 열렸고 톳쌀은 히트를 쳤다.
쌀은 쌀인데, 색이 독특하다. 짙은 흑갈색의 생쌀을 한 줌 집어 오물오물 씹으니 향긋한 바다 향이 입안 가득 풍긴다. 명성제분이 올해 출시를 앞둔 ‘톳쌀’이다. 지역 특산물과 함께 쌀 시장의 새로운 붐을 일으켜 보겠다며 톳쌀로 도전장을 내민 명성제분의 차경숙 상무이사를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의 토요 장터에서 만났다.

“남편이 20여 년간 쌀과 관련된 일을 했어요. 옆에서 일을 도우면서 지켜보니 쌀 소비가 줄어서 많은 농가가 어려움을 겪더라고요. 쌀을 팔 방법을 고심하다가 톳쌀을 만들게 됐습니다.”

톳은 철분이 많은 해조류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친다. 밥을 지을 때 톳을 넣으면 향긋한 해초 향이 밥과 섞여 향미를 더해 남도 지역 사람들은 종종 톳밥을 지어 먹는다.

“몸에 좋다고 해서 말린 톳을 넣어 먹곤 했는데, 맛은 좋지만 밥이 까매지고 자칫 비릿한 향이 나는 게 한계였죠. 무엇보다 아이들이 거무스레한 밥을 좋아하지 않아 꺼려했죠. 몸에 좋은 톳을 쌀로 만들어서 잡곡밥처럼 섞어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고안하기 전 톳쌀은 이미 상품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톳쌀은 쌀 표면에 톳을 코팅해서 만든 가공 쌀이어서 밥을 지을 때 코팅된 톳 성분이 물에 씻겨나가 영양성분을 잡아두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밥으로 지을 때 흐늘흐늘하게 퍼지는 모습이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차경숙 상무는 1년여의 연구 끝에 빻은 쌀에 톳 가루를 섞어 쌀알 모양으로 만든 성형 쌀을 만들어냈다.

“톳쌀을 처음 만들 때 쌀과 톳의 비율이 어느 정도여야 맛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제일 컸어요. 2%에서 10%까지 계속해서 섞어보고 또 현미에도 섞어보았죠. 버린 쌀만 25톤이 넘어요. 처음 생산한 100kg의 톳쌀이 비료로 버려졌는데 마음 아팠어요. 톳쌀의 생명은 맛과 모양이거든요. 밥을 지을 때도 모양이 흐트러지면 안 되니까요. 쌀알이 잘 뭉쳐지도록 성형할 때의 비율과 압력, 온도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어요. 지금도 그 연구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부에서 쌀 연구가, 사업가로 변신

지난 4월 29일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에서 열린 고향장터에 참여한 차경숙 명성제분 상무이사.
장터에서 만난 차경숙 명성제분 상무는 앞치마를 두른 단아한 차림에 고생이라곤 해본 적 없어 보이는 고운 얼굴이었다. 명성제분 공장은 전남 나주에 있지만 집은 영암에 있다고 했다. 시아버지가 물려준 오리농장을 개조한 작은 정미소가 그의 집이다.

“본격적으로 톳쌀 사업을 하기 전에는 사회복지사로 일했어요. 하나 있는 딸아이를 다 키워놓고 뒤늦게 대학에 입학해 7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대학에서 전공은 사회복지였고요. 졸업 후 보훈병원이나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호스피스로 일했죠. 스무 살 때 친정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대학 못 간 게 한이 됐나 봐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인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듬직해 보여 어린 나이였지만 일찍 결혼했어요.”

그는 소녀처럼 웃다가도 그 시절 이야기를 할 때면 해맑은 얼굴에 잔주름이 여리게 잡혔다.

“의정부에서 고깃집 장사를 했는데 남편 몸이 아주 아팠어요. 가게를 접고 친정이 있는 포천으로 갔죠. 거기서 야산 10만 평을 임대해 흑염소를 키웠어요. 목장 옆에 있던 한 칸짜리 컨테이너가 집 겸 식당이었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닭볶음탕이나 염소 요리를 팔고 약도 팔면서 살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찌 살았나 몰라요.”

젊은 나이에 고생은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남편이 아프니 어쩔 수 없다며 다섯 살 딸을 등에 업고 식당 일과 농장 일을 직접 도맡아 했다. 그렇게 5년을 일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여전했다. 아이는 커가는데 컨테이너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시아버지가 영암에서 오리농장을 하고 있었어요. 오리가 온도에 무척 예민해서 항상 우리에 왕겨를 깔아주는데, 이를 납품하는 업체가 속을 썩였나 봐요. 우리더러 와서 왕겨 납품일이나 하라고 하셨죠. 아버님이 워낙 독불장군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보따리 싸고 아무 준비 없이 내려왔죠.”

차경숙 상무는 태어나서 전라도에서 살아보기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결혼해서 몇 번 오간 적은 있지만, 이곳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막상 내려왔지만 살 집도 마땅찮아 시댁 식구 집에 신세를 졌다. 30대 초반 어린 나이에 타지에 정착해 남편과 처음으로 왕겨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100을 벌면 50은 돌려주는 셈

명성제분이 개발 중인 쌀 파스타. 지역 특산물인 톳과 다시마, 버섯, 녹차 등을 넣었다.
부부는 바닥부터 시작했다. 타지에서 오래 살다 오니 납품처를 뚫기가 어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원으로 둔 이주민 노동자가 불법체류자로 잡혀가는 바람에 부부가 손으로 왕겨를 포대에 담고 옮기는 일을 직접 해야 했다.

“시골은 대부분이 친인척이라 발붙이기가 어려웠어요. 사업은 사람이 전부예요. 내가 100원을 벌면 50원은 다시 돌려준다는 개념으로 일했어요. 그렇게 20년 쌓은 인맥이 지금의 자산입니다.”

왕겨 납품을 다니며 부부의 눈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들어왔다. 벼에서 왕겨를 뽑고 난 다음 현미를 백미로 도정하고 나면 쌀겨(미강)와 쌀눈이 나온다. 쌀눈은 쌀이 가진 영양의 65%를 함유하고 있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된다. 부부는 왕겨 납품을 하며 미강과 싸라기 납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게 됐고 이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첫 시작은 쌀눈을 추출해 파는 일이었다. 쌀눈이 몸에 좋은 것은 알지만, 산패율이 높은 데다 이를 추출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가까운 영암이나 해남, 보성 등에 큰 정미소가 많아서 산패율이 낮고 질 좋은 미강을 바로 받을 수 있었어요. 그게 큰 힘이 됐죠. 쌀눈 추출이 잘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업자들이 먼저 우리를 찾아왔어요.”

명성제분이 만든 톳쌀.
추출한 쌀눈은 농협을 통해 로컬 푸드로 출시했다. 로컬 푸드란 포장을 갖추지 않아도 지퍼 팩과 상표 스티커만으로 농협의 마트에서 판매할 수 있는 지역 농산물을 말한다. 왕겨에서 시작한 사업이 쌀눈으로 이어지며 돈이 모아졌고, 큰 뜻을 품고 남편 김철진 대표가 명성제분을 인수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남편이 공장을 인수하고 저에게 한 말이 있어요. ‘나는 공장일이 많으니 자네가 섬세한 여자의 손으로 쌀 연구를 맡아주소’. 톳쌀 사업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업무, 기계 등 꼼꼼하게 챙기는 제 모습을 보며 믿음이 갔는지 요즘에는 대표 자리까지 내준다고 해요. 하하. ‘자네가 해보소’ 그 말이 무거운 짐이 되어 지금을 살게 합니다.”

톳쌀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질 즈음 차 상무는 주변 특산물로 눈을 돌렸다.

“남도에는 좋은 특산물이 많아요. 영암에서 가까운 완도에 질 좋은 톳과 다시마가 있고, 장흥에는 표고가 유명하죠. 보성 녹차도 좋고요. 기왕이면 인근에서 나는 쌀과 지역의 질 좋은 특산물을 섞어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최근에는 진도에서 나는 강황도 생각 중입니다.”

톳쌀에서 시작한 사업은 쌀 파스타로도 연결해 상품 개발을 진행 중이다.


농부를 위한 플랫폼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

전남 나주에 있는 명성제분 공장에서 차경숙 상무(가운데)와 김철진 대표(오른쪽)가 갓 뽑아낸 톳쌀을 살펴보고 있다.
공들여 상품을 만들어놓고 보니 애틋한 자식들 같았다. 물건은 잘 만들어 놨는데 제조업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제대로 몰랐다. 영양평가나 판매까지 A부터 Z까지 아무것도 몰랐다. 어디에 팔아야 할지, 포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문을 두드린 곳이 농협이 운영하는 경기도 안성의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원장 이대엽)다. 센터는 농협이 가진 전국 유통 채널과 금융망, 다양한 컨설팅 기능 등을 활용해 농식품 우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농민을 위한 종합 컨설팅을 돕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를 통해 실질적인 컨설팅을 받았어요. 이론 중심이 아닌 실질적인 실기 수업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가 만든 톳쌀이 상품이 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센터의 소개로 올해 농업벤처대학도 등록했어요.”

차 상무는 센터를 통해 배운 대로 영양분석과 상표등록, 포장까지 상품 출시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다. 지난 4월에는 센터에서 여는 ‘나의 살던 고향 장터’에서 처음으로 상품을 시중에 선보이기도 했다.

안성 팜랜드 맞은편 운동장에서 열리는 농산물 장터로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포장까지 제대로 갖춘 상품으로 고객을 마주하니 차경숙 상무의 마음은 여느 때보다 분주하다.

“우리 기업의 기본 철학이 올바른 인성과 올바른 품질이에요. 쌀 소비 촉진을 위한 쌀 소비 운동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무엇보다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게 최우선이에요. 우리 제품에는 어떠한 첨가물이나 색소가 안 들어갑니다. 오로지 남도의 특산물만 들어가지요. 시골에서 잘 지은 쌀과 먹거리가 도시인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로 전해지는 것. 쌀농사 짓는 농민과 지역민들의 상생을 도모하는 게 지금 우리의 일이에요. 쌀이라고 하면 탄수화물 덩어리여서 건강에 안 좋고 살이나 찌게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만든 쌀이 우리 식탁에 올라올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시골 밥상의 밥 냄새만큼이나 속이 든든해진다.

현장

‘나의 살던 고향 장터’에 가보니…

오른쪽부터 농협중앙회 허식 부회장,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 이대엽 센터장, 황은성 안성시장.
청송의 햇살 받아 잘 여문 사과와 사과즙, 아삭한 식감의 가야산 파프리카, 청정 봉화에서 나고 자란 오미자, 완도 바다에서 키워 해풍에 잘 말린 다시마. 정직한 농부의 건강한 먹거리를 한자리에 모았다. 산 넘고 물 건너 고향에서 온 팔도의 먹거리를 만나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안성으로 떠나보자. 이름도 정겨운 ‘나의 살던 고향 장터’가 성업 중이다.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가 주관하고 안성시가 후원하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고향 200% 즐기기, 농부 이야기에 빠지다’를 콘셉트로 50여 농업인이 참여해 10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 잔디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시골 장터의 묘미란 단연 넉넉한 인심. 장터에서는 농부들이 키운 제철 과일과 질 좋은 밭에서 자란 채소를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유기농 치즈와 작두콩 차, 쌀로 만든 쿠키와 발효액, 주스 등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에서 공부한 농부들이 제조하고 가공한 6차산업 제품들이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이대엽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장은 “단순히 농산물을 사고 파는 직거래 장터가 아니라 전통 장터의 정이 흐르는 곳, 아이들의 놀 거리, 볼거리, 나눌 거리, 즐길 거리가 있는 공간”이라며 “생산자 농업인과 소비자가 상생하는 직거래 장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주

농업은 1차산업이다. 그런 농업 분야가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되는 지금 6차산업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농업 분야에 최첨단 기술을 융·복합함으로써 환경 문제까지 아우르는 산업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6차산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대안농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1차산업의 대표인 농업이 최첨단 산업화의 선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topclass》는 6차산업을 이끌고 있는 농업 분야의 선도자들을 매달 발굴해 소개한다.
  • 2017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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