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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이 아니어도 어쩔 수 없어 그게 인생이니까”

조연의 품격(品格) - 연극배우 최일화

그는 명색이 연극배우지만, 마흔이 넘어서까지 연기를 빼고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무대조명, 음향, 소품, 기획에서 풀팅(벽에 연극 포스터 붙이는 일)까지 연극 외적인 일이 그의 몫이었다. 연극판 언저리에 있었지만 배우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진 : 한국연극배우협회 제공
카리스마와 묵직한 저음을 갖춘 연기파 배우 최일화(58)는 ‘삼류배우’였다. 오랜 무명 끝에 첫 주연작인 〈삼류배우〉(연출 김순영·2003년)로 연기 인생이 달라졌다. 데뷔 20년 만이었다. 그리고 마흔일곱이던 2005년 TV 브라운관에 데뷔했다.

지난해 북한군의 DMZ 목함지뢰 도발로 우리 장병이 부상한 사건을 연극 〈DMZ 1584〉로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영화 〈신세계〉 〈우아한 세계〉 등에선 주연을 빛나게 하는 조연으로 연기의 정점을 찍었다.

현재 그는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그를 만났다. 연극무대를 개조한 협회 사무실(지하 1층)은 물품들로 어지러웠고 냉기가 가득했다.

이런 말이 있다.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직업, 예컨대 글쓰기·연기·음악·미술 같은 일을 20년간 꾸준히 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사실일까.

긍정 답변을 기대하며 질문했다.

최일화   “20년 동안 한 가지 일에 매달려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은 전생에 복을 쌓은 사람입니다. 사실 20년이란 시간은 금방입니다. 연극무대에서 20년간 한 차례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가 97%입니다. 믿으시겠어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최일화   “발명가 에디슨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다’고 했는데 틀린 말입니다.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정답이에요. 우리는 무조건 노력하면 된다고 하지만, 살다 보니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더군요. 특히 예술 분야는 ‘1%의 영감’이 중요해요. 주입이나 강제에 의한 ‘99% 노력’이 무의미할 때가 많아요.”

그는 명색이 연극배우지만, 마흔이 넘어서까지 연기를 빼고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무대조명, 음향, 소품, 기획에서 풀팅(벽에 연극 포스터 붙이는 일)까지 연극 외적인 일이 그의 몫이었다. 연극판 언저리에 있었지만 배우와는 거리가 멀었다.

최일화   “1980~1990년대까지 연극판에서 대사가 한마디밖에 없는 단역만 맡았어요. 선배들이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온다’고 했지만 기회는 없었어요.”

연극이 없을 때는 막노동은 기본이었고 포장마차부터 백화점 영업, 악기공장, 청소용역, 탄광 일까지 했다. “떨어진 신발을 기워 신고, 버려진 겨울 외투를 입었다”고 했다.

최일화   “그때 제 소원이 환갑 되기 전, 대사 있는 제대로 된 배역 한 번 맡는 것이었어요. 무대에 딱 한 번이라도 섰으면 하고 바랐어요. TV나 영화 출연은 꿈도 못 꿨고요. 어디 가서 배우라고 감히 소개하지 못했어요. 그냥 연극한다고만 했지….”

그렇다면 그는 언제부터 연기다운 연기를 했을까.

최일화   “밤새워 찹쌀떡을 판 적이 있어요. 밤 10시쯤 대리점에서 떡을 받아 새벽 4시까지 팔았어요. 졸면 안 되니까, 밤새 커피 40잔을 마셨습니다. 그 후로 속을 버려 커피를 못 마셔요. 어쨌든 새벽일을 마치고 텅 빈 무대 위에서 혼자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닥치는 대로 대사 연습을 하던 시절이었어요. 지금도 반문합니다. ‘저 연기가 내게 맞나?’ ‘연기와 제대로 맞짱 뜨고 있나?’ 하고요. 날은 저무는데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글쎄요, (제가) 60이 넘으면 제대로 (연기에) 입문했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언더스터디를 아시나요?


최일화는 학창(인천 동산고) 시절, 혼성 고교 서클을 이끌며 연극 대본을 쓰고 작품 주인공으로 분(扮)한 적이 있다고 한다.

최일화   “어릴 땐 굉장히 꿈이 많았어요. 도자기 공예도 하고 싶었고 야구(선수)도 하고 싶었어요. 몸이 허약해 그저 꿈이었어요. 고교 때 ‘선명 4H’라는 서클에서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 연극이란 걸 하게 됐어요. 그게 평생의 직업이 될지 그땐 몰랐어요.”

첫 사회생활은 어땠을까.

최일화   “‘공돌이’로 시작했어요. 인천공단, 부평공단 등지에서 일했는데 가장 오래 근무한 곳이 신발 깔창 만드는 공장입니다. 군에 빨리 갔다 와서 대학에 진학하려는데, 제대하기 보름 전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그 길로 학사모 꿈은 접었죠. 공장에 다니다 우연찮게 인천시민회관에 연극을 보러 갔는데, 제 생각에 너무 못하는 겁니다. ‘저 정도는 나도 하겠다’ 겁 없이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광화문에 있는 서울 마당세실극장에 연극을 보러 갔다가 평생 직업을 갖게 됐습니다.”

무명배우 시절, 최일화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비중이 없거나 80세가 넘는 노역(老役)만 들어올까’ 하고.

최일화   “조그만 역할을 하면서 그래도 내일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배역이 마지막 역할이다 생각하고 치열하게 연기하지는 못했어요. 연극 〈삼류배우〉 주인공처럼 저도 제 역할을 후배에게 양보했던 적이 있고, 그나마 언더스터디(understudy·주인공이 출연하지 못할 경우 대신 무대에 서는 대역 배우)였던 저 대신 다른 사람이 무대에 섰던 일도 많았죠.”

한번은 ‘극단 신시’의 고(故) 김상열 선생이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런 브랜도, 알 파치노, 앤서니 홉킨스의 공통점이 대사 한마디를 1만 번쯤 연습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앤서니 홉킨스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계속 대사를 반복해서 외우다 보니 홉킨스가 무식하게 연습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또 알 파치노의 연기를 보면서 대사보다 눈빛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최일화   “연극판에서 하는 말이 있어요. ‘연극을 위해선 부모를 죽이고, 처자식을 죽이고, 친구를 죽여야 한다’고요. 그래야 저 혼자 외롭게 남아,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철저히 배우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인생의 절박함과 연기의 절박함이 성공 습관”이라고 했다.

최일화   “나이가 들어도 꼿꼿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저 역은 저 사람이 아니면 못 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에게 좋은 연기란 뭘까.

최일화   “연기는 ‘즉발적’이어야 합니다. 동물적인 감각이 있어야 해요. 갓난아기가 그러잖아요. 젖 달라고 우는, 안 울면 죽으니까. 주위 사람들이 모두 우는 아이에게 집중합니다. 연기로 치면 최고의 배우죠. 저는 아직도 멀었어요.”

마흔이 넘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최일화는 연극, 영화, TV에서 개성 있는 중견 배우로 사랑받고 있다. 성격을 묻는 질문에 지체 없이 ‘내성적’이라 말한다. 의외였다. “장점이 많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배역에 쏟을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보다 더 운이 좋고, 더 성공했다는 이유로 싫어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최일화   “그럼요. 질투를 많이 했어요.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가 아파서 빠지길 바랐던 적도 있어요. TV에 저와 친한 분이 출연하면 고개를 돌렸어요.”


“연극의 신을 믿어”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신을 믿습니까”라고. 곧바로 답이 날아왔다.

최일화   “사카모토 준지(阪本順治)라는 영화감독이 있는데 제게 ‘종교가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제가 그랬죠. ‘교회도 다녔고 절에도 다녀봤는데, 지금은 연극이 종교’라고요. 죽을 둥 살 둥 연습하면 ‘연극의 신’이 와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전 진짜로 연극의 신을 본 적 있어요.”

연극의 신을 봤다는 대목에서 그는 숨을 가다듬었다.

최일화   “어느 날, 한 동료가 대본을 가지고 왔어요. 운이 좋으면 감독 앞에서 리딩(읽기)할 수 있다고 귀띔하는데, 대본을 넘기다 어느 배역 대사를 2시간 동안 읽었습니다. 속으로 빌었죠. ‘(감독 앞에서) 한 번만이라도 이 대사를 외울 기회를 갖게 해달라’고요. 그날 밤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별똥별이 떨어졌어요. 그 순간 (연극의) 신께 청했죠. 이튿날 정말이지 그 배역을 맡게 됐어요. 그 작품 이후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죠.”

지난 2005년 첫 드라마 출연작인 SBS 〈패션 70s〉에서 최일화는 주진모의 아버지 ‘김홍석 장군’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 작품 이후 연기 인생에 봄날이 찾아왔다.

“좋아하는 연기를 계속할 수 있다면, 성공을 보장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최일화   “다시는 못 할 것 같아요. 무명 시절,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더 많았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막노동을 하다가도 ‘맞아, 무대에서 대사 있는 역을 맡는 게 꿈이지’ 하며 스스로 달래곤 했어요. 2003년 동아연극상을 탈 때 이런 소감을 말했어요. ‘상이란 걸 타봤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 오늘부로 연극을 그만두겠다’고요. 그러고 나서 덧붙이기를 ‘생각해 보니, 정식으로 연기를 하라는 뜻에서 준 상인 것 같다. 다시 연기를 처음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막 웃었어요.

시상식이 끝나고 《동아일보》 김학준 당시 사장이 이런 말을 했어요. ‘올해를 마지막으로 동아연극상을 폐지한다’고요. 사람들이 술렁이니까, ‘그럼, 다시 시작하라는 반응인 줄 알고 (동아연극상을) 이어가겠다’고요.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다들 웃었지만 제 수상 소감은 진심이었어요. 그날 연출가 고 차범석 선생이 오셔서 저를 지목하며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다른 말 필요 없다. 나는 저 새끼가 배우 될지 몰랐다’고요.”

최일화는 배우를 꿈꾸는 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

최일화   “자신 있게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큰 역이든 작은 역이든, 역할에 얽매이지 말고 무식하게 덤벼야 자기 틀을 깰 수 있어요. 감추면 30~50년 지나도 연기가 안 늡니다. (연기가) 되든 안 되든 자기를 깰 수 있어야 합니다.

가까운 연출가 선생님이 ‘배우는 하루 100번씩 개새끼라고 되뇌어야 좋은 배우가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연기가 부족하다 싶으면 다시 시작하자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적당히 타협해선 발전이 없습니다. 자기 발전을 위해, 주위 사람이 힘들어해도 그 길이 옳다면 가야 해요.”

그는 “주연보다 조연이 좋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일화   “조연은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상대를 돋보이게 할 수 있어요. 누구나 그 사람에게 맞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무게가 있어요. 주연이 되면 좋지만, 아니라 해도 어쩔 수 없어요. 그게 인생이니까.”
  •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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