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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를 이을 ‘피겨 여왕’의 탄생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 최다빈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국제빙상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 그리고 4대륙 선수권. 세계 주요 피겨스케이팅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거머쥐었던 ‘피겨 여왕’ 김연아에게 딱 하나 없는 타이틀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한국 피겨의 역사를 쓴 그가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했던 무대, 그 정상에 최다빈(17·수리고)이 섰을 때 피겨계가 들썩했던 이유다. ‘삿포로의 여왕’으로 다시 태어난 최다빈은 김연아 이후 침체했던 한국 여자 피겨에 새 호흡을 불어넣고 있다.

사진 : 뉴시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대주

최다빈은 대표적인 ‘연아 키드’다. 다섯 살 때 친언니를 따라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그는 김연아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피겨 선수의 꿈을 키웠다.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던 최다빈은 불과 만 11세 때 악셀을 제외한 다섯 종류 트리플(3회전) 점프를 모두 완성했다. ‘점프 신동’으로 불린 그는 나서는 대회마다 입상을 도맡았다. 열세 살이던 2013년 1월 국내 종합선수권대회에선 당시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복귀한 김연아(우승)와 박소연(20·단국대)에 이어 3위에 올랐다.

2012년 처음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 국제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14년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6위를 차지했고, 2015~2016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선 동메달 2개를 거머쥐었다.

최다빈은 지난해 시니어로 전환하며 슬럼프에 빠졌다. 평소 단점으로 지적받던 표현력에서 한계를 보이며 세계 수준과 격차가 벌어졌다. 컨디션 난조로 주무기였던 점프마저 흔들리면서 침체를 맞았다. ‘또 한 명의 연아 키드가 뜨고 졌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최다빈은 다시 빙판에 우뚝 섰다. 그리고 삿포로에서 그 결실을 만들었다. 한국 피겨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만큼이나 놀라운 건 최근 최다빈이 보여준 성장세다. 이번 삿포로 대회에서 그는 187.54점을 기록했다. 불과 1년 전 자신이 세웠던 스코어(173.71점·2016 4대륙 선수권)보다 14점을 끌어올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 단계 올라선 최다빈의 힘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에서 나왔다고 평가한다. 최다빈은 장기인 점프 대신 비점프 요소(스텝·스핀)와 표현력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이를 위해 그동안 호흡을 맞췄던 지현정 코치를 떠나 이은희 코치와 새롭게 손을 잡았다. 시즌 도중 ‘코치 교체’라는 승부수를 띄운 최다빈의 모험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최다빈은 “과거엔 경직된 표정과 동작으로 내 연기에만 집중했다면 이젠 관중, 심판들과 함께 소통하는 연기가 뭔지 조금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동계체전을 마치고 갑작스레 쇼트 프로그램 음악을 영화 〈라라랜드〉 OST로 바꾼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안정적인 프로그램 유지를 위해서 시즌 도중 음악을 바꾸는 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다빈은 악착같은 훈련 끝에 단 3주 만에 새 쇼트 프로그램을 완성해 지난 2월 강릉에서 열린 4대륙 선수권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자신의 ISU 쇼트 프로그램 개인 최고점(61.62)을 기록했다. 이은희 코치는 “음악을 바꾼 건 큰 모험이었지만 다른 선수들에 비해 흡수력이 빠른 다빈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최다빈에겐 또 한 명의 듬직한 ‘조력자’ 김연아가 있다. 수리고 선·후배인 두 사람은 현재 같은 소속사(올댓스포츠)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김연아는 매주 태릉 빙상장을 찾아와 ‘원 포인트 레슨’을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최다빈은 피겨 ‘레전드’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듣고 그에 맞춰 연습하는 게 가장 값진 훈련 중 하나라고 말한다. 최다빈은 “경기에서 잘하거나 혹은 못할 때도 언니가 꼭 격려의 문자를 보내준다. 내겐 더 열심히 하게 되는 힘”이라고 말했다.


단점을 채워나가는 열일곱 소녀

얼음 위에선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지만 평소 최다빈은 다소 내성적인 편이다. 손재주가 좋은 그는 메이크업이나 머리 가꾸는 걸 좋아한다. 특히 경기 땐 자신이 직접 화장을 하고 머리 모양을 매만진다. 한 가지에 빠지면 꼭 하고야 마는 최다빈은 요새 캘리그래피(예술적으로 쓴 손글씨)에 ‘꽂혔다’고 한다.

내년 평창 올림픽을 앞둔 현재, 최다빈은 가장 주목받는 피겨 기대주다. 정작 본인은 올림픽 출전 자체가 꿈이라고 말한다. 당장 최다빈의 목표는 3월 말 세계선수권(핀란드 헬싱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이 대회에서 최다빈이 10위 안에 든다면 한국은 여자 싱글에 2명이 나설 수 있다. 당초 세계선수권 국가 대표는 최다빈의 절친한 친구 김나현(17·과천고)이었지만, 그가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하면서 최다빈이 대신 출전하게 됐다. 아시안게임과 달리 세계선수권엔 유럽과 북미, 일본의 쟁쟁한 피겨 스타들이 모두 나서기 때문에 더 힘겨운 경기가 예상된다. 하지만 도전을 앞둔 열일곱 피겨 소녀의 표정은 밝다. “지금 저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선수예요. 계속해서 단점을 채워나가면 어느 순간 좋은 선수가 돼 있겠죠?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 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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