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나눌수록 커지는 기적의 빵집

창업 60주년 성심당 임영진 대표, 김미진 이사

글 : 임현선 기자  / 사진 : 신현종

  • 글씨 더 크게 보기
  • 글씨 더 작게 보기
‘우리 곁에 불행한 사람을 두고 혼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믿음으로 지역에서 이웃과 함께 성장한 빵집 성심당이 창업 60주년을 맞았다. 성심당은 1956년 밀가루 두 포대를 자산으로 대전역 노점에서 찐빵집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나눔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매달 3000만원 이상의 빵을 대전 시내 양로원과 보육원 등에 기부했다. 2005년 큰 화재로 위기를 겪었으나 직원들과 시민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연 매출 400억원의 기업으로 성장한 대전의 자부심이자 대전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일터 1위로 꼽힌다.

사진제공 : 성심당
대전 성심당 임영진 대표 가족. 왼쪽부터 둘째 아들 임대혁, 맏딸 임선, 임영진 대표, 부인 김미진 이사.
모두가 행복한 경제

지난 10월 말 성심당의 창업 역사 60년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성심당, 우리가 사랑한 빵집》(남해의 봄날)이 발간되자 거의 모든 언론이 기사화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성심당이 ‘EoC(Economy of Communication), 모두를 위한 경제’를 실천하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기업의 경영 사례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EoC는 기업이 공동선을 위해 존재하고 가난한 이들이 경제의 주역이며 젊은이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창업주 고 임길순은 ‘빵 300개를 만들면 200개는 팔고 100개를 가난한 이웃에게 기부하는 삶’을 살았다. 2대째 성심당을 운영하는 임영진 대표는 이탈리아의 새로운 공유경제를 주창한 키아라 루빅의 포콜라레(Focolare : 벽난로, 따뜻한 공동체를 의미)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임 대표는 성심당의 사훈을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로 정하고 부친 때부터 이어온 빵 기부뿐 아니라 수익의 15%를 인센티브로 직원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2005년 불이 나서 3층 공장이 전소하고 20여 명이 다쳤어요. 옆 가게에서 불이 났는데 우리 책임으로 돌리는 상황이라 말할 수 없이 힘들었죠. 나중에 누명은 벗었어요. ‘잿더미 속 우리 회사 우리가 일으켜 세우자’라고 플래카드를 내걸고 헌신적으로 일한 직원들이 없었다면 재기는 불가능했을 거예요.”


임 대표에게 직원들은 가족과 같은 존재다. 대표를 비롯해 모든 임원이 말단 직원과 같은 종류, 같은 크기의 책상을 쓴다. 직원들이 나중에 개업할 수 있도록 기술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성심당 출신 중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며 밝게 웃었다. 1982년 임 대표와 결혼 후 성심당에 합류한 김미진 이사는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다.

“우리가 부부란 것을 모두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사장이 둘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잖아요. 회사에서 저는 지위가 더 높은 남편의 뜻을 철저히 따릅니다. 집에선 제가 발언권이 더 세지만요(웃음). 가족이 경영하는 회사에서는 안주인들이 돈을 만지는 경우가 많아요. 숫자에 약한 저는 돈 가까이 가지 않아요. 미술 전공자라서 디자인에 관심이 많죠. 인테리어 등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김미진)

성심당에 쏟아진 언론의 관심에 대해 임영진 대표는 “능력이 뛰어난 출판사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김미진 이사는 “많은 분이 성심당의 경영 사례를 떳떳하게 돈을 버는 증거로 여기는 것 같다”며 “우리는 빵을 만들고 있지만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대전의 자부심이 탄생한 과정


성심당의 창업자 임길순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주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고향에서 종교 탄압이 거세지자 가족과 짐을 꾸렸다.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부산행 배에 오른 그는 “이번에 살아남을 수 있다면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28시간 만에 배는 부산에 도착했지만 피란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부산항은 정박을 허용하지 않았다. 거제로 뱃머리를 돌린 뒤 육지와 닿을 수 있었다. 가족을 데리고 진해에 정착한 임길순은 냉면 장사로 생계를 이었고 이곳에서 첫아들 영진을 얻었다. 정착한 지 6년째 되던 해 서울로 이주를 결심하고 통일호에 몸을 실었다. 다섯 시간 가까이 달리던 기차는 갑자기 대전역에서 멈춰 섰다. 열차 고장으로 내릴 수밖에 없었던 대전이 제2의 고향이 된 순간이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라 노점에서 시작한 찐빵 장사는 비교적 잘됐다. 2년 뒤 노점에서 벗어나 작은 가게를 열 수 있었다.

“사업은 번창해서 번듯한 매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익이 가족에게 돌아가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학비를 제때 내지 못할 때도 있었죠. 틈만 나면 이웃에게 퍼주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죠.”


임영진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빵 배달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남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할 때까지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스무 살 때 대형 사고가 터졌다. 공장장을 비롯해 제빵 기술자 5명이 갑자기 종적을 감춘 사건이었다.

“당시 많은 제과점이 오너셰프 체제가 아니었어요. 저희 가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버지는 빵보다 나눔에 더 관심이 많았고 어머니는 몇 가지 빵을 만들긴 했지만 복잡한 기술은 모르셨어요. 가게 운영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 주인에게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죠. 직접 빵을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임 대표는 제빵기술 책을 펼쳐놓고 며칠씩 밤을 새우며 빵 만들기에 몰두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금세 빵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다. 임 대표가 주도적으로 메뉴 개발에 나섰고 1980년 성심당 최고의 히트 상품인 튀김소보로가 탄생했다. 튀김소보로는 단팥빵, 소보로, 도넛 세 가지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빵으로 소개되며 대전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1982년엔 전국 최초로 포장 빙수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고 판타롱부추빵, 카카오순정, 월넛브레드, 대전부르스떡 등 400여 종의 빵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지역을 떠나지 않는 이유


1980년대 성장을 거듭했던 성심당은 1990년대 중반 전국적으로 확산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돌풍으로 위기를 겪었다. 대전의 원도심에 몰려 있던 관공서들이 신도시 개발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원도심에 뿌리를 내린 성심당과 주변 상권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위기는 내부에서도 찾아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임 대표의 남동생이 “성심당이란 이름으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사업을 하겠다”며 독립을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사태는 성심당을 극심한 혼란으로 몰아갔다. 일부 직원들이 동생을 따라 이직했다. 동생이 세운 성심당(주)은 창업과 함께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모집하며 사세를 확장했으나 8년 만에 부도를 맞았다. 이후 동생은 미국으로 건너가 재기를 꿈꿨지만 2006년 이국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동생이 죽기 3년 전 임 대표는 미국에서 동생과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사실 안 보고 살 수도 있었어요. 그렇게 사는 형제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미움을 마음에 담아두고 사는 것도 죄잖아요. 제 앞에서 동생이 눈물을 흘리는데, 그 순간 서운한 감정이 사라지더군요.”

성심당은 대전 중구 대종로 본점과 대전 롯데백화점, 대전 KTX역에서 빵을 팔고 있다. 많은 이가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지만 분점을 더 늘리기 위해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사업을 할 계획은 없다. 지금도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서 좋은 자리를 줄 테니 입점하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응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전의 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그 지역에 직접 와서 오감으로 느껴야 할 테니까 말이다.
  • 2016년 1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 (주)조선뉴스프레스 | 대표이사 : 김창기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 통신판매 신고번호 : 제2015-서울마포-0073호
서울 마포구 상암산로 34 DMC 디지털큐브빌딩 13층 Tel : 02)724-6834, Fax : 02)724-682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현선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