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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 그 쓸쓸함에 대하여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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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병든 사회를 비춘다. 환부를 드러내 공론화하는 게 영화가 할 수 있는 심폐소생술이다. 〈죽여주는 여자〉는 100세 시대를 사는 슬픈 노인의 노래다. 가난과 고독, 중풍과 치매를 만난 이들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까. ‘광산 속 카나리아’처럼 시대상에 민감하게 지저귀는 이재용 감독을 만났다.
고약한 감독이다. 며칠 살짝 왔다 가면 된다고 해서 촬영장에 갔더니, 페이크 다큐멘터리 〈뒷담화: 감독님이 미쳤어요〉를 찍지 않나, ‘당신을 생각하며 썼다’고 해서 펴 봤더니 ‘노인 성매매와 죽음의 문제’를 연기해달라고 하질 않나. 그럼에도 배우 윤여정은 〈여배우들〉부터 맞춰온 그와의 연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다. 결국 영화란 감독의 예술임을 인정한다. 감독의 디렉션에 맞춰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 배우의 몫임을 안다. 이 고집스러운 예술가 두 명이 만나 만든 작품이 〈죽여주는 여자〉다. 이 영화는 몬트리올 판타지아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시아티카영화제에서도 작품상을 수상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개봉 첫날,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이재용 감독은 지금은 “하길 잘했다”고 한숨을 돌리지만, 불과 촬영 1주일 전만 해도 영화를 중단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했다.

“100세 시대, 100세 시대 하는데 이것이 과연 축복인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고민했죠. 앞으로 안락사나 조력살인을 이야기할 때 우리 영화가 언급될 것이고, 그렇게 될 때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두렵더군요.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논의해봐야 할 이야기고, 이 영화가 그 화두를 던질 수 있다면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나리오 작업에 두 달, 그리고 촬영에 또 두 달이 걸렸다. 시작은 단순했다. 만약에 윤여정이라는 동일한 인물이 한국전쟁 이후 ‘삼팔선 따라지(전쟁으로 남한에 내려온 피란민들)’로 고아가 되어 살게 되었다면, 식모살이를 하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양공주로 흘러들어 가게 됐다면 그녀의 삶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를 떠올려봤다.

10월 6일 개봉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
“평소에도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입니다. 제가 윤여정이라는 배우를 평소 관찰한 모습들이 담기기도 했고, 제가 심어둔 유머코드나 농담들을 그녀가 잘 살려주리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고단한 하루를 보낸 뒤 패스트푸드점에 들른 소영(윤여정)은 길에서 데려온 필리핀 코피노 소년에게 가져다 줄 치킨을 산다. 계산대의 점원은 주문을 받고 의례적으로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소영은 혼잣말처럼 “아니 대신 내줄 것도 아니면서 도와주긴 뭘 도와줘”라고 중얼거린다.

“영화의 재미 중 하나는 디테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영화를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 그리고 세 번째 볼 때 계속 새롭게 발견되는 장면들이 있길 바라요. 감독으로서 보물찾기처럼 숨겨두는 장면이죠. 누군가 그 장면을 발견했다고 하면 신이 나요. 제가 영화 하면서 느끼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나만 보기 아까운, 나만 알기 아쉬운


이재용 감독은 1998년 〈정사〉를 연출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순애보〉 〈다세포 소녀〉 등을 만들었고, 〈여배우들〉과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를 통해 엉뚱한 상상력으로 영화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여배우들〉은 친한 여배우들의 평상시 모습을 보면서 ‘나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고, 〈감독이 미쳤어요〉는 모든 게 인터넷으로 가능한 시대에 ‘연출이 없어도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해봤다고 한다.

“제 기질이 약간 엇나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도 거의 울지 않아요. 웃긴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거의 웃지 않고요. 도리어 아무도 울지 않는 장면에서 엉엉 울어요. 누군가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두는 게 좋아요.”


배우 윤여정은 그의 이런 성품에 각별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가 설령 노인 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그것이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고 얼마간의 온기를 품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영화는 그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다. 윤여정이 연기한 소영은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 그의 과거가 어떠했든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을 잃지 않는다.

“작년 이맘 때 종로와 이태원, 남산과 장충동에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우리가 촬영 기간으로 잡아둔 기간에 일어난 일들이 그대로 영화에 담기길 바랐어요. 그것이 결국 하나의 기록이 될 테니까요.”

〈죽여주는 여자〉 현장 스틸.
소영이 성매매 손님을 만나는 조계사에는 당시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이 숨어 있었다. 신원 미상의 여성이 혼자 사는 노인을 살해했다는 뉴스에는 ‘백남기 노인 중태 상태’라는 자막이 지나간다.

“우리는 한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보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보기도 합니다. 이태원에서 촬영하면서 좋았던 점은 이제는 쇠락해가는 도시의 어떤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투명인간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요. 예전부터 살고 있었지만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존재들이죠.”


화두를 던지는 것, 그게 영화의 몫


극 중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혼자 사는 노인의 금품을 노리고 살해했으리라는 추측성 보도에 뉴스를 보던 이들이 혀를 찬다. 소영은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에게도 다 사정이 있었을 거야.” 〈죽여주는 여자〉는 이 사정에 대한 이야기다. 소영은 어쩌다 생계형 성매매 여성이 되었을까, 독거노인은 어떻게 혼자서 죽어갈까, 반려자를 잃은 노인의 남은 삶은 어떻게 채워질까. 카메라는 소영을 비추지만, 정작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건 그들의 속사정이다. 윤여정은 영화 작업을 마치고 “모르고 죽었으면 좋았을 세계를 알게 됐다. 그래서 감독에게 고맙다”고 했다.

“멀찌감치에서 성매매 노인을 바라보고 있던 날들이 있었어요.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기록들도 찾아 봤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생각해볼 수 있는 이들의 삶이 있었어요. 소영은 자기 자식을 키우지 못하고 입양 보내잖아요. 그때 그녀의 어떤 부분도 함께 죽었을 거예요. 그 죄책감이 늘 있었을 거고요.”

살인 혐의로 경찰차에 탄 소영은 비로소 긴 여행이 끝났다는 듯 후련하게 담배를 태운다. 흩날리는 진눈깨비를 보면서 혼잣말을 한다. “봄에 가면 안 되나. 나 추위를 많이 타는데. 요즘 감옥에는 반찬이 뭐가 나오려나.”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영화를 찍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그는 그 감옥 안에서 생을 마감해요. 한국전쟁이 있던 1950년에 태어나 2015년에 죽은 여자. 그가 남긴 기록은 그게 전부인 거예요.”

이재용 감독은 한 줄의 기록을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 이 영화가 투명인간처럼 사는 이들에게 형체와 목소리를 그리고 이름을 남겨주었다. 이들이 고독에 익사하지 않고, 가난에 질식사되지 않기를.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을 비추며 시작한 영화는 잡초 사이에 피어난 한 송이 들꽃을 비추며 끝난다.
  •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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