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펀딩으로 3억 달성 박준영 변호사

‘망한’ 변호사에서 ‘희망’ 변호사로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김선아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절망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은 말했다. “바닥을 치고 나니 눈부신 비상이 찾아왔다”고 희망의 변호사 박준영은 말한다. ‘변호해서 남 주는 삶’을 살다가 파산의 위기에 몰렸던 이 변호사를 시민이 살렸다. ‘국민 변호사’보다 ‘동네 변호사’로 불리길 원하는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재심, 확정된 판결에 대해 사실 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 당사자 혹은 청구인의 청구에 의해 그 판단의 당위를 다시 심리하는 것을 말한다. 살인, 강도 등의 형사사건의 경우 재심이 받아들여진 경우는 없었다. 적어도 2007년까지는 그랬다.

2007년 수원의 한 노숙 청소년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과 검찰은 5명의 노숙 청소년과 2명의 지적장애인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고,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7월 박준영 변호사는 수원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2002년 사법고시를 합격한 뒤 로펌이나 대기업의 입사를 꿈꿨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전남 완도 출신인 그는 목포에서 대학을 다니다 군대에 갔다. 선임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걸 보고 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2006년 사법연수원 35기를 수료하고 나니, 그에게 주어진 건 ‘고졸 출신 변호사’라는 닉네임과 숱한 국선 수임이었다.


형사사건 최초 재심 판결 이끈 주인공

박준영 변호사는 스토리펀딩에 올린 글로 3주 만에 3억원을 모았다.
“한 달에 30~40건의 국선 변호를 하다가 만난 게 ‘수원 노숙인 살인 사건’이었습니다. 우연히 맡은 사건인데, 그 사건이 제 인생을 바꾸었지요. 처음부터 거창한 공익을 위해서 변호사가 된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커트라인에서 1점 차이로 사법시험에 붙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고시 패스를 했는데 이 세계 안에 들어와 보니 저보다 잘난 사람들 천지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지요. 전 거기에 끼지 못한 거고요.”

범인으로 몰린 가출 청소년과 지적장애인을 만나보니 강압적인 수사로 인한 ‘허위 자백’이라는 느낌이 왔다. 사건 현장을 샅샅이 뒤졌다. 현장 수사의 허술함과 이를 채운 신문의 잔인함이 드러났다. 그가 사건을 맡은 지 5년이 지난 2012년 6월 대법원은 형사사건 최초로 ‘재심’을 결정했다.

“많은 사람이 왜 자신이 죽이지도 않은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하느냐고 물어요. 그건 합리적인 사고 아래에서는 타당하죠. 하지만 피해자들이 수사와 신문을 받는 상황은 합리적이지 않아요.”

공권력이 사회적 약자에게 강압을 쓰기 시작하면,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최소한의 신변도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선택하는 자기 보호는 ‘허위 자백’일 수 있다. ‘자백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달콤한 회유에 넘어가는 것이다.

“합리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들이 자백하게 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없지요. 제가 재심을 위해 싸우는 이유는 이들 모두가 ‘무죄’라고 믿어서는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적법한 증거와 절차에 따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재판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나라슈퍼 강도사건 피해자와 함께 싸우는 박준영 변호사.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비교적 쉽다. 하지만 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특히나 모든 정황이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이후 전국에서 숱한 재소자들이 보내온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가 그의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좁은 그의 사무실이 억울한 사연으로 채워지는 동안,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렌트해서 사용하던 사무실의 집기들은 그의 곁을 떠났다. ‘돈이 되지 않는’ 재심 사건에 3~5년씩을 매달리다 보면, 아무리 변호사라도 생계가 곤란해진다. 그럴수록 그는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변호사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보여주겠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그러나 사무실 월세 임대료는 10개월이나 밀렸고, 은행에서는 대출 연기를 해줄 수 없다는 최종 통보를 보내왔다.

“성실하게 이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더 버틸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재심을 위한 사건 펀딩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나 살자’고 펀딩을 올린 적은 없었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더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욕먹을 각오로 스토리를 올렸죠.”

그에게 돌아온 건 욕이 아니라 숱한 응원이었다. 당초 11월까지 1억원을 목표했고, 그 목표액도 도달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했는데 ‘파산 변호사’의 스토리는 글을 올린 지 3일 만에 1억원을 모았다. 9월 9일 현재 3억 6600만원을 돌파했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를 후원했을 뿐 아니라 “고작 후원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죄송하다”는 반성문을 보냈다.

“오히려 재심 사건을 진행할 때보다 지금 더 잠을 못 잡니다.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는가, 나한테 보내주시는 이 관심과 온정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어요. 은행의 빚은 줄어들겠지만, 다른 무게의 빚을 지게 된 셈입니다.”

16년 전, 전북 익산에서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경찰은 15세 소년을 범인으로 지목했고, 3년 뒤 잡힌 진범을 외면했다. 검찰과 법원은 소년에게 10년의 징역형을 내렸다. 당시 진범을 잡은 군산경찰서 형사과장은 지구대로 좌천됐다. 1999년 완주군 삼례읍에서 일어난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일명 나라슈퍼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들 3인조 중에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이도 있었다. 누명을 썼으나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진범이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재심’을 위해 힘쓰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진범이 도리어 무고한 피해자들에게 살해된 희생자에게 사과를 하는데, 경찰과 검찰이 인정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

수원 노숙 소녀 재심사건 관련 기사.
그에게는 세 아이가 있다. 속 깊은 첫째는 이제 아홉 살, 똑똑한 둘째는 여섯 살, 막둥이는 이제 막 100일이 지나 뒤집기에 성공했다. 매일 사건의 목격자를 찾아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아빠는 아이들이 태어나는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55만원을 내고 사는 다섯 식구의 보금자리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활동을 계속해 가는 이유는, 아이들이 살 세상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은 결국 사회에 울분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이들이 휘발유를 들고 울타리 안으로 뛰어 들어왔을 때 그 울타리 안에 내 아이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결국 저의 활동은 저와 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울타리를 더 높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 안의 사람이든 바깥의 사람이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는 여러 재심 사건을 맡으면서 유명해졌습니다. 펀딩을 통해서 많은 도움과 관심, 사랑을 받았고요. 좋은 일을 하는 분들이 세상에 참 많아요. 자신의 ‘선의’만 가지고는 그 활동을 지속해갈 수 없습니다. 그만큼의 보상이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그 활동을 계속해갈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그가 만난 세상은 여러 안타까움을 갖게 했다. 좋은 제도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좋은 복지는 섬세한 복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불쌍하니 도와주자’는 수혜와 시혜의 관점이 아니라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는 공정함과 엄밀함이 필요하다. 감정이 아니라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환경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니까.

“변호사가 되고나니 짜장면만 먹다가 어디 가도 코스 요리를 먹고, 택시를 타도 딱 뒷좌석에 타게 되더라고요. ‘정의 사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한 법조인들이 기름지게 변하는 게 이해가 갑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제가 경제적으로 파산하면서 얻은 게 있다면 사람 사는 ‘떳떳함’입니다. 근데 이게 그렇게 값지고 배부를 수가 없어요. 이제 이 맛을 알았으니 계속 이 길로 가야죠.”
  •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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