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프랑스 공연에서 극찬,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현대무용에 전통을 입히다

글 : 시정민 기자  / 사진 : 김선아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1980년대 한국에 생소했던 현대무용 중 하나인 *컨템포러리를 소개한 대표 안무가 중 한 명이다. 30여 년 동안 〈불쌍〉 〈굿〉 〈씻김〉 등 한국 전통문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지난 6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 행사’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미아직〉이 프랑스 샤오이 극장에 올려졌다. 전통 장례문화를 주제로 한 〈이미아직〉은 1200석의 공연석을 가득 채웠고 프랑스 현지 미디어의 호평을 받았다. 무용가 최승희 이후 77년 만에 한국 안무가의 작품이 올려진 데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

사진제공 : 국립현대무용단 최영모, 손소영, 김근우
굿이라는 제례의식에 관심

〈이미아직〉은 죽음을 삶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동양적 세계관을 담아낸 작품으로 전통 장례문화에 등장하는 꼭두각시를 모티브로 삼았다. 죽음을 소재로 다뤘지만 어둡기보다 외려 활력이 넘친다. 죽음 이후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 덕분에 장례가 축제이자 놀이였던 우리 선조들의 의식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의 전통 제례의식이라는 소재가 낯설 수 있기 때문에 첫 공연 땐 기절할 정도로 떨었죠. 작품은 무대를 통해 관객과 만날 때 진정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니까요. 죽음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내 과거의 시간을 재해석한 동양적 관점이 흥미로웠다는 호평을 들으며 안심이 됐죠.”

한국 전통문화를 주제로 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온 그는 특히 굿이라는 제례의식에 관심이 많았다.

“굿은 우리나라 전통 중 하나의 공연 형식이기도 하고 놀이적으로 해학적으로 풀어낸 철학이 담겨 있어요. 우연성, 축제성, 즉흥성 등이 녹아 있지요. 지금 이 시대 안무가들이 찾고 있는 철학의 개념이기도 해요. 우리 전통 제례의식에 이러한 철학이 녹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프랑스 샤오이 극장에서 공연한 〈이미아직〉.
그에게 전통이란 미래를 찾는 좋은 모티브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삶의 문화가 달라져도 과거의 사람들이 살았던 삶은 지금의 우리와 같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 앞선 개념도 좋지만 전통이 주는 해학과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에는 역사와 더불어 문화, 시대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우리나라 정서와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춤을 개발하는 것이 좋았어요.”

〈이미아직〉 공연에 참여한 20대 무용수들에게는 죽음, 전통, 샤먼이라는 주제는 몹시 낯선 얘기였다. 무용은 언어가 아닌 몸으로 풀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려운 주제는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무용수들은 죽음이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라며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없다’ ‘안무자의 생각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면서 작업 초반부터 부딪혔어요.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어요. 단순히 말로 설득하기보다 샤먼, 죽음의 세계, 동양철학과 관련된 영화와 강의를 통해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어요.”

〈이미아직〉은 2014년 초연 이후 3년 동안 수정 작업을 거치며 조금씩 더 견고하게 다듬어졌다.

무용수들 또한 처음엔 이해하지 못한 소재였지만 3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한 이후에 오른 샤이오 극장에서는 자신의 춤으로 해석한 진정성 있는 무대를 펼칠 수 있었다.


다양한 장르와 결합한 현대무용

그는 음악, 디자인, 영상, 건축 등 다양한 장르와 현대무용을 컬래버레이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시작해 10월 중순까지 열리는 예술실험 프로젝트 ‘예기치 않은’은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기획했다. 예술작품으로 가득한 미술 전시공간에서 13개의 무용팀이 사람의 몸과 관련된 즉흥 게릴라 퍼포먼스를 펼치는 프로젝트다. 미술관 로비부터 복도, 전시실 곳곳에서 이들의 퍼포먼스를 감상할 수 있다.

“장르의 융합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정적인 미술 전시공간에 무용을 접목해 시간성, 즉흥성, 공간성을 느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 개념을 넓혀보고 싶었습니다.”

그에게 컬레버레이션 작업은 각 장르의 예술가가 가진 생각, 이 시대를 표현하는 관점 등을 결합해 만드는 실험적인 작업이라고 한다. 작품의 질, 결과의 유무도 중요하지만 융합하는 과정과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작품이란 그저 색다르고 보기 좋은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예술가들의 생각을 모으고 합치는 ‘예술가들의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에 실험적이고 예술가적인 발언을 녹여낼 수 있도록 주안점을 둡니다.”

현대무용극 〈어린왕자〉(위)와 국립현대무용단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무용학교〉에 참여한 일반인들이 공연하는 모습.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 행사에서 우연히 발레를 접했다. 본격적으로 무용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무용반에서였다. 한국무용, 발레 등 다양한 무용을 접했지만 현대무용에 매력을 느꼈다. 그는 현대무용을 도서관이라고 표현한다. 현대무용에는 고정된 테크닉이 없기 때문에 발레, 한국무용,힙합 등 다양한 춤을 몸에 익히고 저장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익혀놓은 춤은 언제, 어떤 작품에 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익힌 그대로의 춤이 아닌 자신이 생각한 것을 재해석해 표현하는 것이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후 1985년 안애순무용단을 창단했다. 〈갈라파고스〉 〈백색소음〉 〈거기에 쓰여 있다〉 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작업할 때 무용수들에게 큰 주제만 제시한다. 무용수들은 그 주제에 필요한 자료를 직접 리서치한 후 자료를 토대로 어떻게 해석했는지, 춤으로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의견을 그와 나눈다. 그의 생각과 무용수가 이해하고 해석한 것을 더해 어떻게 춤으로 표현해낼지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작품을 만든다.

“제시한 안무만 추는 건 의미가 없어요. 다른 사람의 춤을 따라 추는 것일 뿐 진정한 자신의 춤이 아니죠. 힘들고 고되더라도 수많은 고민과 답습하는 시간을 보내며 자신만의 춤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는 2013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취임 후 2000여 명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해왔다.

“무용이라는 것은 종합적이고 여러 장르가 만나 함께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 중에는 가능성이 있지만 관객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예술가가 많아요. 가능성 있는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작업의 시너지 창출과 함께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작업이 될 땐 뿌듯하죠. 하반기에는 코리아심포니, 국립국악원과 전통을 재해석한 협업 을 할 계획입니다.”

그의 꿈은 삶에서 예술을 놓지 않고 작업하는 것이다.

“많은 예술가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놓고도 할 얘기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제 삶에서 작업을 놓고 싶지 않아요. 나이가 들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찾아가는 것이 제게는 가장 신나고 의미 있는 일이니까요.”

* 컨템포러리 : 예술가가 시대의 관점을 가지고 사회적 예술을 하는 것
  • 2016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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