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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김인희 발레STP협동조합 이사장

후배들이 신나게 춤추는 무대를 많이 만들어야죠

글 : 임현선 기자  / 사진 : 장은주 

전국 대학에 개설된 무용학과는 49곳. 해마다 1000~2000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지만 이들이 전공을 살려 지속해서 춤을 출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특히 발레 같은 순수예술 전공자들이 설 무대는 더욱 좁다. 수많은 발레단 가운데 현재 고정 급여와 건강보험 등 4대 보험이 보장되는 발레단은 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세 곳에 불과하다. 꿈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꿔보자고 몇몇 민간발레단 단장들이 뜻을 모았다. 발레계 선후배, 동료인 이들은 2013년 1월 국내 최초로 공연예술인들의 협동조합인 발레STP(Sharing Talent Program)협동조합을 만들었다. 협동조합 설립 때부터 이사장을 맡은 김인희(53) 서울발레시어터 단장은 발레의 본고장 유럽에서 유학한 발레리나 1세대를 대표하는 리더다.

사진제공 : 발레STP협동조합
김인희 발레STP협동조합 이사장과 남편이자 안무가인 제임스 전.
아름다운 재능 나눔, 발레

발레STP협동조합은 발레계의 발전, 대중화, 직업 창출을 통한 안정적이고 수준 높은 예술 활동 지원 등을 목표로 한다. 발레의 대중화는 곧 발레 전공자들이 꿈을 펼칠 무대가 많아짐을 의미한다. 협동조합 공동 기획으로 2014년에는 3회, 2015년에는 5회 공연을 진행했고 올해는 하반기까지 모두 15회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현재 발레STP협동조합에는 서울발레시어터 외에 유니버설발레단(단장 문훈숙), 이원국발레단(단장 이원국), SEO(서)발레단(단장 서미숙), 와이즈발레단(단장 김길용), 김옥련발레단(단장 김옥련) 등이 함께하고 있다. 처음부터 협동조합을 염두에 두고 모인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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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를 운영하면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다보니 우리가 힘을 합쳐서 뭐라도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매달 1회씩 단장 모임을 했어요. 이후 친목 모임에서 벗어나 체계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활동할 필요를 느꼈어요.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으로 공연을 기획하니 다양한 레퍼토리, 규모가 있는 공연이 가능하더군요. 비용보다는 대중화에 초점을 뒀어요. 노력 덕분에 예전보다는 발레가 문턱이 높은 예술이라고 여기는 경향은 옅어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여전히 발레공연 관람시장은 협소하고 대중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 단장들만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운영 비용은 자비로 부담한다. 각 발레단 단원들은 조합원이 아니지만 조합의 모든 행사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발레단 단원 전체가 협동조합의 준회원이라고 볼 수 있다. 200여 명의 무용수들이 발레STP협동조합의 공동 목표 아래 함께 활동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8월 수원시가 주최하고 발레STP협동조합이 주관한 수원발레축제를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로 꼽았다. 축제 기간에 발레 관련 전시회 및 발레 체험 교실을 매일 개최해 일반인의 발길을 끌었다. 차세대 안무가전을 통해 신예를 소개하는 한편 각 단체의 기량을 보여주는 다양한 안무와 공연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김 단장은 “올해는 지난해 성과에 힘입어 발레축제 규모가 더 커졌다”며 “9월 1~4일 축제가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공연장 무대뿐 아니라, 수원시청역 인근 횡단보도 등 시민이 많은 곳을 찾아가 즉석 발레 공연을 하는 등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발레리나로 40년, 발레 대중화 이끌어

오페라의 밤-SEO(서)발레단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인희 이사장은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매일 왕복 4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산골 소녀였다. 서울로 전학 온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부채춤을 접하고 춤의 매력에 빠졌다. 배우고 싶었지만 시장 노점에서 빈대떡, 핫도그, 튀김을 팔며 생계를 꾸리는 어머니에게 무용학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를 모시고 무용학원에 갔어요. 일바지에 기름때 묻은 전대를 차고 학원으로 들어오시는 엄마를 보고 학원 선생님은 가정 형편이 어려움을 직감하셨죠. 엄마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을 테니, (학원에) 보내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의 이 말씀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

또래보다 늦게 무용을 시작했지만 김 이사장은 선화예술중학교 한국무용과에 무난히 합격했다. 발레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접했다.

“중학교 때 한국무용과 발레를 모두 공부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장학금을 받아 모나코로 발레 유학을 떠났습니다. 낯선 곳에서 매일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엄마 때문이었죠. 시장에서 일수를 찍으면서까지 제 유학 비용을 대주셨거든요.”

2015수원발레축제를 기획한 발레STP협동조합원들이 무대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길용 와이즈발레단장, 김인희 이사장, 이원국 이원국발레단장, 서미숙 SEO(서)발레단장, 유병헌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 김옥련 김옥련발레단장.
귀국 후 그는 유니버설발레단,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활약했다. 1989년 안무가 제임스 전과 결혼한 후에도 발레리나로 계속 무대에 올랐다. 월급을 받으면 토슈즈를 사는 데 거의 쓸 정도로 오직 발레에만 집중했다. 서른 살 무렵, 그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갈림길에 있음을 깨달았다.

“보통 서른 중반까지는 발레리나로 무대에 섭니다. 저는 더 늦기 전에 자유롭게 창작하고 공연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남편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고요.”

그는 남편과 함께 창작발레 활성화와 발레의 대중화를 목표로 1995년 서울발레시어터를 만들었다. 모던발레가 극히 드물던 국내에서 〈현존(Being)〉을 시작으로 지난 20년간 105편의 창작발레극을 발표했다. 〈백조의 호수〉 같은 고전발레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패러디한 작품도 있고 품바타령, 제주도 설화 ‘느영나영’ 등을 발레 작품으로 만들었다. 김 이사장이 만든 〈상하이의 별〉은 연극과 발레가 접목한 새로운 형식의 극이었다. 일부 작품은 해외에 수출도 했다. 최근에는 예술작품 발표 외에도 노숙자를 위한 발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발레를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10월 김 이사장은 20년 전 서울발레시어터의 창단을 알린 작품 〈현존(Being)〉의 여주인공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며 발레리나로서 은퇴를 알렸다. 그후 10개월이 지났다.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달라진 건 별로 없어요. 그동안 무용 전공자를 위한 발레 수업, 프로 무용수를 지원하는 일을 했다면, 앞으로는 일반인 대상 발레 교육, 발레 문화를 확산하고 시장을 키우는 일에 더 집중할 것 같아요. 저에게 은퇴는 새로운 도전이에요. 그동안 해보지 않은 또 다른 일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죠. 새로운 세계로 연결된 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느낌이에요.”

발레 인생 40년 중 서울발레시어터 단장으로 20년을 보낸 김 이사장은 조만간 단장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젊은 피가 들어와야 한다”고 믿는다. 대신 그는 “발레계가 잘 달릴 수 있는 길을 계속 닦아야죠”라고 했다. 협동조합에 참여한 선배들이 넓히고 있는 발레라는 길 위에서 후배들이 자신의 예술성을 마음껏 발휘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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