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한류’ 이끄는 빈컴퍼니 김빈 대표

넥스트 이케아는 스토리가 있는 K디자인

글 : 김미량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미국 뉴욕 시 맨해튼. 세계 최초의 현대미술관 MoMA(뉴욕현대미술관)보다 더 인기 있다는 ‘MoMA 디자인 스토어’에 가면 한국의 리빙 디자인 브랜드 ‘미츠(Meets)’를 만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뮤지엄 숍, 파리의 편집 매장 메르시(Merci), 뉴욕의 트리니티 백화점, 도쿄의 리빙 디자인 백화점 로프트(Loft)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디자인 제품이 모인 이들 매장에서 미츠는 ‘K디자인’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해외뿐 아니다. 국내 박물관 아트 숍과 청와대 기념품 숍도 미츠를 선택했고, 어느새 입소문을 듣고 제품을 찾는 젊은 고객들의 잦은 발걸음 덕분에 미츠는 부쩍 바빠졌다.

사진제공 : 빈컴퍼니
수백만 원대의 한지 오브제부터 1만 원 미만의 장판지 바스켓까지, 현대와 전통의 감성이 세련되게 어우러진 다양한 제품들은 디자이너 김빈(빈컴퍼니 대표)의 고집을 그대로 담고 있다. K디자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김 대표는 ‘보는 전통문화가 아닌, 일상에서 곁에 두고 향유하는 전통 디자인’을 추구한다. 전통과 현대의 접점을 찾기 위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세계에서도 통할 K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찾는 젊은 디자이너의 꿈을 향한 도전이다.


늘 곁에 두고 쓰는 디자인 용품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젊은 디자이너 김빈의 롤모델은 애플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인 조너선 아이브였다. 세계적인 휴대폰 디자이너가 되겠다며 LG전자에 입사했고, 신입 사원 연수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덕분(?)에 엄청난 기대와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했고, 2006년 직접 디자인한 휴대폰으로 ‘차세대 디자인 리더(현 산업통상자원부 선정)’에 선정되었다. 큰 조직에서 고객 조사 및 디자인 전략 수립과 경영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고, 실력을 인정받아 승진도 거듭했다. 하지만 남몰래 조금씩 아쉬움도 커져갔다.

“저는 늘 사람들이 곁에 가까이 두고 쓰는 제품에 관심이 많았어요. 휴대폰이 바로 그런 제품이었죠. 하지만 휴대폰은 제품 특성상 나만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시도하기 어려워요. 시간이 흐를수록 작지만 오롯이 혼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꿈꾸게 되더군요.”

한지 오브제와 바스켓, 오너먼트 등 한지 컬렉션. 타원형의 한지 바스켓은 중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었다.
2009년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다. 뉴욕현대미술관과 국내 모 카드 회사가 함께 주최하는 전시회에 그는 시간을 쪼개가며 틈틈이 디자인한 제품 ‘드링클립(Dringklip)’을 선보였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커다란 집게 모양의 드링클립은 책상에 끼우면 컵이나 사무 집기를 두는 간이 홀더가 된다. “평소 책상 위에 물건을 어지럽게 펼쳐놓는 습관 때문에 자주 커피를 쏟았던 경험”을 아이디어로 적용한 드링클립은 단번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2009년 그는 또다시 ‘차세대 디자인 리더’로 선정되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은 주변의 뜨거운 반응은 그의 심장에 불을 놓았다. 아이디어를 다듬고, 드링클립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며 차근차근 준비를 한 끝에, 2011년 스물아홉의 그는 회사를 떠나 독립했다.

드링클립의 행보는 순조로웠다. 세계 3대 디자인 전시회 중 하나인 ‘100% 디자인 런던’에서 30달러 남짓한 가격의 드링클립이 3시간 만에 1만 5000달러의 판매를 기록했고, 유명 리빙 용품 편집 매장과 뮤지엄 숍의 입점도 결정됐다. 그는 더 자주 해외 유명 디자인 전시회를 찾았고, 한국 디자이너 김빈의 이름을 조금씩 알려나갔다. 드링클립은 현재 누적 판매 30만 개를 기록 중이다.


“한국의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단청을 재해석한 바스켓. 기하학적 무늬와 전통적 색감이 아름답다.
1년에 두세 번씩 참가하는 국제 디자인 전시회에서 만난 외국 디자이너들은 항상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김 대표는 멋쩍은 표정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디자인을 공부할 때도,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에 당황했고, 세계 디자인의 각축장 한가운데서 확인한 ‘한국 전통 디자인의 단절’은 가슴 아팠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굴곡진 현대사와 숨 가쁜 산업화의 세월 동안 우리의 생활에 스며 있던 전통 디자인은 성장을 멈췄다. 외국의 디자인을 모방하고 소비하면서 전통은 그저 ‘사진을 찍거나 교과서로 배우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뼈아픈 반성이 이어졌고, 마치 풀지 못한 숙제를 떠안은 듯 그는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짐을 품었다.

하지만 2011년, 운명이 그에게 다가왔다. 본격적으로 드링클립의 생산을 위해 중국에 머물던 그는 천양제지 최영재 대표의 제안으로 전주를 찾았고, 그곳에서 ‘한지’를 만났다. 장인의 손끝에서 한 겹 한 겹 만들어지는 한지의 부드럽고 강한 재질, 그리고 공기를 품은 따스한 색감은 그를 한눈에 사로잡았다.

“그냥 막 좋은 거예요. ‘당장 뭔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로 온몸에 전율이 일더군요.”


최 대표에게 한지를 얻어 중국으로 돌아간 그는 낮에는 공장에서 드링클립 생산을 지휘하고, 밤에는 숙소에서 한지로 작품을 만들었다. 한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국제전화로 묻고 배우기를 한 달. 김 대표는 완성된 ‘한지 바스켓’ 을 들고 다시 전주를 찾았다. 그의 작품을 본 한지 장인들은 “이걸 어떻게 만들었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구조물도 없이 오직 한지와 물만으로 입체적인 물체를 만드는 것은 매우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의 한지 바스켓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예술성과 기술적 측면에서 모두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는 2013년 빈컴퍼니를 세우고, 브랜드 미츠를 런칭했다. 전통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바쳐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장인들을 만나 배움을 청했고, 긴 시간 곁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드링클립으로 번 돈은 모두 미츠의 제품 개발에 쓰였다. 그러는 사이 ‘한지 시리즈’ ‘단청 시리즈’ ‘장판지 시리즈’의 제품 라인이 만들어졌다.

따뜻하고 우아한 색과 질감이 아름다운, 한지로 만든 바스켓, 오너먼트, 브로치, 블라인드. 가죽과 비슷한 질감이 돋보이는 장판지(한지)로 만든 명함 케이스, 카드 지갑, 파우치, 티슈 케이스, 다이어리. 실리콘, 폴리카보네이트 등 새로운 소재와 기하학적 문양으로 단청을 재해석한 매트와 바스켓, 천연 비누, 디퓨저 등 미츠의 제품은 무려 60여 종에 달한다.


누구도 가볍게 훔칠 수 없는 ‘시간’, 전통의 힘

미국의 유명한 인테리어 전문가 스테판 실즈가 1000만 원에 구매한 볏짚 의자.
“사람들은 단지 한국적이거나 전통적이라는 이유로 제품을 사지 않아요. 첫눈에 갖고 싶어질 만큼 예쁘고, 오래 쓸 수 있을 만큼 품질이 좋아야 구매를 하죠.”

김 대표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익숙한 말을 현실로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제품에서 ‘모던하고 고급스러운 실용성’을 먼저 경험한다. 전통은 분명 미츠의 정체성이지만 김 대표는 단순히 한국적인 문양을 전통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전통 디자인의 힘은 외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스토리’에 있기 때문이다.

단청의 완벽한 조형성과 색감은 오랜 세월 장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결과다. 가장 완벽한 종이인 한지 역시, 벽지와 장판지로 오랫동안 일상을 함께해온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개선하며 발전해왔다.

누구도 가볍게 훔칠 수 없는 ‘시간’. 이것이 바로 전통이 갖고 있는 스토리다.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북유럽의 독특한 디자인도 결국 나무가 흔한 자연환경에서 살며 생활해온 방식, 즉 그들의 스토리에서 탄생했다.

김 대표는 바로 여기에서 K디자인의 미래를 찾는다. 현대적 디자인의 단청 오너먼트로 집 안을 장식하고 개성적인 단청 바스켓에 과일을 담으면서 일상의 스토리에 녹아든 전통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것. K디자인의 정체성을 찾는 길은 바로 우리의 생활 속에 있다.

“한국 어느 가정에나 이케아 제품 한두 개는 있다고 합니다. 이케아가 홈 퍼니싱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인식되어 있지만 곧 변화가 올 거예요. 너도나도 똑같은 제품이 아닌, 나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해지는 거죠. 북유럽풍 디자인의 이케아 다음에는 어떤 디자인을 찾게 될까요? 바로 그때 합리적인 가격에 실용성을 갖추었으면서 우리 전통의 스토리가 있는 제품을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만들고 준비해놓는 것이 바로 제가 할 일입니다.”
  • 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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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K디자인   ( 2016-02-02 ) 찬성 : 61 반대 : 58
K디자인... 아무런 특색도 특징도 없어서 나올 수 있는 우리나라 디자인의 이름이네요. 5000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 우리만의 문화와 아이덴티티가 약한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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