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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원자도선을 만드는 물리학자

제15회 한국과학상 받은 염한웅 포항공대 교수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이 2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한국과학상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주요 원리를 규명해 세계 정상 수준의 연구 업적을 낸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다. 지난 12월 22일 물리 분야에서 제15회 한국과학상을 받은 염한웅(50) 포항공대 교수는 세계 최초로 원자도선 연구 분야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를 덩어리에서 하나씩 떼어내 한 줄로 배열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도선을 만드는 연구자이다. 지난 10월에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지에 ‘원자 전선’에서 전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씩 이동시켜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해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한계에 부닥친 반도체 산업을 구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간 한국과학상 물리 분야 수상자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국내 공공기관에서 수여하는 과학상 가운데 가장 권위가 있으며 그만큼 수상자에게는 영예가 뒤따른다. 20년간 연구에 매진해온 염한웅 교수에게 이 상의 수상은 일종의 이정표 같은 것이다.

“저에게 지금은 연구자로서 질적으로 도약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국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도 느낍니다.”

염 교수는 과학자가 평생 한 번도 논문을 올리기 어렵다는 물리학계 최고 학술지에 수십 번씩 논문을 발표해 샛별로 떠올랐다. 최근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은 국내 연구자 중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큰 학자임을 예감케 한다. 그가 개척한 분야인 원자선 연구는 한계에 부닥친 반도체 산업에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반도체 산업의 성패는 전자회로의 선폭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 앞에 ‘한국을 먹여 살릴 과학자’라는 수식어가 종종 따라붙는 이유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당신의 연구는 어떤 실용적 가치가 있느냐’고 물어요. 이런 질문은 운동선수에게 ‘왜 세계 기록에 도전하시나요?’라고 묻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2015년 세계 10대 과학 뉴스 가운데 하나가 명왕성 사진을 찍은 프로젝트였어요. 세계인들은 실용성 여부와 관계없이 인간에게 인식의 폭을 넓혀주고 꿈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이 프로젝트에 열광했어요. 저는 제 관심 분야를 좋아하고 파고드는 연구자입니다. 제 연구가 반도체 산업에 도움이 될 이론 중 하나로 거론되지만, 연구 결과가 어떻게 쓰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염 교수는 대다수 과학자들은 실용성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실용성과 관계없이 연구에만 매진해온 연구자들의 성향이 과학 지식의 영역을 무한히 확대해온 원동력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와 기술자를 혼동하는 분들이 많아요. 과학자들은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연구하는 사람들이에요. 기술자들은 과학자들이 연구한 지식의 보고들 사이에서 산업화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는 이들이죠. 과학적 연구가 이뤄지고 그 결과물이 산업 현장에서 이용되는 간격이 짧아지고 있지만, 일정 기간 수준 높은 기초 과학 연구가 축적되어야 산업화 가능성도 커집니다. 특히 기초 과학 연구의 토대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기초 과학에 대한 지원이 더욱 절실합니다.”

염한웅 교수의 연구실 한쪽에 놓여 있는 다양한 상장과 감사패들.
지난해 일본은 노벨 물리학상과 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현재까지 21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중국도 처음으로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이에 비하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의 과학 성적은 초라하다.

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원인을 기초과학의 토대가 취약하다는 점에서 찾았다.

“노벨상을 받으려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수상 가능성이 있는 높은 수준의 연구 업적이 있어야 합니다. 업적이 나온 후 평균 15년 정도가 지나 노벨상을 받는다는 통계에 따르면 우리 과학계가 노벨상을 받는 것은 최소 20~25년 뒤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정부 역시 기초과학의 토대가 허약함을 인식하고 2012년부터 기초과학 연구에 예산을 투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염한웅 교수처럼 세계에서 인정받는 과학자들을 기초과학연구단장으로 임명해 연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와 국외에서 각각 25명씩 모두 50명의 연구단장을 뽑아 그들이 연구단을 구성해 실험과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염 교수는 물리・화학・재료 분야 75명의 과학자들과 함께 기초과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기초과학을 총괄하는 본부가 될 국내 최대 규모의 기초과학연구소는 현재 건립을 준비 중이다. 올해 첫 삽을 떠서 2019년 완공할 계획이다. 연구소 본부는 대전에 세워지고, 울산과기대·광주과기대·대구경북과학기술원 (디지스트)·포항공대 등 주요 대학에 브랜치 기초과학연구소가 만들어진다. 연구소를 먼저 짓고 연구원을 뽑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연구 수준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본 과학자들에게 한 수 배우다

염 교수의 책상 위에 놓인 최근 물리학계 연구 동향이 실린 학술지.
염한웅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포항공대 석사 과정을 거쳐 일본 도호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대에서 조교수로 일하다 연세대 물리학과에 부임해 10년간 연구자로 활발히 일했다. 해외 유명 저널에 가장 왕성하게 논문을 쓰던 시기였다. 2010년 포항공대로 자리를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화려한 경력 뒤에는 20대 시절 혹독한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지도교수와 맞지 않아 두 번이나 학교를 자퇴하는 일을 겪었다.

“제가 포항공대 2기 입학생이었어요. 신생 학교여서 그런지 젊지만 경험이 부족한 교수들이 많았어요. 교수들이 모든 걸 완벽하게 알 수는 없어요. 전문 분야 외에는 잘 모르거든요. 잘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고 함께 연구해보자 하면 좋을 텐데, 그걸 잘 인정하지 않아요. 틀린 것을 보고 틀렸다고 논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굉장히 불쾌해하죠. 포항공대 박사 과정에 입학했는데, 어느 날 교수님이 ‘더 이상 너를 지도할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전북대로 옮겼어요. 거기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결국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죠.”


일본 대학의 연구 풍토는 한국과 매우 달랐다. 학자로서 전문성이 뛰어났지만 권위주의적이지 않았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의견에 겸허히 귀 기울이고 받아들였다.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에 필요한 기계를 만들어 실험에 사용할 만큼 과학 기술 수준이 높았다. 일본 교수들은 의문이 생겼을 때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 염 교수를 지지하고 눈여겨봤다. 염 교수는 2년 6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도쿄대 조교수 제안을 받았다.

“일본 학자들의 연구 전문성과 자세에서 배운 게 많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갖고 있었죠. 일본의 연구 풍토는 다른 연구자를 좇지 말라는 분위기예요. 논문을 아무리 많이 발표해도 독자적인 연구 분야를 개척하지 못하면 연구자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런 연구 분위기에 자극을 받아 염 교수는 도쿄대 재직 시절, 세계 최초로 원자선 연구 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한 논리를 다투는 과학자 염한웅 교수의 어린 시절 꿈은 시인이었다고 한다. 중・고등학생 때는 또래들과 밴드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고 베이스 기타를 치기도 했다. 그는 시와 음악, 미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과학자였다. 자신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도교수에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었던 배짱은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인문학적 감수성에서 나온 것이 아닐는지. 소신을 꺾지 않아 시련을 겪었던 젊은 시절의 경험이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자적인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데 큰 자산이 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 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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