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주연 최우혁

괴물 같은 신인이 나타났다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프랑켄슈타인〉이 지난해 11월 26일, 재연을 시작했다.
2월 말까지 이어지는 이번 공연은 초연의 성공에 기대지 않고 작품을 재정비했다.
이를 위해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을 발탁했다. 무려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배우 최우혁이다.
“1326번 들어오세요.”

문이 열렸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배우를 뽑는 3차 오디션, 1차와 2차를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해 3차는 언감생심이었다. 더구나 3차에서는 춤을 본다고 들었다. 춤은 춰본 일이 없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시험장의 문을 열었다.

“최우혁씨, 춤 좀 보여줄래요?”

결전의 시간이다. 음악이 흐르고, 최우혁은 리듬에 맞춰 권투 동작의 하나인 가드를 올렸다. 그리고 주먹을 쥐고 손을 곧게 뻗기 시작했다. 3분, 영원 같은 시간이 지나고 음악이 끝났다. 정적이 흐르던 시험장에 일순 파도가 치기 시작했다. 심사위원이 한 명씩 차례로 쓰러진 것.

“쟤, 뭐야~?” 하며 다시 서류를 들추는 이들도 있었다. 왕용범 연출이 물었다.

“앙리(〈프랑켄슈타인〉에서 후에 괴물이 되는 의사 역할) 노래 부를 수 있겠어요?”

“해보겠습니다”, 목을 가다듬고 〈너의 꿈속에서〉를 불렀다.

“함께 꿈꿀 수 있다면 / 죽는데도 괜찮아 행복해 / 내가 가진 모든 걸 버리고/ 너의 그 꿈속에서 살 수 있다면 / 그날의 너를 만나지 못했다면 / 다시 사는 내 인생도 없었을 거야”


배우가 되고 싶었던 복서

앙리 역을 맡은 최우혁(왼쪽)과 프랑켄슈타인 역의 유준상.
“2015년 1월 27일이었어요. 매섭던 날씨도 생생히 기억해요. 두터운 패딩점퍼를 입고 시험장에 갔어요. 부담을 넘어서 해탈한 기분이었어요. 이번 오디션은 참가에 의의를 두자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죠. 오디션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한걸음에 다시 뛰어갔죠.”

돌아가서 다시 두 곡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 공연에 ‘앙리 뒤프레’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연락이 왔다. 무려 1000대 1의 경쟁률이었다. ‘나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나다니’, 행여 달아날까 싶어 입 밖으로 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

“가족들이랑 족발을 시켜놓고 축하파티를 하는데요. 다들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나중에라도 바뀌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간절히 원했다가 안 된 경험이 있어서 공연이 오를 때까지는 안심할 수가 없었어요.”

〈프랑켄슈타인〉의 기적이 있기 전까지 그의 삶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언제쯤이면 이 깜깜한 터널에서 나갈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운동을 했어요. 워낙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누나 둘이랑 자라서 저도 좀 여성적이었나 봐요. 아버지가 ‘사내가 그러면 안 된다’면서 태권도장에 보내셨어요. 그 후로 검도도 하고 수영도 하고, 운동이 제 삶이 됐죠. 그러다 권투를 시작했는데, 다른 운동에 비해서 느는 속도가 빨랐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복서로 살았죠.”

그가 다니던 체육관에서는 그를 ‘차세대 유망주’로 키웠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최요삼 선수가 인도네시아 헤리 아몰 선수와 타이틀 매치 경기를 하다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 최요삼 선수는 같은 체육관의 선배이자 스승이자 롤 모델이었다. 세계 챔피언의 죽음은 권투 꿈나무의 꿈도 흔들어 놓았다. 권투만 바라보며 달려오던 최우혁은 훈련 중 부상을 입었다. 회복이 어려웠다.

“이제 뭘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전 운동을 계속해왔으니, 체대에 가서 체육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루는 홍상수 감독님 연출부에서 일하던 사촌 형이 찾아와서 ‘연기 한번 해볼래?’라고 물었어요.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말이 마음에 훅 들어오더라고요.”

처음으로 뮤지컬 공연을 봤다. 〈잭 더 리퍼〉라는 뮤지컬이었다. 체육관과 학교, 집만 오가던 그에게는 ‘신세계’였다. 당시 주연이던 이건명 배우의 다른 공연을 찾아봤다. 곧 그가 출연하는 〈프랑켄슈타인〉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덩치가 좀 있고 키가 커서인지 일 구하는 게 어렵지 않더라고요(웃음). 아르바이트비를 모아서 공연을 보러 갔어요. 〈프랑켄슈타인〉은 네 번 정도 봤어요. 처음엔 이건명 선배님을 보러 갔는데, 나중에는 공연에 반했어요. 모든 배우가 1인 2역을 한다는 것도 놀라웠고요. 다른 배우들이 하는 것도 너무 보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그 공연의 무대에 그가 서게 됐다. 〈프랑켄슈타인〉 프로그램 안내책자에는 배우의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숱한 작품의 리스트가 적혀 있는 유준상・한지상・박은태・서지영・안시하 등을 지나 최우혁의 소개 글은 딱 한 줄이다. ‘뮤지컬 데뷔’

“저에게는 주연이 처음일 뿐 아니라 극장으로 출퇴근하는 것도, 연습장에서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 것도 다 처음이에요. 같이 호흡하는 배우들이 제가 객석에서 봤던 그분들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죠.”


떨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도록


그가 맡은 앙리 뒤프레에는 한지상・박은태 배우가 캐스팅됐다. 박은태는 2014년 〈프랑켄슈타인〉 초연 당시 이 작품으로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한지상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유다에 이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역을 맡으며 ‘결핍이 있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도 벅찬 배우들이다.

“선배들이 격려를 해주셨어요. 관객들은 ‘네가 우리보다 잘하는지’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최우혁이 해석한 앙리와 괴물을 보러 오는 거라고요. 어차피 그분들만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럼에도 무대 뒤에서는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3시간의 라이브 무대. 왕용범 연출은 그에게 말했다. “네가 무대에 서 있는 시간만큼은 네 콘서트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쏟아부어라.”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무대에 올랐다.

“차라리 괴물이 된 뒤에 격투신이나 외로움은 오히려 표현하기가 수월했어요. 오히려 1막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친구인 앙리 뒤프레의 모습을 표현하는 게 더 어려웠죠. 특히 빅터에게 ‘술 한잔하고 잊자’면서 춤을 권할 때는 정말 혼자 벌거벗고 서 있는 기분이에요.”

객석에서 그의 공연을 본 후기는 다르다.

실제로 그는 무대에서 주눅들지 않는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기에도 밀리지 않는다. ‘저 배우가 신인이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련하다.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이 성공해 침대에서 깨어나는 괴물을 연기할 때는 운동으로 단련된 그의 근육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게 보일 정도다. 사실 첫 무대 때는 모두가 걱정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막상 무대에 오르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눈물을 흘린 건 그가 아니라 동료 배우들이었다.

“첫 공연 마치고 전동석 선배가 저를 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라고요. 전 어안이 벙벙해서 ‘이게 뭔가’ 싶었는데, 연출님을 보니까 비로소 눈물이 났어요. 왕 연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난 네가 잘할 줄 알고 있었어’ 그 말을 듣는데 왈칵 쏟아졌어요.”

공연은 초연도 중요하지만 재연은 더 중요하다. 공연의 생명력이 여기에서 결정난다. 왕용범 연출의 부담은 재연이라고 가볍지 않았다. 거기에 검증되지 않은 신인을 무대에 올리는 일이 그에게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다. 그럼에도 그는 모험을 했고, 관객과 평단은 “괴물 같은 신인이 나타났다”는 말로 화답했다.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있어요. 이번 공연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다 쏟아붓고 싶어요. 아무 후회가 남지 않도록요.”
  • 2016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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