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파리와 밀라노의 런웨이 장악한 최소라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한국 모델

2년 전, 모델 최소라는 소속사의 임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소라야, 해외 진출하고 싶다고 했지? 루이비통의 캐스팅(오디션) 하러 갈래?” 당황한 그의 입에선 “왜요?”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야 “언제죠? 어떻게 준비할까요?”라고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준비고 뭐고 없었다. 캐스팅은 나흘 뒤였으니까. 최소라는 2012년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라는 모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2년도 채 지나기 전에 루이비통 크루즈 컬렉션으로 파리에서 데뷔했다.

사진제공 : YG케이플러스
백지 같은 얼굴이 매력

모델 최소라가 런웨이에서 낭창낭창하게 걸을 때마다 동그랗게 툭 튀어나온 어깨뼈가 흔들렸다. 하늘거리는 천 조각을 툭 걸친 하얀 갈대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2015년 9~10월에 열린 파리와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최소라는 돌체앤가바나, 마르니, 에트로, 미쏘니, 셀린, 프라다 등 24개의 쇼에 섰다. 해외 패션위크 메인쇼에 이렇게 많이 선 한국 모델의 전례가 없다. 패션위크가 끝나고 뉴욕에 머무르면서 계속 활동을 하는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 워낙 쇼에 많이 섰지만 그는 “첫 해외 캐스팅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영어를 말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는 캐스팅 때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인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에게 “아임 낫 스피킹 잉글리시”라고 말하고 무작정 걷기만 했다.

“아무 준비 없이 파리에 도착했을 때나 루이비통에 갔을 때도 떨리지 않았어요. 한참을 기다려서 대기실에서 워킹을 했는데 절 게스키에르가 있는 방에 데려갔어요. 저한테 ‘남자처럼 걸어보라’고 시켰는데, 전 못 알아듣고 무작정 걷기만 했죠. 나중에 결국 한국인 직원이 와서 통역을 해준 다음에 남자처럼 걸어봤더니 게스키에르가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어요. 옷을 입어보라길래 두 벌 입어봤는데, 다 저한테 커서 안 어울리는 거예요. 서양 모델은 말라도 뼈가 저보다 크거든요.


세 번째 옷을 입고 나오자 사람들이 ‘너무 예쁘다’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좀 작은 옷이었나 봐요. 지금껏 다른 모델들이 입었을 때 안 어울려서 처치가 곤란한 옷이었대요.”

디자이너들은 수퍼모델에게 옷을 입히고 싶어 하고 사람들은 그들이 입은 옷을 갖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건 옷 자체가 아니라 옷이 걸쳐진 몸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보여지기에 가장 완벽한 몸을 갖고 있단 얘기다. 하지만 그는 “내 몸엔 단점이 많다”고 했다.

“서양인 모델보다 종아리도 짧은데다 조금 휘었고, 골반도 작아요. 그렇다고 다른 동양인 모델처럼 쭉 찢어진 눈에 높은 광대뼈, 각진 턱뼈를 갖고 있지도 않아요. 그런데 다른 모델들은 체구가 작고 아무 화장이나 어울리는, 백지 같은 얼굴을 가진 저를 부러워해요. 이렇게 그리면 이런 대로, 저렇게 그리면 저런 대로, 디자이너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얼굴인가 봐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는 한예슬이에요.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거든요.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걸 사랑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그들과 다르게 생긴 제가 무대에 설 수 있나 봐요.”


데뷔 이후 첫 시즌이랄 수 있는 지난 2014년 그는 뉴욕·밀라노 패션위크에서 캘빈 클라인, 3.1필립림, 알렉산더 왕, 프로엔자슐러, 펜디 등의 런웨이에 올랐다. 캘빈 클라인 메인쇼 최초의 동양인 모델이었고, 모델즈닷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인모델 톱10으로도 뽑혔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에서 패션위크에 서지 못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그때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그로 인해 오히려 강해졌다”고 했다.

최소라에 따르면 “두 번째 시즌이야말로 톱클래스 모델로 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기회를 날리고 세 번째 시즌을 맞으면서 “나를 안 쓰면 후회하도록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살을 뺐다. 아침에 일어나면 차 한 잔 마시고 하루 종일 캐스팅을 다니고, 집에 돌아오면서 차 한 잔 마시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최소라는 파리와 밀라노의 런웨이를 장악할 수 있었다. 그는 “원래 고기를 잘 먹는 ‘육식주의자’이고, 맵고, 짜고, 단 걸 잘 먹는다. 패션쇼 백스테이지에 가면 샐러드, 샌드위치부터 고기까지 먹을 게 준비돼 있다. 딱 하나만 집어먹을까 고민한 적도 많다. 그럴 때면 한 조각에 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잡았다”고 했다. “몸만 살아 있지 정신은 죽어 있었어요.”


최소라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독하죠?”란 질문이 불쑥 입에서 나왔다. 그는 몇 초간 뜸을 들이더니 “맞다, 독한 것 같다”고 했다.

“첫 시즌 때 장염에 걸린 채 알렉산더 왕 쇼에 갔어요. 계속 토하고 아파서 죽을 것 같았죠. 스태프가 와서 ‘괜찮아?’라고 물었는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쳐다보면서 ‘아주 괜찮다’고 했어요. 그때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미를 보이면 돌려보내요. 그 스태프는 제 건강이 아니라 제가 무대에서 토해서 쇼를 망칠까 봐 걱정을 했던 거예요. 저를 돌려보내도 그 빈자리를 채울 모델은 많거든요. 사람들은 모델이란 원래 엄청 말랐고, 쇼에 한번 서고 나오면 되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죠?

이 냉정한 세계에서는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저처럼 살 빼지 마세요”


런웨이에 선 최소라의 모습을 보고 여자들은 그의 몸무게를, 그가 어떻게 다이어트를 했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들은 최소라가 “말라서 부럽다”고 했다. 최소라는 팬들이 보내는 질문을 보면서 여자들이 다이어트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모든 걸 터놓고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패션위크가 끝나고 최소라는 SNS에 긴 글을 올렸다.


179cm에 47kg(참고로 키 174cm 여자의 경우 표준체중은 66.6kg 정도). 키와 몸무게를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그 글은 “저처럼 빼지 마세요”로 끝을 맺는다. 그는 한 달간 차와 물만 마시면서 살뿐만 아니라 건강도 잃었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건조해졌으며 입안 곳곳이 헐었다. 면역력이 약해진 탓이다. 패션쇼 기간에만 세 번 쓰러졌다. 그는 “쇼가 다 끝난 뒤에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는데, 몸에서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굶었다가 망가진 몸은 원래대로 회복이 되지 않아서 계속 힘들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패션계에서는) 다들 좋아했다. 여긴 현실과 다른 곳이고, 어쩔 수 없는 곳이다”라고 했다. 모델들은 자신의 마른 몸만 보여주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몸을 갖게 됐는지 밝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원래 그렇게 타고났다’거나 ‘운동으로 몸매를 건강하게 유지한다’고 보여지길 바라는 것이다. 환상을 팔아야 하는 패션산업의 단면이다. 최소라가 자신의 몸무게와 단식 경험을 공개한 것은 용감한 행위에 가깝다.


“모든 일이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일을 하느라 먹질 못하는 게 얼마나 웃겨요. 하하. 게다가 말도 잘 안 통하는 도시에서 두꺼운 포트폴리오랑 하이힐 한 켤레 들고 하루 종일 걸어다니고, ‘이게 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캐스팅할 때 오랫동안 기다려야 해요. 그런데 다음 시즌이 되면 또 이렇게 살을 뺄 것 같아요. 미칠 정도로 힘들어도 쇼에 한번 서면 다 잊히거든요. 음악이 나오면 심장이 쿵쾅대다가 큐사인이 들리면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런웨이의 끝에 서는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면서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눈물이 차오르고…. 제가 선 첫 쇼가 대학생 졸업 패션쇼였는데 그때 처음 이걸 느끼고 ‘나 이거 하고 살래’라고 마음 먹었거든요. 동양인 모델을 안 쓰는 디자이너도 아직 많고, 동양인 모델, 그중에서도 한국 모델이 무대에 서는 경우는 아직도 드물어요. 여느 쇼보다도 동양 모델 안 쓰는 디자이너의 쇼에 서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전 더 많은 쇼에 서고 싶어요.”
  • 2016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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