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언니 멘토’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글 : 임현선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무엇이 내 피를 끓게 하는가, 무엇을 할 때 내가 가장 자랑스러운가, 무엇을 할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칠 때까지 할 수 있는가?”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이 인생의 고비마다 자신에게 묻는 말이다. 할까 말까 망설일 때, 그는 일단 시작하고 본다. 가다가 중지해도 간 만큼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행동의 결과는 그의 이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른셋 승진을 앞두고 어릴 때부터 계획했던 세계일주를 떠났고, 마흔둘에 국제 NGO 단체 월드비전에 들어가 긴급구호 팀장으로 세계의 재난 현장에서 일했다. 쉰둘에 유학을 떠나 미국 터프츠대학교 플레처 스쿨에서 인도적 지원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쉰여덟 현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해 공부하고 있다. 연구 논문 주제는 ‘재난 대비를 중심으로 한 인도적 지원과 개발 협력의 연계점’이다. 재난 상황에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려면 현장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례를 연구해 이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절감했기에 선택한 공부였다. 학기 중에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으로, 여름 겨울 방학에는 시리아 난민촌 등 긴급한 구호현장에서 일하며 시의적절하게 도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2007년 세운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에서 24명의 정규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작년에만도 50만 명의 학생을 교육했다. 한비야 교장은 100% 재능 기부로 이 학교에 관여하고 있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가 무한정 들어가는 이 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책의 인세 수입 중 2억원을 기부했어요. 올해 나온 책 《1그램의 용기》 판매 수입도 학교에 기부하고 있어요. 제 책을 사는 분은 세계시민학교에 기부하는 셈입니다. 지금 세계는 지구촌이 아니에요. 저는 유리로 된 지구집이라고 불러요. 지구 가족의 어려움을 함께 생각하고 작은 것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세계 시민으로 만드는 게 우리 학교의 목표예요. 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세계 시민으로 만들고 싶어요(웃음).”


케냐에서 맞은 ‘불화살’


한비야 교장은 매해 수없이 많은 특강을 하고 있지만 강의의 핵심은 늘 같다.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그에게도 15년 전 가슴을 뛰게 한 사건이 있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만난 의사에게서 큰 자극을 받은 적이 있어요. 끔찍한 피부병 환자로 가득 찬 병원에서 한 의사가 고름범벅이 되어 일하고 있었어요. 그는 케냐에서 무척 유명한 사람이었어요. 대통령도 줄을 서야 만날 수 있을 정도였죠. 나중에 그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어요.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어요. ‘무엇보다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죠’라고 하더군요. 불화살을 맞은 기분이었어요.”

한 교장은 그 후 ‘내가 케냐 의사처럼 말을 할 수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세계 각지의 재난 현장을 돌아다닐 힘을 얻었다. 긴급구호 현장은 가시밭길이었다. 지뢰밭에서 목숨을 걸고 주민들을 도왔고, 쓰나미와 지진으로 수십만 명이 죽은 현장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펼쳤다. 수많은 시신을 매일 보게 되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멈출 수 없었다. 지진 현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여진이다. 발밑이 꿈틀 움직일 때 그는 함께 일하고 있는 팀원, 전문가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여권부터 (주머니에) 챙겨 넣으세요”라고. 불상사가 일어나 갑자기 죽었을 때 신원파악을 하기 위해서다.

“신분증이 없이 시체가 발견되면 신원을 파악하느라 DNA 검사도 해야 하고, 재난을 수습하는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하거든요. 재난 현장에서는 꼭 신분증을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해요.”

매번 목숨을 걸고 온 힘을 바쳐 일하는 긴급구호지만 현장은 늘 한비야 교장의 가슴을 뛰게 하고 그의 피를 끓게 한다. 현장을 떠날 수 없는 이유다.

그는 2012년부터 이화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강의는 오전 8시에 시작한다. 그런데도 매 학기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능력이 정말 대단해요. 실력이 우리 기성세대보다 월등해요. 만약 제가 지금 월드비전에 지원했다면 탈락했을 거예요(웃음).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데도 대기업,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장에만 수만 명씩 몰리는 현실이 안타깝죠. 이런 청년들이 저에게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큰 그림을 먼저 그려보라고. 부모님의 꿈, 선생님의 꿈, 사회가 정해놓은 꿈이 아니라, 자기 꿈이 뭔지 생각해보라고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신나면서 능력의 최대치가 발휘되는지. 어떤 세상을 살고 싶은지가 먼저 나와야죠. 세계지도 그리기로 비유하자면 우선 대륙을 그려놓아야 그 대륙 안의 나라, 그 나라 안의 도시, 그 도시 안의 동네, 그 동네 안의 골목길 등으로 생각이 구체화되는 거죠.

큰 그림 없이 동네 골목길을 먼저 보는 건 너무 위험해요 한 번만 막다른 골목을 만나면 끝장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요.”

한비야 교장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수많은 고민이 담긴 메일을 받는다. “내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고민도 있고, “유엔사무총장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구체적인 질문도 있다. 그들에게 한 교장이 권하는 해결 방법은 일기 쓰기다. 지금 현재하고 있는 고민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적으며 생각하는 습관을 키우라는 것이다. 단, 일기는 종이에 연필로 직접 써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일기 쓰기는 생각의 뿌리를 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하루 24시간 중 15분만 컴퓨터, 스마트폰 모두 끄고 자신의 마음에 집중해보는 거예요. 처음이 힘들죠. 체력단련처럼 생각근육도 훈련과 연습이 중요해요. 그다음으로 권하는 건 반나절이든 반년이든 혼자 여행하는 거예요. 관건은 혼자서! 혼자 하는 여행이야말로 자신의 민낯과 만나는 의식이랍니다.”


즐겁게 자유롭게 기왕이면 남을 도우면서


한비야 교장은 지금까지 모두 9권의 책을 썼다.

이 가운데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은 200만 권 넘게 팔렸고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는 100만 권, 《중국견문록》 《그건 사랑이었네》 등도 수십만 권이 팔렸다. 2009년에는 ‘대학생이 존경하는 인물’ 1위에 올랐으며, 2014년에는 ‘차세대 리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성공이요? 저는 아직 과정에 있어요. 저에게 성공의 개념은 즐겁고 자유롭게 기왕이면 남을 도우면서 사는 거예요. 남을 돕는 과정에서 선한 영향을 주고 싶어요. 나의 성공이 다른 사람의 성공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죠.”

당당해 보이는 그에게도 가슴 아팠던 실패의 경험이 있었다.

“무진장 많죠.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오래 방황했어요. 또래보다 6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6년간 고졸 학력으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말할 수 없는 설움도 겪었어요. 야구에서 4할 타자는 무척 드물잖아요? 10개 공 가운데 4개만 쳐도 성공한 거죠.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몇 년 뒤면 환갑인 나이지만 한비야라는 이름에는 아직도 선배님 혹은 선생님보다는 언니나 누나란 단어가 잘 어울린다. 길에서 만나는 20대들도 한비야 교장을 보면 자연스럽게 “비야 누나” “비야 언니”라고 부른단다.

이 말을 하며 한 교장은 활짝 웃었다.

“하하하. 제가 그 친구들처럼 아직 성장 중이라서 그럴 거예요. 20~30대와 똑같이 여전히 버겁고 힘들고 어쩔 줄 몰라 두리번거리죠. 솔직히 지금 공부도 힘들고요. 구호현장에서도 무지 힘들어요. 그런데 이렇게 힘들 때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100세까지 산다는데 저는 겨우 절반 정도 산 거잖아요? 성장하고 성숙할 시간은 얼마든지 남았다고 생각해요.”
  •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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