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전문 변호사 김세진

“난민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도우면서 매일 제가 존중받고 있음을 깨달아요”

아일란 쿠르디(Alan Kurdi).
지난 9월 2일 터키 해변에서 잠든 듯 발견된 시리아의 세 살배기 난민은 우리에게 ‘난민과 인권’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는 깊은 연민 속에서 ‘한국 속의 난민’을 보았다. 2015년 ●난민인정심사인정률 0.16%. 쉽게 열리지 않는 한국의 문을 두드리는 난민과 그들을 돕는 난민 전문 변호사들이 바로 우리 옆에 있었다. 김세진 변호사(38). 넓지 않은 사무실에서 동료와 책상을 공유하며 난민인정행정소송을 담당한 지 3년, 매일 새롭게 배우고, 조금씩 성장하며, 더 좋은 세상 만들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자부심은 그에게 열정을 불어넣는 원동력이다.
난민협약, 인권존중 위한 국제사회의 약속

1992년 한국은 유엔난민협약에 가입했다. 2013년, 협약 가입 21년 만에 난민법을 제정했고, 같은 해 유엔난민기구(UNHCR) 집행이사회 특별회의 의장국이 되었다. 1994년 난민신청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총 1만1172명이 난민신청을 했고, 그중 496명이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2015년 현재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0.9%, 유엔난민협약국 평균 인정률은 38%다.

‘1만1172 vs 496’. 지난 21년의 통계는 한국에서 난민 변호사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현실과의 싸움인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2013년, 변호사가 되자마자 김 변호사가 맡은 첫 소송의 결과는 ‘역시’ 패소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선배 변호사가 진행하는 소송에 공동 소송대리로 참여한 것이지만, 담당 변호사로서 그는 난민신청자에게 직접 소송결과를 설명해야 했다.

정치적 난민신청자 A씨는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고국 콩고로 돌아가 꼼짝없이 징역 10년을 살아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3심까지 이어진 재판 결과는 ‘인정불가’였고, A씨 가족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김 변호사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A씨의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떡하죠?”라는 간절한 질문. 김 변호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곧 날카로운 자책의 말들이 그의 심장을 헤집기 시작했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들었어요.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실력도 없는 나 때문에 결과가 이렇게 되었다’는 자책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프게 밀려오더라고요.”

그때였다. A씨가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It’s not your fault(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희망을 거부당한 난민신청자에게 오히려 위로를 받고 돌아온 그날 이후, 김 변호사는 꽤 오랫동안 깊은 패배감 속에서 남몰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2015년 상반기 국내 난민신청자 1265명 중 법무부 심사를 통한 난민인정은 총 11명. 이 중 ‘가족결합(난민가족 인정)’을 제외하면 단 2명, 겨우 0.16%에 불과하다. 이처럼 심사를 통한 난민인정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많은 난민신청자들이 행정소송을 선택하지만, 2014년 94건의 소송 중 단 4건이 승소했고, 2015년 상반기에는 단 한 건도 승소하지 못했다.

“이는 정부가 난민을 ‘인권’이 아닌, ‘출입국관리’의 관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UN은 난민인정 기준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인종, 국가, 민족, 종교, 정치, 그리고 특정사회집단 구성원이라는 5가지 사유와 고국의 실질적 박해 위험을 판단한다. 문제는 ‘증거’다. 대부분 급박한 상황에서 탈출하는 난민은 증거는 물론, 여권조차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때문에 난민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가 되는데, 위험이라는 ‘팩트’를 ‘정량화’하기란 쉽지 않다. 바로 여기에 심사하는 정부의 ‘관점’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A씨가 패소한 이유도 ‘(정치적 사유가 명시된) 콩고 법정의 판결문이 진짜인지 믿을 수 없다’는 정부의 부정적 입장이 재판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난민협약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생존을 위협받는 가장 약한 사람들의 인권, 바로 살 권리를 보호하자는 국제사회의 약속입니다.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청하는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사회에서 과연 우리의 인권이 존중받을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업무는 ‘잘 듣는 것’


그는 사춘기 소녀시절 일찌감치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 등장하는 변호사 애티커스 핀처는 그의 우상이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변호사의 꿈은 변하지 않았다. 졸업 후 본격적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했고, 오랜 시간 공부로 지쳐갈 쯤 로스쿨에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그에게 변호사란 그저 ‘좋은 전문직’일 뿐이었다. 하지만 법을 공부하며 잠시 경험했던 ‘서울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상담봉사는 그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주로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체불을 상담했는데, 저희가 고용주에게 전화하면 임금을 바로 주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법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던 거죠.”

누구보다 법적 도움이 필요한 이주민들이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의 열정은 반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 즈음 대학시절 교회에서 만났던 또래의 필리핀 여성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서울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그 친구는 돈을 벌어 돌아가면 변호사 공부를 하겠다고 했어요. 둘 다 꿈이 같다는 공통점 때문에 친해졌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겼어요. 공장 사장님께 여쭤보니 미등록체류자 단속에 걸렸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후,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너무 무섭다”는 말과 함께 다시 근황을 전하겠노라 약속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흔히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 미등록체류자는 보호소를 거쳐 송환되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당시 제가 법을 알았다면 구금 절차에 문제를 제기하고, ‘보호일시해제청구’라도 했을 텐데, 그땐 아무것도 몰랐어요.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죠.”

로스쿨 2학년이 되었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공익’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공익법센터 어필에서 인턴과 실무수습을 마쳤고, 변호사가 된 후 본격적으로 우리 안의 난민들을 만났다. 난민신청자들이 공항 송환대기실에서 몇 개월씩 햄버거와 콜라로 연명하고, 보호라는 이름으로 구금되는 현실에 자주 분노하지만, 동시에 ‘삶’에 대한 그들의 뜨거운 의지에 감동을 받으며 자신의 일에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그가 말하는 난민 변호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잘 듣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도 ‘당연히’ 정보 수집을 위한 면담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증거를 달라며 다그치기도 하고, 요점을 벗어난 얘기에 답답함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난민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어요. 고마워요”라고. 그는 순간 울컥했다.

“제가 뭐라고… 잠시 생각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그들을 마음으로 이해하지 않고는 좋은 변호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요.”

그 작은 사건(?) 이후 그는 난민들과 대화를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다. 아프리카 난민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싶어 불어를 배우고, 그들의 토속문화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다. 오로지 ‘나의 삶’만 생각하던 자신이 어느새 타인과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는 무척 만족스럽다.

“난민 변호사가 된 후 저는 인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우리 사회에서 난민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도우면서 매일 저 자신이 존중받는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난민 변호사 3년 차, 수입이 로스쿨 동기들 연봉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상관없다.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에 행복하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월급까지 받으니 주어진 기회가 고맙고 소중할 뿐이다.

● 난민인정심사인정률 : 소송을 통하지 않고 법무부 심사만으로 난민으로 인정받는 비율.
  •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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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아라땅콩멜롱멜롱   ( 2018-05-21 ) 찬성 : 16 반대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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