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구병모

소설은 의심이다

공모제를 폐지하고 50인 추천인단, 독자투표를 도입해 기존 발표작 중 가려 뽑는 방식으로 바꾼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 제39회 수상작으로 소설가 구병모의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이 선정됐다.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구병모는 잔혹한 현실을 환상이나 동화와 접목하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마니아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 실린 작품들에서도 답답한 현실과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만나고 있다. 소설집에 실린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에는 고층빌딩을 맨손으로 오르는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의 어머니는 남자가 아기 때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오작동으로 추락사했는데, 어쩐 일인지 남자는 어릴 때부터 건물을 기어오른다. 건물에서 떨어져 뇌손상에 다리를 저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그는 포기할 줄 몰랐다. 45층에 도전하는 순간 남자의 몸은 현수막에 휘감겨 날아가고, 어디에서도 남자의 자취를 찾을 수 없다. 비루한 현실에 붙잡혀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옛이야기 속의 바보 셋째나 미친 막내가 그랬듯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나 무리수에 우리 대신 자신을 인신공양하며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의 풍경은 어떠했는지’ 궁금해한다.

〈식우(蝕雨)〉는 사람의 몸, 자동차, 건물까지 녹이는 비가 내리는 한 도시를 그린다. 사람들은 피가 흐르고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이 도시에서 도망치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루고, 옆 도시는 그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친다. 〈덩굴손증후군〉에는 대학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다 일자리를 잃게 된 아버지, 갑상선암으로 김밥 마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게 된 어머니, 학자금 대출로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 고객상담실에 계약직으로 입사했지만 인력감축으로 그곳을 나와야 하는 딸이 등장한다. 사방이 꽉 막힌 답답한 현실이다. 그때 사람들이 하나 둘 초록색 덩굴식물로 변해간다. 물렛가락에 손을 찔린 공주가 깊은 잠에 빠지자 성안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 무성히 자란 덩굴장미가 고성을 뒤덮는다는 옛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백마 탄 왕자가 공주를 구하기 위해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올해 봄 서울에서 경남 진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작가를 진주에서 만났다. 남편 직장 때문에 진주로 내려온 작가는 초등학생 아들을 혼자 집에 둘 수 없어 되도록 외출을 삼간다고 했다.


두려움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39년 역사의 유서 깊은 상을 받게 되어 기쁘면서도 두려움을 느낍니다. 선정 방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상의 수상자가 되면 참 의미 있겠다’ 생각했지만, 막상 제가 주인공이 될지는 몰랐거든요. 이 두려움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소설가가 되겠다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 때부터였다. 결핍에서 비롯된 상상이 이야기 짓기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부터 문학상에 응모하기 시작했고, 경희대 국문과 졸업 후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면서도 창작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응모와 탈락을 반복하던 그를 작가로 만들어준 《위저드 베이커리》는 2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상처를 가진데다 계모로부터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아버지한테도 외면당하는 소년.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동네 빵집으로 도망간 소년은 오븐 속 마법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마법사가 운영하는 빵집이었던 것이다. 유아 성폭행이 등장하는데다 현실을 너무 잔혹하게 묘사해 청소년소설로는 맞지 않다는 비판과 기존 틀을 깨는 색다른 형식이라는 찬사를 함께 받은 작품이다.

“청소년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청소년소설의 전형을 깨고 싶었어요.”

그는 사람이나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데서 창작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문학은 현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만을 제기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가, 사회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형상화해온 게 제 창작 과정이었죠. 그저 총체적 난국을 보여줄 뿐,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문학이 대안을 제시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니까요. 인간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믿음을 갖지 않으려 해요.”

2009년 이후 《아가미》 《피그말리온 아이들》 《방주로 오세요》 《파과》 등 장편소설 다섯 편과 소설집 세 권을 발표하면서 그는 줄곧 어둡고 답답하고 잔혹한 세상을 세밀한 묘사로 실감나게 그려냈다. 바로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현실과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천연덕스럽게 섞여 있는 게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현실 같지 않은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나누는 게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 소설은 알고 싶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을 아우르는 세상 모든 타자들의 이야기, 내가 돌아보지 않는다 해도 그 존재마저 없는 셈치고 지워버릴 수 없는 작고 아프고 못나고 덜 떨어진다고 일컬어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글은 요즘 보기 드문 만연체다. 쉽게 읽히는 짧고 군더더기 없는 글이 좋은 문장이라는 가독성의 신화에도 그는 저항한다.

“모두가 좋다고 해서 내게도 좋은 것일까요? 문학은 독자를 빠른 속도로 목적지까지 데려가는 고속열차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천천히 창밖 풍경을 보면서 가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물론 작품 성격에 따라 문장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망을 통해 현실을 직시


이번 수상작인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은 소설집에 담긴 단편에서 따온 제목이 아니다.

“내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나의 적이며, 일상이 재난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런 총체적 난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 ‘나만은 아니기를’ 아닐까요? 나만은 그 재난에서 비껴나고 싶다는 바람, 혹은 나만 당하는 게 아니라는 안도일 수도 있지요. 아니면 이웃의 재난을 나만은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게 담겼을 수도 있고요.”

소설집에 실린 〈이창(裏窓)〉에는 이웃이 아이를 폭행하는 것 같은 장면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는 이웃의 말에 경찰은 물러나고, 신고한 여성은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만 몰릴 뿐이었다. 얼마 후 아이는 갑자기 사망하고, 그 엄마는 ‘아이가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부딪쳤다’고 진술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소설은 아무 답도 주지 않는다. 이웃 아이의 상황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은 여성을 긍정적으로만 그리지도 않았다. ‘나는 평범한 주부와는 다르다’는 특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얄미운 여성으로 그리기조차 한다. 선과 악을 쉽게 나눌 수 없다며 사람에게 희망을 걸지 않으려는 작가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아무 희망도 주지 않으려는 그의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모든 것을 파괴하는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식우〉나 사람들이 식물로 변해 굳어버리는 〈덩굴손증후군〉은 지구 종말의 분위기까지 느끼게 한다.

“데뷔작부터 제 작품을 계속 읽어오신 분들은 ‘꿈도 희망도 없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희망은 사람을 앞으로 나가게 하지만, 절망은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지요.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있다면 절망을 들여다보는 작가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언젠가 제 작품에도 희망이 조금씩 새어나올 때가 있겠지요.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제 작품을 읽고도 그 안에서 자그마한 따뜻함, 희망을 찾아내 양식으로 삼는 독자들도 있어요. 제가 가진 세계관이 부정적이라고 해서 모두 그렇게 읽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요.”

9월에 출간된 단편집 《빨간구두당》에서 그는 그림형제와 안데르센 동화를 비틀어 차디찬 현실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장편 두 편을 구상해놓았다는 그는 가족들의 일상을 돌보는 일과 창작을 병행하기 위해 밤낮 관계없이 시간 나는 대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한다.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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