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글쓰기 장강명

소설은 노동이다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인터뷰를 위해 홍대입구역 앞 카페꼼마에서 장강명(40) 작가를 만났다. 연이은 인터뷰로 오후 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는 작가로 전업한 후 ‘하루 8시간, 연간 2200시간 글쓰기’ 원칙을 지켜왔다. ‘8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날 보충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며칠 뒤 그의 블로그에 “오늘은 11시간 글쓰기에 도전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1978년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유지·보수자의 운명을 띠고 세상에 났다.
이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 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이들의 임무라는 뜻이다. 이들은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다.”
- 《표백》 p.186


그는 2011년, 동아일보 재직 당시 2030 세대의 연쇄자살 사건을 다룬 《표백》으로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받고 등단했다. 기자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소설쓰기를 이어가 이듬해 연작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을 발표했다.

2013년 9월, 11년 동안 다닌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전향, 1년 동안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글쓰기에 몰두했다. 하루 8시간씩 무서운 속도로 썼다. 그 시간 동안 쓴 장편소설만 다섯 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 마니아를 소재로 쓴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제2수림문학상을 수상했고, 국정원 댓글 사건이 계기가 된 《2세대 댓글부대》(10월 출간 예정)는 제3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최근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지난해 나온 SF스릴러 《호모도미난스》는 최근 한 영화사와 판권 계약을 마쳤고, 《한국이 싫어서》는 출간 석 달 만에 4쇄를 찍고 1만2000부 이상 팔렸다.

인터넷상 소설쓰기에도 거리낌이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문학 사이트인 문장 웹진에 《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를 연재했고, 현재 예스24 블로그에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물 《눈덕서니가 온다》를 연재 중이다. 《목성에선 피가 더 붉어진다》는 쓰는 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은 작품이다. 《눈덕서니가 온다》도 탈고한 다음 연재를 시작했다.

지금은 논픽션 한 편과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스릴러 소설을 동시에 쓰고 있다. 작가로서 무서운 질주다.

자칭 ‘엑셀 마니아’인 그는 엑셀 파일에 모든 걸 기록한다. 글 쓴 시간을 비롯해 작품에 관한 아이디어부터 구체적인 취재 일정과 내용으로 엑셀 시트를 빽빽하게 채웠다. 창작의 비밀이 담긴 작업 노트인 셈이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 쓰고 싶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작년에 비하면 헝그리 정신이 많이 줄었고, 이제는 좀 더 길고 복잡한 작품을 쓰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대답

‘어린 장강명’은 마징가Z와 그랜다이저와 같은 거대 로봇에 반했다. 글을 깨친 후에는 SF(공상과학)소설에 빠졌다. ‘과학상자’와 ‘라디오 키트’를 조립하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연대 공대 재학 시절 PC통신 과학소설동호회에서 활동했고 ‘월간 SF웹진’을 창간해 운영했다. SF소설을 습작하며 작가적 자의식이 싹텄고 《클론프로젝트》라는 장편소설을 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대기업에 입사,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지만 ‘대기업 직원으로 일만 하다 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 1년 만에 사표를 썼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시원에 들어가 언론사 시험을 준비했다. 동아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산업부・정치부를 거치며 11년 동안 기자로 살다 어느 날 ‘이렇게 기사만 쓰다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전업작가가 됐다.

“정치부에 있을 때 기자로서 일을 가장 많이 했는데 매일 자정 넘어 퇴근했어요. 그런데 정치 기사라는 게 글쓰기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잖아요.

‘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죠.”

정치부 기자로 사는 동안 내재된 ‘회색분자’의 정체성이 더욱 또렷해졌다.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사보다 자기 검열 없이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설에 대한 욕망이 강해졌다.

“온갖 갈등이 모이는 국회나 정당을 취재하다 보면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상황이 대부분이었어요. 기사는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정확해야 하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아도 되잖아요. 제 소설의 기조가 뚜렷한 악인이나 정의가 없는 건데 그런 걸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더 소설을 쓰고 싶었죠.”

무엇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 내린 답은 ‘글쓰기’였다.

“저는 신앙도 없고 아이도 없어요. 이상향 같은 것도 믿지 않고요. 종종 허무주의에 빠지곤 하는데 특히 왜 사는지를 생각해봤을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게 저한테는 ‘소설쓰기’였어요.”


하루 8시간, 연간 2200시간의 글쓰기


주중 기상 시간은 오전 6시 27분.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며 글을 쓴다. 부엌 식탁이 작업실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낮잠을 잔다. 저녁 시간이 되기 전에 대략 8시간 글쓰기를 마친다. 이후에는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맥주를 마신다.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대중이랑 호흡하는 작가는 성실하게 회사원처럼 쓰는 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독자 대부분이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회사원일 테니까요. 성실하게 쓰는 태도가 문장에도 아우라를 남길 것 같아요.”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지켜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 《한국이 싫어서》 p.170


연간 2200시간은 한국인 평균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삼았다. 작가로서 생존하겠다는 절박한 심정과 노동자의 감각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딛고 쓰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허구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다. 등단작인 《표백》부터 기자시절 취재한 것을 확장시킨 《열광금지, 에바로드》 《한국이 싫어서》까지 세태 감각이 예리하게 살아 있다.

작가가 된 지금도 기자였을 때처럼 취재를 한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녹취파일을 푼다.

“취재를 기반으로 한 글쓰기는 두 가지 면에서 장점이 있어요. 우선 같은 이야기라도 세부사항이 현실적이면 독자들이 좀 더 몰입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한국 소설이나 영화에서 기자가 등장할 때 세부 묘사가 허술하면 작품에 빠져들기 힘들어요. 그런 식으로 독자를 잃고 싶지 않아요. 두 번째는 취재 단계에서는 품도 많이 들고 성가시기도 하지만 집필 단계에서는 글 쓰는 게 더 쉬워져요. 취재를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많고요.”

글을 쓸 때는 과제를 정해놓고 쓴다.

“이번에는 성장소설을 쓰자, 여성 화자를 주인공으로 써보자, 자신에게 숙제를 내주고 일부러 다양하게 써보고 있어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작가로서 수련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학적 웨이트트레이닝 중인 거죠. 복근도 키우고 이두박근도 키우고. 한 스타일을 고집하면 망할 것 같아요.”

내공을 쌓은 후 쓰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물었다.

“탈북자 문제나 북한 인권 문제와 같은 북한 이야기를 여러 권 쓰고 싶어요. 그리고 정치 이야기, 신문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어요. 제일 써야 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는 다른 인터뷰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는데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직업인으로서 일정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많은 사람이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거나 친구끼리 돌려보는 것도 좋아요. 저한테는 책을 통해 더 많은 독자를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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