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베르비에 뮤직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리사이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이 젊은 연주자에게 훌륭한 명성이 따르기를!”

글 : 오주현 인턴기자(이화여대 졸)  / 사진 : 김선아 

장소협찬 : 야마하홀
‘스위스 베르비에 뮤직 페스티벌’은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까지 열리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축제다. 제1회에 예브게니 키신, 막심 벤게로프 등 세계 정상의 연주자들이 참여한 이래 매년 유명 연주자들과 4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고 있다. 이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리사이틀을 연 피아니스트가 있다. 2014 방돔 프라이즈*에서 우승해 리사이틀의 기회를 얻은 스물일곱 살 청년 선우예권이다.

“전날에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그 전날에는 헝가리의 대표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가 연주한 바로 그곳에서 제가 연주를 한다니 믿어지지 않고 굉장히 떨렸습니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서니 오히려 편안히 피아노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연주가 끝난 후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마지막 무대가 아닌데도 커튼콜이 이어져 세 번씩이나 나가 인사를 했을 정도였다. 앙코르 곡도 두 곡 더 연주했다.

“감동이었죠. 방돔 프라이즈에서 꼭 우승하고 싶었던 이유도 베르비에 뮤직 페스티벌에서 리사이틀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거든요. 우승했을 때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웃음).”


질투심과 승부욕으로 시작한 피아노


선우예권의 연주를 본 작곡가 키스 레이는 “이 젊은 연주자에게 훌륭한 명성이 따르기를, 그리고 누구도 그에게서 이 진솔함과 평정심을 앗아가지 않기를!”이라는 평을 남겼다.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하고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뒤 올해 초 매네스 음대를 졸업한 선우예권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2012 윌리엄 카펠 국제 피아노 콩쿠르, 2013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 2015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 우승 등 국제 콩쿠르 등 우승 타이틀이 7개인 대한민국 유일의 연주자이기도 하다.

콩쿠르 입상까지 따지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보통 콩쿠르 우승자들이 콩쿠르 이후에 국제무대에서 별다른 연주활동을 하지 않는 것과 달리 선우예권은 우승 이후 더 많은 무대를 소화해내고 있다.

지난 8월 29일에는 수원시향과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했고, 9월 12일에는 예술의전당에서 프라임필하모닉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앞으로도 국내 공연은 물론 도쿄에서 일본 필하모닉과의 협연, 러시아 사할린 공연 등 연주 일정이 빼곡하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그래서 더 피아노에 빠져들 수 있었다.

“누나가 두 명이 있는데요. 초등학교 때 누나들이 피아노 배우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났어요(웃음). 그래서 어머니께 말씀드려서 2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지난 2월 일본에서 나고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쳤다.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배우기 시작했지만, 재능은 남달랐다. 당시 원장은 선우예권을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피아노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배우는 악기다.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악기인 피아노가 선우예권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레퍼토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도 좋았지만, 피아노를 쳤을 때 완성되는 아름다운 곡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들보다 잘 치고 싶었습니다.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형이 ‘베토벤 소나타 1번 4악장’을 치는 것을 보고 나도 저걸 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나요. 학원에 있는 피아노 악보를 다 뒤져서 베토벤 악보를 찾아내고 몇 날 며칠 동안 연습했습니다(웃음).”

이런 승부욕은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역할을 했다. 예원중을 거쳐 서울예고에 수석으로 입학한 후 열일곱 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학 생활은 그의 피아노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많이 만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독립적인 성향이라 혼자 있으면 더 잘하거든요.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서 실내악을 많이 한 것이 좋은 경험이었어요. 다른 친구들과 연주하러 다니며 언어도 많이 늘었고 배우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교수이자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아이다 카바피안, 첼리스트 피터 와일리와 함께한 ‘커티스 온 투어’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게 해준 소중한 기회였다. 이 투어는 교수가 실력이 뛰어난 학생을 뽑아 6~7개 도시를 다니며 실내악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이다.

“귀가 새롭게 열린 순간이었어요. 듣는 것도 달라지고 음악의 표현법도 다양해졌습니다. 듀오・트리오・콰르텟・퀸텟으로 연주하면서 같은 멜로디라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유학을 가지 않았다면 음악적으로 멈췄거나 재능이 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아픔을 잊게 하는 선율


선우예권은 전 세계를 돌며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공연이 있을 때면 연주가들은 보통 기획사 측에서 마련해주는 호스트의 집에 머무른다.

“프랑스로 연주를 갔을 때 묵었던 호스트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는데 건강이 많이 안 좋았어요. 하루는 제가 ‘피아노 소리 때문에 시끄럽죠?’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네가 피아노 치는 걸 들으면 아픔을 잊게 되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단다’라고 다정하게 말씀해주셨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살아 계실 때는 메일로 자주 안부를 묻고는 했지요.”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호스트는 메일의 끝에 항상 “젊게 살고, 항상 행복하렴”이라는 문장을 써서 보냈다. 이 문장은 지금도 그에게 격려가 되고 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이 좋아하는 곡이라며 쳐줄 수 있겠느냐고 했던 곡이 있는데요. 돌아가신 뒤 그분을 처음 만났던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의 작은 홀에서 그 곡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리스트의 ‘consolation(위안)’이었어요. 당시 관객들은 몰랐지만, 저에게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선우예권은 독일 고전 작곡가의 곡을 좋아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한 감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그는 슈베르트를 가장 좋아한다.

“슈베르트의 곡은 모든 멜로디가 아름답지만, 그 속에 깊은 우울감과 슬픔이 있습니다. 밝은 장조의 멜로디에 깊이가 있어서 매력적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거든요. 양면적인 매력이 있어요.”

소속사에서 그의 별명은 ‘작은 푸’다. 동글동글한 외모에 선한 인상이 곰돌이 푸를 닮았기 때문이란다. 그런 그가 무대에 올라가면 스태프들은 “방금 전까지 우리와 장난치던 ‘작은 푸’가 맞나”라고 이야기한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평범하고 밝은 스물일곱 살 청년이 연주를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경쾌한 슈베르트의 곡처럼 밝았던 모습 뒤엔 진지한 열정이 가득 차 있었다.

* 방돔 프라이즈 : 1999년 프랑스 출판그룹인 ‘방돔 프레스’가 창설해 3년마다 열리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로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가 인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피아노 콩쿠르’다.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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