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조명회사 ‘라이마스’ 곽계녕 대표

폐업 직전 가업을 새 빛으로 일으키다

글 : 오주현 인턴기자(이화여대 졸)  / 사진 : 김선아 

종로5가 골목에는 조명회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낡은 간판 밑으로 조명들이 가지런히 빛을 밝히고 있다. 그중 한 골목으로 들어서면 하얀색 간판에 검정색 글씨가 세련되게 새겨진 ‘LIMAS’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1973년 창업한 조명회사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제공 : 라이마스
“삼일(SAMIL)이었던 이름을 거꾸로 하면 뿌리는 남되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름을 ‘LIMAS’로 바꾸었습니다. 꼭 ○○조명이라고 ‘조명’이라는 단어를 붙여야만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곽계녕 대표는 5년 전부터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이어받아 라이마스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는 중앙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설계사무소 매스스터디스에서 2년 정도 실무를 하던 건축계의 유능한 인재였다.

“중학교 때 이사를 하며 집 짓는 과정을 보았어요. 뼈대가 올라가면서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고 집이 점차 형태를 갖춰나가는 게 신기했습니다. 건축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죠.”


내가 건축가라면 이 조명을 살까?

기존의 펜던트를 재해석해 디자인한 신제품 ‘펜(PEN)’.
건축과를 졸업하고 매스스터디스에서 일을 하다 보니 꿈이 모호해졌다. 어떤 건축을 하고 싶고, 원하는 건축이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유학을 가야 하나 고민 중일 때 아버지가 삼일조명을 접을 거라고 하셨다.

당시 곽계녕 대표의 아버지인 곽세근 전 대표 사형제는 모두 조명사업에 몸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분씩 차례로 조명사업을 그만두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분이 아버지였다.

“저는 재수도 하지 않고 군대도 바로 제대했어요. 그래서 스물여섯 살에 취직을 할 수 있었고, 2년 동안 사회 경험을 쌓았음에도 스물여덟 살이었어요. 지금이라면 시작하지 못했겠죠. 하지만 당시는 어리니까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자’ 싶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업을 잇는 것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오너 자리를 물려받았다고 하면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을 생각하겠지만 당시 삼일조명은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오히려 곽계녕 대표가 회사를 이어받는 데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조명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며 배운 것들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조명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건축이나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그들이 생각하는 공간을 빨리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내가 건축가라면 이런 조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건축가라면 이 조명을 살까?’라고 자문하며 조명을 만듭니다.”

인천 신진말에 설치되어 있는 ‘신진말 조명’.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심부름으로 샹들리에 알을 하나하나 손으로 끼우던 기억이 있다. 세 박스를 끼우면 아버지가 1000원을 주시곤 했다. 아버지는 항상 바빴다. 어린이날에도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성실하게 일만 하셨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지하에서 조명을 켰다가 끄곤 하셨다.

“조명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어린 눈에도 복지나 환경이 안 좋은 게 보이더라고요. 나는 절대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지금 이렇게 라이마스를 키워가고 있네요(웃음).”

곽 대표가 회사를 이어받으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아날로그였던 회사가 디지털화되었다는 것. 그전까지만 해도 브로슈어 하나 없이 직접 조명을 가지고 찾아가서 홍보를 했다. 곽 대표는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세련된 브로슈어를 만들고 인터넷 사이트를 재정비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버지와 마찰을 빚었다.

“아버지는 이런 일들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본인이 만든 조명을 가지고 나가서 당장 영업을 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경쟁력 있는 조명을 만들고 근무 환경을 바꾸지 않는다면 조명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와 갈등하다 하루지만 가출을 하기도 했다.

“카페로 갔어요. 거기서 아버지에게 보여드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요새 인테리어는 이런 분위기다, 지금 있는 조명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에게 3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죠. 그동안에도, 갈등은 있었지만 6개월 후 ‘에어’를 만들어냈어요.”


아버지가 일군 인프라를 활용하다

라이마스의 베스트셀러인 ‘에어’가 설치되어 있는 방.
라이마스의 대표 조명인 ‘에어’는 미니멀라이스하다. 단순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 조명 덕분에 매출이 6배 정도 올랐다.

“가업을 물려받는건 뼈대가 있는 건물에서 외장재를 떼어내고 다시 붙이는 것 같아서 더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아예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어려운 점도 있어요. 반면 아버지가 그동안 사업을 하시며 만들어놓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죠. 협력업체들은 아버지라는 신용을 보증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저도 반겨주거든요.”

아파트는 분양받을 때 조명이 이미 내장되어 있다. 아파트가 1000세대라면 모두 똑같은 조명 아래 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명 하나만 바꿔도 집안 분위기가 바뀝니다. 신혼집에 검정색 무드등을 두면 카페처럼 분위기가 포근하고 색달라집니다.”


그는 건축 경험을 십분 살려 조명을 디자인한다.

“2011년 여름, 제주도에 있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본사에서 조명 작업을 했습니다. 주요 공간에 사용한 ‘디-펜던트’ 조명이 가장 애착이 가는 디자인이에요. 한창 사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던 시기에 이 작업을 진행했는데, 조명이 건물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온몸이 짜릿했어요. 조명의 맛을 알게 됐습니다.”

라이마스의 슬로건은 ‘Change your light, change your life!’ 조명을 바꾸면 공간이 달라지고 또 다른 삶이 열린다는 뜻이다. 라이마스는 조명 1세대 기업인 아버지의 삼일조명을 바탕으로 트렌드를 읽고 발맞춰가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더해 하나의 새로운 조명 트렌드, 빛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지는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한다.

“사람들에게 국내 조명 브랜드를 물었을 때 바로 ‘라이마스’가 나오는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제품마다 대표 회사가 있잖아요. 조명 하면 ‘라이마스’가 떠오르는 조명의 대명사가 되고 싶어요.”
  • 201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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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최종태   ( 2015-09-06 ) 찬성 : 48 반대 : 55
독창성이 살아남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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