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한 천우희

“〈한공주〉는 불모지에서 맨손으로 이루어낸 영화”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천우희’라는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가 등장한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되곤 했다.
〈마더〉 〈써니〉 〈우아한 거짓말〉 〈카트〉 등에서 스크린에 인장을 찍어왔기 때문이다.
〈한공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를 시네마톡에서 만났다.

사진제공 : 조선일보 DB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 천우희가 처음 무대에 오른 작품이다. 이천의 한 여자고등학교로 전학을 와 연극반에 들었고, 동아리에서 올린 작품이 바로 이 이야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룬 작품이었다. 연극은 위안부의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아니라 ‘해방 이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위안부에서 벗어나 귀향을 앞둔 세 소녀 봉기・금주・순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꼭 10년이 흘렀다. 천우희가 주인공의 친구나 주인공의 동생으로 나오지 않은 영화 〈한공주〉가 개봉했다. 2004년 밀양에서 일어났던 일, 마흔 명이 넘는 남학생이 여자 중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모티프가 됐지만 영화는 ‘사건 이후’에 집중한다. 묵묵히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자 발버둥치는 공주를 따라간다. 이 작은 영화는 부산영화제 CGV 무비콜라주상, 시민평론가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고 도빌 아시아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상, 국제비평가상, 관객상을 받았다. 그리고 청룡영화제는 천우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 않은 배우가 출연했는데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천우희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이 작은 영화의 재상영 열기로 이어졌다. 다시 스크린에 오른 〈한공주〉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마톡 자리에서 천우희를 만났다.

이수진 감독은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천우희의 연기를 좋아했다고 했다. ‘이 녀석 봐라, 똘똘한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물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에게 〈한공주〉를 맡기기까진 고민이 필요했다.


“감독님 사람 보는 눈이 없으시네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느낌이 왔어요. 전 공주가 너무 좋았거든요. ‘이 영화 내가 하겠구나’ 싶었죠. 오디션을 보고 기다리는데 연락이 없더라고요. ‘이상하다? 분명히 내 건데’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감독님이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해오셨을 때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그냥 ‘감독님, 사람 보는 눈이 없으시네요!’라고만 했죠(웃음).”

이수진 감독이 망설인 이유는, 공주 역할을 공주의 나이 또래 배우가 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천우희는 당시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데뷔작이었던 〈신부수업〉(2004)에서 불량학생 깻잎소녀로 등장할 때부터 〈써니〉(2011)의 본드소녀 상미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에서 여고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시 교복을 입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써니〉 마치고 슬럼프가 왔었어요. 1년 동안 다섯 사람도 만나지 않을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죠. 그때 〈한공주〉의 시나리오가 찾아왔어요.”

〈써니〉를 찍고 그는 배우들이 왜 ‘센 역할’을 기피하는지 알았다. 영화 속 인물과 배우를 겹쳐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한공주〉를 선택했다. 슬럼프를 겪으면서 ‘센 이미지를 연기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도 자신의 몫’임을 알았다. 그의 선택은 정면돌파였다.

“〈한공주〉는 불모지에서 맨손으로 이루어낸 영화예요. 연기가 어렵지 않았느냐고 많이 물으시는데 연기의 어려움이 실제 인물에 비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오히려 작품을 보는 누군가에게 상처가 아니기를 바랐어요.”

〈한공주〉의 첫 촬영은 ‘사건’으로 시작했다. 공주의 집, 고장난 선풍기, 끊임없이 열리는 문… 한 관객은 “2014년 본 영화 중에 가장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고 했다. 차분한 시선과 사려 깊은 연출을 선보여 마틴 스콜세지 감독(마라케시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에게 “미장센, 이미지, 사운드, 편집, 배우의 연기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이수진 감독도 이 장면에서만큼은 냉정했다. 이 사건에서 도망가지 않아야 다음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를 포함해서 스태프 모두가 감독님이 왜 이 장면으로 촬영을 시작하셨는지 이해했어요. 촬영하는 내내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였죠.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선택했을 때부터 이건 제가 피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깻잎소녀(〈신부수업〉), 본드소녀(〈써니〉), 소녀가장(〈우아한 거짓말〉), 88만원 세대(〈카트〉)… 〈한공주〉가 아니더라도 그간 그가 맡아온 역할들은 평범함의 언저리에 있는 인물들이다. 굳이 ‘센 역할’이란 표현을 하지 않더라도 그 역할을 맞춤처럼 해내는 그가 궁금했다.

“굉장히 평범하게 자랐어요. 이천에서 나고 자라서 시골 정서가 있고요. 항상 자연이 주변에 있어서 서울에 오면 좀 답답해요. 집에서 동물도 키우고, 엄마랑 냇가에서 가재도 잡으면서 자랐어요.”


천우희의 아버지는 도예가다.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해 어릴 적에는 직접 만든 노래를 딸에게 불러주곤 했다. 천우희가 “저에게 끼가 있다면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창조적이다. 그의 오빠는 끔찍한 ‘동생바보’라 한 번도 그를 못살게 군 적이 없다. 천우희는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자란 탓에 도리어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다고 했다.

“연기를 할 때 ‘이거다’ 싶은 느낌이 왔어요. 이 일을 평생 하겠구나 싶은 느낌이요. 특별히 예쁜 것도, 몸매가 훌륭한 것도 아니지만 분명 나만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천우희는 인물을 연기할 때 감정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이 인물을 통해 이야기해야 할 부분을 정확히 감지하고 그 이상 나가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 〈한공주〉의 경우, 공주의 감정이 폭발하는 게 오히려 작품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더욱 조심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일을 좋아했던 공주는 익숙한 고향을 떠나 친구도 떠나 낯선 도시로 전학 온다. ‘선생님 어머님’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방을 청소하고, 병원을 다니고, 수영을 배운다.

영화의 시점은 계속 변하지만 그 안에서 공주의 수영실력은 조금씩 나아진다. 마침내 스스로 헤엄칠 수 있게 되던 날, 전학 온 학교로 가해자의 학부모들이 찾아온다. 뒤이어 마지막 장면, 한강의 어느 다리 위에 공주의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저 개인 천우희의 입장에서는 공주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느끼기에 공주는 누구보다 삶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에너지가 큰 친구였거든요.”

왜 그렇게 수영을 열심히 하느냐는 은희의 질문에 공주가 말한다. “다시 시작해보고 싶을까봐. 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한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영화제 관계자는 “많은 이들에게 천우희는 고민거리다. 신인상의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주연상의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주연상 때문이 아니더라도 더 이상 그를 ‘중고신인’이라고 부르는 이는 없을 것 같다. 수상 전부터 천우희는 류승룡・이성민과 영화 〈손님〉을, 나홍진 감독과 영화 〈곡성〉을, 한효주・이범수・박신혜・유연석 등과 〈뷰티 인사이드〉를 촬영 중이었다.

“시상식 때도 말씀드렸지만, 저에게 포기하지 말고 이 길을 계속 가라는 의미로 주신 상 같아요. 물론 앞으로 제 작품이나 연기를 보시는 눈이 더 엄격해지실 수도 있고, 실망시키면 어쩌나 걱정도 들지만, 이것 역시 다 제가 겪어야 할 일이죠. 앞으로도 작품을 고를 때 가장 크게 보는 건 시나리오예요. 불편하고 버거운 이야기라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또래 배우들이 교복을 벗고 스타가 되는 동안 교복을 입고 제자리걸음을 해야 했던 한 배우는, 자신의 이름을 건 영화로 우뚝 섰다. 그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준’ 한공주 그리고 천우희에게 주는 조금 늦은 사과인지도 모른다.
  • 201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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