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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산업의 기수들

노력은 누구나 다 한다. 결국은 맛이다.

‘기똥차게?’ 맛있는 토마토 만드는 ‘브랜드 파머’ 그래도팜 원승현 대표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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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팜 원승현 대표는 서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2015년 토마토 농사를 하는 부모님을 따라 고향인 영월로 귀농했다. 원승현 대표가 만든 유기농 대추방울토마토 브랜드 ‘기토’는 ‘맛이 기똥찬’, ‘기가 막히게 맛있는’ 토마토라는 의미로 소비자들의 후기를 바탕으로 만든 이름이다. 원 대표는 토마토의 맛을 알리기 위해 직거래 장터를 찾아가고 토마토 요리를 나눠 먹는 ‘팜 투 테이블’ 행사를 여는 등 6차산업을 이끌며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농부의 고집은 철학이다. 30년 넘게 유기농 재배를 고집해 온 아버지와 아들이 2대에 걸쳐 농작물에 새로운 브랜드를 정립하고 있다. 정성을 다해 키운 농작물은 배신하는 법이 없다는 게 그들의 ‘농사 철학’이다. 정직과 신뢰로 대추방울토마토를 키우는 ‘그래도팜’의 원승현 대표를 만났다.

강원도 영월에서 만난 원승현 대표는 자신을 ‘브랜드 파머’라고 소개했다.

“브랜드 파머는 제가 만든 직업입니다. 브랜더로서 농사를 돕고 있지만, 제 본직업이 농부이기에 뒤에 ‘파머’를 붙였습니다. 농사철에는 농사에 집중하고 저녁에는 브랜드 기획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원승현 대표는 서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2015년 토마토 농사를 하는 부모님을 따라 고향인 영월로 귀농했다. 홍익대를 졸업하고 일류 디자이너를 꿈꾸던 서른 살,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만큼 잘나가던 때다. 농사는 부모님의 일이라 여겼던 그가 생각을 바꾼 건 아버지가 유기농으로 재배한 대추방울토마토를 맛보면서다. 토마토를 좋아하지 않는 그의 입에도 유기농 토마토는 풍미가 남달랐다. 아버지의 토마토에 자신의 능력을 더해 브랜드를 세우면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토마토는 5월과 6월에 생산이 많아요. 부모님 농장은 직거래 비중이 70%인데, 고객들은 토마토를 주문하고도 2주를 기다려야 해요. 시중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데도 부모님이 농사지은 토마토를 기다려서 받는 거죠. 비교 가치가 있다고 보고 브랜드를 만들어 시중 상품과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품의 비교 가치예요. 그걸 모르는 이들은 로고 하나만 만들면 끝나는 줄 알아요. 잘 팔리는 물건은 로고가 없어도 다 팔립니다.”


그래도팜의 토마토가 맛있는 이유는 35년을 유기농 재배로 키워온 아버지 원건희 씨의 뚝심에 있다.

“삼십 년 전만 해도 유기농이라는 말이 없었어요. 농촌에 가면 퇴비 냄새가 심하잖아요. 퇴비는 당연히 냄새나는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썩어서 나는 냄새더군요. 제대로 발효한 퇴비는 냄새가 나지 않아요.”

아버지 원건희 씨는 한국퇴비기술인 연합회에서 일본 농법을 배우고 익혀 직접 퇴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참나무 껍질을 주재료로 쓰는데, 30~40년 동안 각종 양분을 먹고 자란 참나무 껍질을 쓰면 한해살이 볏짚이나 풀 더미보다 탄소율이 높고 영양분이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행히 주변에 참나무도 많았고, 펄프 만드는 공장이 있어 나무껍질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퇴비는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뒤집어서 미생물이 살아 있도록 합니다. 미생물에게 산소를 줘서 활동하도록 하는 거죠. 70도가 적정 온도인데, 퇴비장에 난 구멍이 자연적으로 공기가 순환되게끔 해요. 퇴비가 발효되며 나는 열이 찬 공기를 당겨서 기류가 흐르는 거죠. 퇴비장의 폭이나 모든 면에서 과학적으로 이루어진 설계입니다.”(원건희)


농장의 4분의 1이 퇴비장


9동의 비닐하우스가 있는 5300㎡(1600평) 농장에 퇴비장만 1322㎡(400평) 규모다. 농장의 4분이 1을 퇴비장으로 쓴다는 건데, 얼핏 불필요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연 발효한 퇴비 덕분에 지금의 맛있는 토마토가 자란다고 하니 가치 있는 투자다.

“계산이 빠르고 약은 사람들은 유기농을 못 합니다. 뚝심 있는 사람만이 이룰 수 있죠. 제대로 된 상품이 나올 수 있으려면 최소 10년 정도는 그런 땅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해요. 농토는 식물이 양분을 모두 뽑아 먹기 때문에 관리를 잘 못 하면 점점 나빠지는데, 직접 발효시킨 퇴비를 쓰면서 땅이 점점 좋아지는 걸 느껴요.”(원건희)

아들 원승현 대표가 ‘이 정도 생산품이 나오고 판매가 되면 장인 아니냐’ 물으니 아버지 원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농사를 30년 지으면 오래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1년 농사로 따지면 50회가 전부입니다. 방망이 하나를 깎아도 만 번은 깎아야 장인인 거죠. 아직도 배울 게 많습니다. 그래서 농사는 대를 잇는 게 중요해요. 기술이 전수되어야 하니까.”

결국 농사는 신뢰라는 말이다. 농부로 외길을 걸어온 35년 노하우는 만만치 않은 장인정신이다. 농작물에 대한 기초를 아버지가 세웠다면, 브랜드 가치를 세우는 것은 아들 원 대표의 몫이다.

“농장의 브랜드를 만들려고 내려왔는데, 막상 와보니 토마토 맛 자체가 브랜드더군요. 단순하게 맛있으니까 사 먹는 거지 브랜드의 가치를 보고 사 먹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1차 농산물의 맛이 중요합니다. 맛에 대한 신뢰가 브랜드 가치의 90% 이상인 거죠.”

소비자들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변별력을 가지려면 제일 먼저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토’는 ‘맛이 기가 막힌다’, ‘기똥차게 맛있다’, ‘기다려서 먹는다’ 등 소비자들이 게시판에 남긴 후기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공통으로 들어가는 말 ‘기’를 붙여 이름 지었죠. ‘기토’는 영월에 내려오자마자 만든 브랜드고, 농장 이름인 ‘그래도팜’은 작년에 지었어요. 3년에 걸쳐 우리 농장의 이야기를 풀어냈죠.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 다양하게 해석되고 가변적인 이름입니다.”


직접 소비자를 찾아가다


원 대표는 브랜드를 만들며 부수적인 작업을 했다. 물건을 알리는 것은 좋으나, 변별력 있는 농작물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토마토로 부가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 텐데, 시중 다른 농작물과 똑같이 팔린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들어가는 노력이나 참고 견뎌온 세월에 대한 보상이 안 되는 거죠. 연간 5kg 상자 8000개를 팔지만, 절반이 넘는 돈을 생산 비용에 투자해요. 시중 토마토 가격은 1kg에 4000~8000원인 데 비해 우리는 1만 원에서 판매를 시작해야 해요.

남들이 생각할 때 여유 있는 농사를 짓는다고 하려면 최소한 한 상자에 5만 원은 받아야 하는 거죠. 비용이나 생산 단가 등을 따지면 아직은 부족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 브랜드의 가치는 시중과 비교할 때 1 대 7입니다. 7배 더 비싸게 팔아도 팔려야 한다는 말이죠. 시중가가 1만 원이면 우리는 7만 원을 받아야 해요. 하지만 지금은 엇비슷하게 가도 팔리면 감사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가 농장 일을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농사에 집중해야지 뭐하냐고, 농사 안 짓고 자꾸 돌아다닌다고 주위의 핀잔을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상표 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우선이다.

“노력은 누구나가 다 합니다. 농부들의 노력에 대한 가치와 정성으로 농작물의 가치를 산정한다면 모두가 100점이죠. 프로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맛과 품질이 보장되어야 하지요. 결국은 맛입니다.”


원승현 대표는 직접 소비자를 찾아가기로 했다. 첫 번째 대상은 요리사다.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 팔아 확실하게 농작물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겠다 마음먹었다.

“해외는 감자와 옥수수만 해도 맛이 여러 가지인데, 우리나라는 한 가지 맛이에요. 품종을 떠나서 괜찮은 생산 집단이 없다는 말이죠. 으뜸가는 하나가 있으면 나머지 아홉 개가 따라오려고 노력할 텐데, 우리 농촌에는 0.01도 없어요. 그렇기에 요리사와 음식 관련 교수들처럼 맛을 제대로 평가해줄 수 있는 이들이 입맛이 바뀌어야 누굴 가르치고 알려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도시형 장터인 ‘마르쉐’에 요리사들이 많이 찾는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을 공략했다. 소비자와 요리사를 직접 만나 대화하고 맛보여 주고 싶었다. 농장에 앉아 있으면 전화 주문으로 300만 원어치 팔 걸 그곳에서는 온종일 서서 고작 30만 원어치를 팔았다. 주변에서는 나가봐야 팔지도 못하고 힘만 드는데 뭐하러 나가냐는 목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원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1년 만에 반응이 왔다. 지난해 가을부터 3곳의 유명 레스토랑에 토마토를 납품하게 됐다.


식재료의 제대로 된 향을 느끼게 해야


귀농해서 알게 된 농식품 관련 업계 친구들과 소그룹 모임 ‘밭티’도 만들었다. 정보 교환과 소통을 나누기 위해서다. 지난 6월에는 이들과 함께 농장에서 ‘풀밭 위의 식사’라는 팜 투 테이블 행사도 열었다. 소비자에게 토마토 재배 과정을 보여주고 토마토로 만든 음식을 나눠 먹는 행사다. 일일 식사에 5만 원을 내는데, 30명 정원을 훌쩍 넘어 50명이 모였다. 강원도에서 농사짓는 청년 농부부터 식재료에 관심이 많은 요리사, 관련 업계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 같은 경험을 소재로 원 대표는 6월 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가 개최한 ‘이야기가 있는 농식품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또 지난 10월에는 미래농업지원센터로부터 우수농업경영체로 선정됐다.

“지금 제가 하는 프로젝트는 우리 제품이 잘 팔리지 않아서 단순히 판매 촉진을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식재료의 가치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낮아요. 국내 농산물의 수준과 위치를 사람들이 잘 모르죠. 우리는 제대로 된 식재료의 향을 못 느껴봤어요. 소비자들에게 향미를 깨우쳐줘야지만 나중에 저도 먹고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 대표는 스스로 행운아라고 한다. 상품 가치가 있는 부모님의 농장을 가지고 태어난 셈이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님의 ‘농사 고집’을 이어가고자 한다.

“‘그래도…’는 참고 견딘 세월을 담아낸 말입니다. 부모님은 30여 년간 이 말만 되뇌며 살았을 거예요. 유기농 재배를 할 때 남들이 ‘미친놈’ 소리를 해도 집념으로 이어갔죠. 그런 아버지의 집념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집념은 무형의 것이에요. 주변에 아무리 얘기해도 결국은 자기 고집에 불과하죠. ‘꼰대’ 소리나 듣고요. 하지만 소비자가 그걸 분리하기 시작하면 그땐 ‘철학’으로 완성됩니다.”
  •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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