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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산업의 기수들

“농업도 디자인이다”

농사짓는 신데렐라 천안 병천 가브리엘 오이농장의 낭만농부 ‘오이렐라’ 이기순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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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자연 앞에서 한없이 순수해진다.
자연이 선물한 먹거리를 수확하는 농부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은 겸손이 아닐까. 귀농 5년 차 농부 이병철(59)·이기순(52) 부부. 이들은 자연이 주는 건강한 먹거리를 정직하게 농사지어 세상과 나누고 있다.

[편집자 주]
농업은 1차산업이다. 그런 농업 분야가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되는 지금 6차산업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농업 분야에 최첨단 기술을 융·복합함으로써 환경 문제까지 아우르는 산업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6차산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대안농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1차산업의 대표인 농업이 최첨단 산업화의 선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topclass》는 6차산업을 이끌고 있는 농업 분야의 선도자들을 매달 발굴해 소개한다.
“도대체 그 집 오이가 왜 유명해요? 돈도 못 번다면서.”
“그려유! 돈은 아직이어유~
근디 유명해지긴 했나벼유~.”
“오이 농사. 거의가 거기서 거기입니다.
지깐 오이가 맛있어 봤자 오이 맛이지, 수박 맛입니까?
오이는 오이 맛이 날 때 최고입니다.”

오이렐라 이기순씨 블로그 中



아우내 오이로 유명한 천안 병천의 가브리엘 오이 농장. 한낮의 비닐하우스 안 공기가 어찌나 후끈한지 숨이 턱 막혀 왔다.

“안녕하세요. 낭만농부 오이렐라 이기순입니다.”

경쾌하게 인사하는데 신데렐라도 아니고 ‘오이렐라’가 웬 말인가 싶다.

“오이 농사를 시작할 때 호박 마차를 탄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어요. 오이는 워낙 흔한 작물이잖아요. 상품명을 지을 때 한 번 들으면 잊지 않을 이름이 뭘까 고민하다가 오이렐라를 떠올렸죠. 호박 마차를 탄 신데렐라는 비록 이야기 속에만 있지만 오이렐라는 현실에 있습니다.”

오이렐라는 가브리엘 농장의 상품명이면서도 이기순씨가 SNS에서 애칭으로 사용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독특한 이름이 귀에 쏙 닿는다. 젖은 손을 웃옷에 쓱쓱 닦으며 시원한 오이즙을 내미는 그의 표정이 해맑다. 누르스름한 색깔의 오이즙을 쭉 들이켜니 첫맛은 달콤하고 끝 맛이 향긋했다.

“미인들이 좋아한다는 오이만 100% 넣어 만든 오이즙이에요. 세상에 흔하고 흔한 게 오이라지만 ‘흔하지 않은 오이’가 여기 오이렐라에 있습니다.”


오이렐라가 운영하는 천상의 오이농장

이기순씨는 오이를 활용한 오이말랭이와 오이즙, 오이지는 물론 오이비누와 오이향초 등 다양한 가공품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이병철·이기순씨 부부는 반도체 회사에서 사내 커플로 만나 30여 년을 함께한 부부다. 이들이 귀농하게 된 계기는 등산을 좋아하던 부인 이기순씨가 2011년 암벽 등반 도중 추락해 전신에 타박상을 입으면서다.

병원 생활만 무려 1년. 몸은 피폐하고 허약해져 주변에서는 저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였다.

“직장에 복귀하니 남들보다 일이 많이 뒤처졌어요. 마침 남편도 명예퇴직 압박에 시달리던 때라 과감하게 결심했죠. 남편 고향이 천안 병천이에요. 저는 예산군이고. 친구들 대부분이 여기서 농사짓고 사는데 보니까 잘 살고 여유 있어 보이더군요. 자기 농장도 있고. 무턱대고 ‘갑시다’ 했죠.”

귀농을 결심한 부부는 2012년 겨울, 1000만 원을 들여서 지금의 농장 자리에 컨테이너 집을 지었다. 23㎡(7평) 원룸의 컨테이너와 6611㎡(2000평) 규모의 하우스 10동이 부부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낫 놓고 ‘ㄱ’자만 알았지, 농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시골에 오니 처음엔 모든 게 근사해 보였죠. 흙이 있고 물이 흐르고. 귀농할 때만 해도 꿈에 부풀어서 오이만 심어도 부자가 되는 줄 알았어요. 하하. 농사는 좋은 점이 체력과 의욕만 있다면 죽기 직전까지 할 수 있거든요. 분명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농사도 결국은 현실이더군요.”


귀농 후 맛본 첫 실패

여름 농사로 심은 오이. 이병철씨는 생장이 좋은 박의 뿌리를 오이 줄기에 접목해서 키우는데, 이렇게 하면 병충해가 줄고 발육이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꿈에 부푼 귀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첫해 농사에 머리는 크고 꼬리는 작은 당근 모양의 오이가 나왔다. 오이는 규격이 제대로 나와야 가격을 잘 받는데, 새벽 가락시장에 가서 오이를 내놓으니 경매가가 꼴찌였다. 병천 일대에만 오이 농가가 300여 군데가 넘는데 거기서도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힘들여 수확한 오이의 반은 버렸고, 그마저도 버리기 아까워 오이즙을 만들어 봤지만, 풀 냄새가 심해 돈만 버렸다. 실패가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사를 시작한 지 1개월 반 만에 3개 동의 오이가 이유 없이 죽어버렸다. 수확량은 줄었는데 투자는 계속해야 하고, 결과물이 없으니 그때부터 빚더미에 앉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전기료를 낼 돈이 없어 부부가 컨테이너 방에서 덜덜 떨며 추위를 견뎌야 했다.

“말하자면 중고 비닐하우스를 샀어요. 시설만 노후한 게 아니라 땅도 안 좋았죠. 몇 해에 걸쳐 이미 농사를 지었던 터라 땅이 노쇠했던 거예요. 아무리 좋은 비료를 써도 오이 모양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죠.”

남편 이병철씨의 말에 부인 이기순씨도 거들었다.

“땅은 엄마의 몸과 같아요. 건강한 아이를 낳으려면 엄마의 몸이 건강해야 하죠.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땅에 좋은 씨를 뿌려야 건강한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부부는 땅을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기술을 배우거나 책과 인터넷으로 공부하며 연구했다.

“모두 화학비료를 많이 써서 땅의 질이 안 좋아진 거예요. 염류집적이라고 화학비료의 성분들이 흙에 쌓인 거죠. 농사도 과학이에요. 화학적으로 중화를 시켜주면 다시 농사짓기 좋은 땅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부부는 그때부터 낙엽을 모아서 퇴비로 쓰기 시작했다. 낙엽 밑에 쌓인 부엽토가 식물 생장에 좋다는 연구가 있어 자가 퇴비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주변에서 “싸고 좋은 퇴비가 얼마나 많은데, 농사를 못 지으니 유난을 떤다”고 말했지만 부부는 뚝심 있게 밀고 나아갔다. 손톱 밑이 까맣게 될 때까지 낙엽과 부엽토, 소똥 등을 가져다 뿌려 중성화를 시켜주니 흙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또 책에 나온 연구 결과를 토대로 ‘어액비’를 만들었다. 액비란 동물이나 식물을 물에 담가 세균을 넣고 분해시켜 영양소를 만들어내는 친환경 액체 비료다. 이병철씨는 장이 설 때마다 생선 내장이나 대가리를 모아다가 어액비를 만들었다. 냄새는 아주 고약하지만 질소와 칼슘이 풍부해 오이가 잘 자랐다. 그 덕에 그해 오이 맛이 기가 막혔다. 귀농 3년 만에 부부의 농장에서 제대로 된 오이를 수확한 것이다.

“뭐든지 그 분야에 대해 알려고 하면 시간이 필요해요. 시행착오인 거죠. 귀농할 때 흙과 관련된 책을 읽고 공부를 했지만 귀가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죠. 3년 차까지는 빚을 많이 졌습니다. 정성을 다해 일해도 안 되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정석대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친환경 자연농법으로 재배하는 오이 농가가 우리의 자부심입니다.”


SNS를 통해 판로가 열리다

이기순·이병철 부부
남편이 땅을 연구하는 동안 이기순씨는 SNS를 통해 오이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귀농하면서부터 SNS를 시작했어요. 첫해엔 댓글 달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가 한두 해 지나 농사일지를 올리니 반응이 왔어요. 오이가 짓무른 날엔 ‘오이야, 너도 눈물을 흘리는구나’ 하고, 잡초가 자란 걸 보고는 ‘엄마가 오이만 예뻐하니까 옆집 사는 풀들이 구경 와서 인사 하네’ 하는 식으로 일지를 썼지요. 어려움을 겪고 나니까 시상이 마구 떠오르더군요. 도시 생활하던 까칠한 여자가 시골 와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주변에서 지지도 많이 해줬어요. 실패하지 않기 위해 SNS에 떠드는 것도 있죠. 큰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이렐라 이기순씨의 SNS 팔로어는 현재 5000명이 넘는다. 팔로어가 늘며 주문도 늘었다. 2015년 한 달에 2건 정도이던 주문이 한 해 지나 200건으로 늘더니 올해는 벌써 1000건 이상의 주문이 들어왔다.

“처음 오이를 배송할 때는 실수가 잦았어요. 전날 딴 오이를 다음 날 아침 일찍 배송하는 식이었는데, 욕심에 좋은 오이를 보내려고 저녁에 오이를 딴 거예요. 오이는 낮 12시 이전에 따야 싱싱하다는 걸 몰랐던 거죠. 햇볕을 온종일 받으면 오이도 시들해져요. 그 이후부턴 열 개 하우스에서 직접 먹어보고 제일 맛있는 오이를 낮 12시 이전에 따서 20cm 되는 것들만 포장해서 보냈습니다.”

이기순씨는 귀농을 결심할 때 15년을 내다봤다고 한다. 이제 고작 5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버텨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웃는다. 젊은 날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이 정도의 고생은 참을 수 있다며 부부는 서로를 격려했다.

“7월 8일 16시 폭염주의보 발령. 야속한 자연이다.
불과 며칠 전 집중호우로 나의 속을 뒤집어 놓더니 오늘은 42도까지 수은주에는 빨간불이 켜지고. 아침에는 이토록 싱싱함을 뽐냈는데, 농부는 자연 앞에 그저 힘없는 약자인가?
그래도 잘 이겨낼 거지?”

오이렐라 이기순씨 블로그 中



또 한 번의 실패

이기순·이병철 부부가 오이의 생장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얼추 농부의 품새를 갖춰가던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여름 오이를 심었다. 본래 땅도 쉴 수 있게 봄, 가을에만 작물을 심는 이모작이 일반적인데, 봄 농사가 시원찮아 무리하게 욕심을 낸 게 화근이었다. 오이는 심고 30일이면 따는데, 줄기가 잘 뻗어 나가던 20일 차에 살인적인 더위가 찾아왔다.

“잘 키웠는데, 온도가 40~50도까지 올라가니 줄기 끄트머리가 모두 타버렸어요. 생장점이 그 끝에 있으니 더 자랄 수 없었죠. 너무 뜨거우니까 줄기가 비실비실, 오이가 ‘미라’가 돼서 두세 개 열매를 따고 나면 끝인 거예요. 남편이 그걸 보고 사흘을 울었나 봐요.”

이기순씨 눈에 슬쩍 눈물이 비쳤다. 농사 실패를 경험한 부부는 방향을 잃은 듯했다.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된 탓에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순 없었다.

여름 농사는 실패했지만, 가을 농사를 위해 다시 숨을 골라야 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사이 이기순씨는 인부를 불러 오이 줄기를 다 뽑아 밭을 새로 갈았다.

오이 농사를 망치고 나니 더 이상 오이는 자신이 없었다. 부부는 빈 땅에 주키니호박과 쪽파, 갓, 시금치, 대파 등을 심었다. 작물마다 물을 주는 방법이 달라 시설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공대 출신의 이병철씨가 손수 기술적인 부분을 해결했다.

“오이에 준 영양분은 과잉이었지만 일반 채소는 너무나도 잘 자랐어요. 배추를 심었는데 포기 하나가 한 아름이 넘을 만큼 자랐죠. 200포기를 동생들에게 나눠줬더니 여태 먹어본 배추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해요.”

남편의 노력에 힘입어 이기순씨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만원의 밥상’을 준비했다. 주키니호박 2개와 갓, 쪽파, 대파, 시금치를 한 단씩 상자 하나에 넣어 1만원에 파는 상품이다. ‘산지에서 난 싱싱한 채소를 밥상까지 옮겨드린다’는 말에 도시의 주부들이 크게 호응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호박 대신 시금치를 더 넣는 식으로 만원의 밥상을 꾸렸다.

채소와 함께 채소별 조리법도 넣어 보내주니 대히트였다.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에서 농사를 디자인하다

이기순씨가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에서 ‘디자인농부’ 수업을 함께 듣는 수강생 및 강사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농한기(農閑期)인 겨울은 농부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는 시기다. 이기순씨는 농사에 도움되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2014년 한국벤처농업대학을 다닌 데 이어 올해 초에는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에 등록했다.

“농협창조농업지원센터는 귀농을 결심하고서 5년 동안 받은 교육 중에 가장 획기적이고 신선했어요. 이대엽 센터장을 비롯해 강사진이 몸소 뛰면서 농부를 위해 헌신적으로 애썼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디자인 농부’ 수업입니다. 어떤 작물을 어느 시기에 심어서 상품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농사 전반에 걸친 디자인이죠. 씨 뿌리는 단계부터 수확, 가공까지 실질적인 컨설팅을 해주었어요. 우리 농장에서 난 오이로 만든 오이즙과 오이비누, 오이가루 등은 모두 센터의 도움을 받아서 이룬 결과물입니다.”

‘이야기가 있는 농식품 공모전’에서 귀농 사례를 발표해 장려상을 받는 이기순씨.
최근에는 농산물 인지도를 올리고 숨어 있는 특별한 농업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해 농협이 마련한 ‘이야기가 있는 농식품 공모전’에서 ‘참을 수 없는 흙사랑-눈물 속에 핀 오이꽃’을 발표해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센터가 진행하는 공모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실이다.

그는 “우리의 귀농 실패 스토리가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교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지금은 비록 실패농의 사례가 됐지만, 다만 느리게 갈 뿐 그 끝은 모르는 것”이라 말하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귀농의 실패가 귀농 귀감으로

이병철씨가 생선 대가리와 내장 등을 미생물과 섞어 어액비를 만들고 있다.
부부는 ‘귀농해서 실패한 경험이 어쩌면 오늘을 있게 해준 힘’이라고 말한다. 만약 좋은 땅에서 농사를 시작했다면 연구해볼 기회도 없었을 거고, 오이가 잘 팔렸다면 지금쯤 기고만장해 농사를 우습게 봤을 거란다.

시련을 겪고 농사를 지어 보니 자연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기순씨는 농사 첫해부터 지금까지 경남 산청 성심원, 인천 민들레 국숫집, 서울 동대문 제기동 프란체스코 무료 급식소 등 전국의 12개 노인복지관과 요양원, 노숙자 센터 등에 오이를 기부하고 있다.

“기부를 위해서라기보다 농사를 너무 못 지어서 시작한 일이에요. 맛은 좋은데 모양이 나빠 상품성이 떨어지는 오이가 너무 아까웠어요. 우리가 가진 하우스 10개 동 중에 한 동의 크기가 작아요. 그래서 작은 한 동에서 난 채소도 모두 기부하자고 했죠. 작은 실천과 나눔이 우리에게 큰 감사로 다가옵니다.”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오이를 보낸다지만 수확부터 상자 포장까지 정성이 만만치 않다.

또 때때로 10개 동에서 제일 상품 가치가 있는 오이만 모아서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오이 맛이 좋다는 소문이 퍼져 실질적인 판매로도 이어지게 됐다. 나눔이 새로운 판로를 열어준 셈이다.

“제가 낭만농부 이기순이잖아요. 농사일 하면서 덥고 지치고 힘들어 눈물 날 때 우리끼리 약속을 했어요. 농사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자. 대신 빠르게 노래 부르면 신이 난 거고 천천히 부르면 슬프거나 화가 난 거다. 이렇게요. 음치지만 노래하면서 하니까 주변에서 낭만농부라고 불러줬어요. 농사는 현실이에요. 귀농의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보면 또 다른 행복이 보입니다.

흙이 주는 사랑이죠. 우리의 농사철학은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자’입니다.

올바르게 농사를 지어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고 싶어요. 힘이 닿는 데까지.”

오늘도 낭만농부 오이렐라의 농장에는 동화 같은 꿈이 한 뼘씩 자라고 있다.
  • 2017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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