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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이름은 은희경 ②

나는 왜 일찌감치 삶의 이면을 보려 했나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은희경
서른다섯 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와 장편 소설 《새의 선물》을 비롯해 꾸준히 글을 써왔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 열다섯 번째 소설집인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냈다.
그 작업을 25년째 이어오고 있죠. 2년에 한 번씩은 작품을 냈고요.

“올해 《새의 선물》 100쇄가 나왔어요. 그때는 관습적으로 썼는데 지금은 쓰면 안 되는 용어들도 있어요. ‘앉은뱅이책상’ 같은 것들요. 그런 단어는 바꾸지만 그 당시 제가 품었던 질문들은 여전히 지금도 해야 하는 것들이에요. 마음이 조금 무거웠어요. 이게 좀 좋아졌어야 했는데 여전히 고민하고 있구나.”


이를테면 어떤 질문인가요.

“이름은 뭔가를 규정하는 거잖아요. 저 사람은 여자, 어린애, 노인, 뭐 이렇게 규정해버리면 대상화돼요. 저는 그 사람은 고유의 그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쟤는 내 딸이야, 이런 게 아니라 저 사람이라는 인간, 저 사람의 인생으로 봐야 하는데요. 제가 《새의 선물》을 썼을 때는 1970년대 경제 개발 시기니까 개인의 고유성 같은 건 존중받지 못했을 때죠. 그런데 지금도 그 질문이 해결이 안 되고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을 뿐인 것 같아요. 무엇다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는구나 싶고요.”


그나저나 100쇄라니요.

“저도 기뻐요(웃음). 그게 단기간에 이뤄진 게 아니라 25년에 걸쳐 꾸준히 이어왔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나의 질문이 지금도 유효하구나 싶고요.”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것을 의식할 만큼 성장하자 나는 당황했다. 내가 딛고 선 출발선은 아주 불리한 위치였다. 더구나 그 호의적이지 않은 삶은 내가 빨리 존재의 불리함을 깨닫고 거기에 대비해주기를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차피 호의적이지 않은 내 삶에 집착하면 할수록 상처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그때부터 내 삶을 거리 밖에 두고 미심쩍은 눈으로 그 이면을 엿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삶의 비밀에 빨리 다가가게 되었다.”
-
《새의 선물》 중


그리고 여전히 소설 쓰기가 재미있고요.

“일단 소설은 숙련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재미가 있어요. 매번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정이 설렘을 주기도 해요. 제가 나이 들면서 ‘중견 작가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없는데, 내가 쓸 수 있는 소설이 뭔가 있을 것이다, 무겁게 말하면 어떤 책무감 같은 게 있어요. 제약을 느낀다거나 경력이 쌓여서 이런 베네핏이 있다거나 그런 건 못 느껴요. 쓸 때는 다 같은 기분으로 시작하니까요.”


그 사이 박경리 선생님, 박완서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죠.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고 에세이에 쓰기도 했는데요.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문인 중에) 이렇게 앞자리에 와버렸구나, 싶을 땐 없나요?

“(웃음) 뭔가 해놓아야 한다는 걸 느낄 때는 가끔씩 있어요. 앞의 선생님들이 계셨으면 좋겠다, 하는 거는 자연스러운 감정 같은 거죠. 아, 이런 건 있어요. 제가 가령 어떤 외국 작가의 팬이에요. 줄리언 반스의 새 책이 나오면 번역되기를 기다리거든요. 줄리언 반스의 책은 이미 많아요. 하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지금의 언어로 지금의 감각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읽고 싶어요. 그래서 기다려요.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에 이르면 작가들이 활동하기 어려워요. 지면도 없고요. 독자들도 ‘저 사람 이야기는 이제 다 들었어’ ‘언제 적 누구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당시 그런 통찰을 가진 작가가 인생의 통찰을 더해 지금의 언어로 쓰는 걸 보고 싶기 때문에 선배들도 많이 써주길 바라고, 저도 쓰고 싶어요.”


“소설가의 삶이 소설이 된다”는 게 그런 의미군요.

“사실 소설 쓸 때마다 이게 슬럼프인가 싶어요. 그럼에도 꾸준히 쓰고 있고 잘 써질 때도 있고 안 써질 때도 있어요. 시작할 때는 항상 힘들고요. 하루 중 오전에는 작가로서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글을 읽고 글을 쓰고요. 가사노동이나 사회생활은 되도록 안 하려 하고요. 오후부터는 일상생활을 하고 술도 마시고 친구도 만나죠.”


일산에서만 쭉 생활하셨죠. 신도시가 이제 구도시가 되어갑니다.

“3년 전쯤에 일산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게 20년 만의 이사예요. 요즘엔 집에만 있다 보니 안 하던 걸 하게 되네요. 전에는 여행을 자주 다녀서 화분을 안 들였거든요. 화분을 기르다 보니 허브를 키우게 되고 칵테일을 만들게 돼요. 요리를 하고 그릇을 사게 되고요. 그런데 분주해지면 ‘아휴, 나 작가인데(웃음)’ 할 때가 있어요. 이렇게 작은 변화가 제 일상 루틴에 큰 변화를 줄 때가 있어요. 차도 20년 만에 바꿨어요. 제가 그 차를 타는 동안 자동차 기술이 엄청 발달했더라고요. 저는 후방 카메라도 없었거든요. 차를 바꾸니까 갑자기 적응이 안 되는 거예요. 이 오토매틱한 시스템이 낯설어서 운전을 피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대중교통을 많이 타게 되고요. 그럼 또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달라져요. ‘내가 모르는 게 여전히 많구나, 내가 업그레이드돼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또 재밌어요.”


계속 업그레이드하다가, 아휴 이제 좀 안주하자 싶을 때는 없으세요?

“저도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50대 초반까지는 했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도 나는 ‘길눈이 어두워’ 했지만 지금은 그걸 보완하려고 앱도 잘 쓰고요. 나이가 많으니까 뭔가 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게 삭제되면서 정해진 바운더리 안에서 오히려 운신의 폭은 커졌어요. 저도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주 잘하긴 힘드니까 그냥 이 정도라고 설정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이렇게 내 나이와 어떤 조건에 맞는 인생을 정돈하면서 어떤 건 삭제하거나 포기하고, 또 어떤 건 활용하면서 가려고 해요. 이젠 새 차로도 운전 잘해요(웃음).”


이렇게 꾸준히, 성실히 업그레이드를 해와도 소설은 숙련이 어렵군요.

“소설은 기능이 아니니까요. 작가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처음 작가가 되려고 했을 때 좋아했던 책인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의 기본적인 생각에 영향을 미쳤는데, ‘작가에게 새롭지 않은 건 부도덕하다’는 거예요. 그걸 왜 또 쓰냐, 남의 시간을 뺏고. 새롭다는 것에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남들도 똑같이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재밌게, 세련되게, 다정하게 하는 것 말고 어떤 글에는 생각지도 못한 발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발견해내는 과정에서 작가로서의 자의식, 개인으로서의 성취감이 있어요. 내가 괜찮은 사람 같죠.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웃음).”


소설을 쓰며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고도 했죠.

“사람은 나에 대해서 생각을 제일 많이 해요. 그런데 ‘난 뭘 하고 싶다’ ‘난 뭐가 되고 싶다’ ‘난 뭘 갖고 싶다’ 이런 욕망과 관련된 질문과 ‘나는 어떤 사람이지’라는 질문은 다른 것 같아요. 상처받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자기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질문을 해보는 거죠. ‘그때 나는 왜 그랬지’를 물으면서 나를 둘러싼 생각과 시스템을 보는 거예요. 제가 미국에서 어떤 터널을 지나다 흑인을 만났는데 긴장을 했어요. 저 스스로 질문하는 거죠.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왜 그랬을까. 어떤 시스템이 나에게 이렇게 작동했을까’를요.”


나의 욕망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나를 통해 세상을 보는 질문이군요.

“나라는 이 육체와 사회적 조건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거예요.”


“‘선배가 생각하는 진화란 게 뭐예요?’
‘모두들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진화야.
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인간을 배척하게 돼 있어.
하지만 야생에서는 달라야만 서로 존중을 받지.
거기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사는 곳도 다르고 먹이도 다르고 천적도 다르고,
서로 다른 존재들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야.’”
-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중


나는 나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영원히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 대해, 타인에 대해, 세계에 대해 알아가려는 질문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동안, 그 질문에 골몰하는 동안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원래 그런 것’도 ‘그래야만 하는 것’도 없는 자유 속으로.

《새의 선물》에서 ‘보여지는 나’와 ‘실제의 나’를 분리해 자신을 지켰던 열두 살의 강진희는, 이제 ‘내가 욕망하는 나’와 ‘실제의 나’를 분리해 세계와 간극을 좁혀간다. 그 욕망은 어떤 시스템에서 왔는지, 그 생각은 정말 내가 한 것인지를 질문하면서.

은희경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이, 세상이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더라도 위축되지 않고 불안한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으며 고독 속에 연대하기를 바란다. 누가 무엇이라 부르더라도, 그에게 어떤 계급과 인종과 성별과 직업이 덧씌워지더라도 장미는 여전히 장미일 테니.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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