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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이름은 은희경 ①

25년 동안 끝나지 않은 질문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은희경
서른다섯 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와 장편 소설 《새의 선물》을 비롯해 꾸준히 글을 써왔다. 문학동네소설상,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 열다섯 번째 소설집인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냈다.
문학이 하려는 일은 “모든 개인에게 개인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말했다. 은희경 작가가 소설을 통해 줄곧 해오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등단 이후 27년 동안 열다섯 권의 책을 냈다. 1995년 〈이중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했고, 같은 해 《새의 선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았다. 작가가 등단한 해에 문학상을 받은 건 1970년대 이문열, 1980년대 장정일 그리고 1990년대 은희경 단 세 사람의 기록이다. 당시 서른다섯, 그에게 쌓인 삶의 티끌들이 문득 화산처럼 터져 나온 것인데, 그 안에 쌓인 건 질문이었다. 은희경 작가가 자란 시절은 개인이 개인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던 때였다. 이들은 다만 시대를 위한 산업화의 역군이거나 집단을 위한 부품으로 길러졌다. 그는 그때부터 ‘~다움’의 억압이 부당하다 느꼈는데 그 역시 부당한 이데올로기에 적당히 협력하며 살아온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의심이 질문이 되고, 질문이 소설이 됐다.

“그렇게 해서 만든 그 공간은 또 하나의 틀이 될 뿐이다.
어머니가 내게 그랬듯, 내 딸을 ‘나’라는 틀 속에서 키워 또다시 하나의 틀로 만드는 것이,
그런 체념적인 담보가 여자들의 삶인가.
인혜는 취했다.
취했으므로 지금 전혀 자기답지 않은 것에 매력을 느낀다.
자기답지 않은 방임, 자기답지 않은 과장, 그리고 자기연민.”
-
등단작, 〈이중주〉 중


물론 소설가는 스승이 아니고 소설은 정답이 아니다. 다만 독자는 소설을 통해 내 삶이 아닌 삶을 살아볼 수 있다. 은희경 작가의 말대로 “아름다운 사랑의 이면의 냉정한 현실”을 혹독히 앓기 전에, 예방주사라도 한 방 맞을 수 있다. 은희경에게는 사소한 변화, 사소한 뒤틀림, 사소한 균열 같은 순간의 포착이 모여 소설이 된다. 그의 소설작법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작가에게 새롭지 않은 건 부도덕하다”고 했다. 그 새로움을 좇아 25년을 왔다. 올해 《새의 선물》 100쇄가 나왔다. 작가로서는 남다른 기록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질문이 생긴다. “당시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것인가.”


이번 책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질문을 갖고 시작했으나 반성문을 쓰며 마친 것 같다고 작가의 말에 적었습니다.

“첫 소설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쓸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가까운 사람인데도 여전히 모르겠고, 내가 저 사람에 대해 이것만은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그게 아닌지 너무 오래됐고… 그렇다면 사람을 내가 먼저 속단하거나 또 상대방을 그런 사람이라고 내가 결정했을 수도 있겠구나’ 누군가를 ‘진짜 이해해보겠어’라고 한들 사람은 또 변하니까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를 질문하면서 글을 썼어요.”


그런데 어떻게 반성문으로 마치게 됐을까요.

“사실 ‘사람들은 왜 나를 오해할까’를 생각하며 썼는데 ‘나도 타인을 오해하고 상처 주고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걸 아주 객관적으로 써야만 내가 이 부끄러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고요. 나중에 읽어보면서 그래도 이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됐다’ 싶어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유는 어떤 모양인가요.

“어떤 질문의 끝까지 가보는 거죠. 그러면서 새로운 생각을 만나게 되고요. 글은 내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실험적 자아를 탐구하는 거라, 최대한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려고 해요. 이번 소설의 배경이 뉴욕인데 정서가 확장돼서 이방인까지 갔어요. 가까운 사람이 날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이방인은 날 어떻게 대하느냐까지 갔죠.”


뉴욕에 가보지 않았는데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여행자로서는 환대받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려 하면 벽이 생기는 느낌이요.

“꼭 외국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이방인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나도 어제와는 다른 나고 그도 어제 그 사람은 아닌 거죠. 매일 낯선 하루를 산다고 생각해요. 우리 안의 아웃사이더나 소수자의 정서는 기본 컨디션이에요. 혹 나는 절대 소수자나 이방인,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이 낯선 세계에서 아주 잠깐이라도 그런 순간을 피하고 살 수는 없죠.”


“…그리고 자신의 소심함과 방어적인 수동성에 신물이 나서 갑자기 어학연수 같은
최악의 결정을 한다. 사실 수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뿐 아니라 자신에게서도 도망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잘못된 장소로 와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해도 되돌아 나가서 다른 경로를 찾기에는 두려운 나이, 결코 나아질 리 없는데도 그럭저럭 머물게 되는 계약직 생활,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불현듯 깨닫게 만들었던 깨어지고 부서져서 결국 사라져버린 관계들.
수진은 이곳으로 떠나오면 그녀를 규정하는 나이와 삶의 이력에서
잠시나마 이탈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
《장미의 이름은 장미》 중



관습적으로 쓰는 표현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죠. 이를테면 위로라든가, 멘토라든가 흔하고 쉽게 쓰이는 말들이요.

“위로는 ‘힘내’ ‘괜찮아’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동료가 되어주고 편이 되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상대는 시혜를 바라는 게 아니라, 저 멀리 그 건너편에서 동정이나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내 곁에 와서 같이 있어주는 연대를 바라거든요. 피상적이고 무책임하고 관습적인 위로가 아니고요. 또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생각을 알려줄 멘토를 찾게 돼요. 그 멘토가 생각하는 대로 따라가려고 하거든요. 자기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살펴보게 되고요.”


관습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한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군요.

“자기 존재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작가는 늘 공부해야 해요.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누구에 의해 조종되는지,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지,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해요. 저는 무지라는 게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무지는 지적인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안 배우려고 하는 태도 같아요. 내가 아는 게 다고, 이게 다 결론이 났다고 생각하는 게 무지예요. 그러면 현재에 화가 많이 날 수 있어요. ‘이건 내가 알던 것과 다른데, 옛날엔 그걸로 충분했는데 지금은 왜 그럴까’ 하다 보면 ‘내가 맞고 지금은 틀렸다’고 이야기하기 쉽거든요. 저도 긴 시간을 살아와서 나쁜 게 많이 쌓여 그런 방식으로 먼저 생각해요. 그게 쉽고요. 하지만 세상은 공부를 해야 해요.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려고 해요. 어떤 사람들은 제 소설이 ‘차갑다’고 하는데 그런 면일지도 몰라요.”


생의 이면이 너무 잘 드러나서 사뭇 서늘한 느낌은 있죠.
어떻게 이렇게 낱낱이, 샅샅이 알 수 있을까 싶은.


“저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려고 애쓰고요. 늘 보는 거지만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다른 입장에서 보면 또 저런 입장도 있을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겨두죠. 내 생각을 다 채우지 않고 다른 생각이 들어올 공간을 두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알아야 할 게 많아요.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 차가운 마음은 품어본 적은 없어요. 그랬다면 인간에게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소설 쓰는 게 재미가 없었을 텐데 저는 여전히 너무 재미있어요. 소설 쓰는 일은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걸 잘하면 내 인생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하거든요. 그건 인간에 대한 사랑, 행복하길 바라는 응원과 지지가 있기 때문이고요.”

〈유슬기의 이작가야, 작가 은희경 2편으로 이어집니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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