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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피아니스트 임동혁 ①

불온한 시대에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글·사진 : 김민희 기자

임동혁
퀸 엘리자베트·쇼팽·차이코프스키 등 세계 3대 콩쿠르를 석권한 피아니스트.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추천으로 최연소로 클래식의 명가 EMI에서 발표한 데뷔 음반은 ‘황금디아파종상’을 수상했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며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장소협찬 : 오드 메종(@ode.seoul, 010-4057-4091)
ⓒ 한국문화재재단
“귀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귀를 즐겁게 해서 기쁘게 소리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금을 대하는 세공사의 손길처럼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보내는 편지》(장 파시나 지음) 중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린 피아니스트는 임동혁이었다. 보석을 다루는 세공사의 손놀림처럼 한 치의 오차 없는 엄정함만이 소리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의 감정이 앞서가면 클래식의 품위가 살지 않고, 지나치게 교조적으로 해석하면 지루해지기 쉽다. 임동혁은 이 둘의 균형감을 기막히게 유지하면서 ‘노래’한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그저 거들 뿐, 그는 세상의 선율들을 손가락 끝으로 포집해 노래하듯 연주한다.

전설의 연주로 회자되는 임동혁의 베토벤 소나타 〈월광〉을 듣다가 목울대가 뜨거워진 적이 있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슬퍼진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극도의 아름다움은 짙은 슬픔을 안긴다는 걸 알게 됐다. 그저 ‘아름다운 슬픔’이라는 표현으로는 치환할 수 없는, 결이 다른 슬픔의 색채들이 수백 겹의 페스츄리처럼 한 겹 한 겹 느껴졌다. 어떤 슬픔은 감미로웠고, 어떤 슬픔은 한겨울 유리창처럼 차가웠고, 또 어떤 슬픔은 지독한 고통처럼 파고들었다.

임동혁이 클래식 연주자 최초로 팬클럽을 거느린 비결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의 말마따나 “손가락 끝에 바늘을 단” 듯한 연주는 그 순간, 건반의 그 지점을, 그 정도의 힘으로 눌러야 가능한 소리였다. 지독히 정밀한 음악적 해석의 결과로 탄생한 그의 연주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그 충만한 감동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의 스페셜리스트로 임동혁이 꼽히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일지 모른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올해 그가 선택한 음악가는 슈베르트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라고 종종 언급해왔기에 임동혁의 슈베르트 앨범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퍽 반가운 소식이다. 6집 앨범 수록곡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 세 곡 중 두 곡 〈D959〉 〈D960〉. 31세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가 그해 연달아 작곡한 곡이다. 마지막 창작혼을 불사른 음악적 유언이기에 스케일도 크고 구조도 복잡하다. 생기 넘치는 스케르초 악장이 있는가 하면 고통과 체념이 가득한 악장도 나오고, 조용하고 내면적인 코다(재현부)도 등장한다. 운명을 드잡이질하는 인간사의 모든 감정이 담겨 있다고 봐도 좋다.

전국 투어 중인 임동혁과 복합문화공간 오드 메종에서 마주 앉았다. 12년 만의 일대일 인터뷰였다. 2010년 인터뷰 당시 스물여섯 살의 그는 앳된 소년과 청년 사이의 경계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2022년 서른여덟 살의 그에게서는 대가다운 묵직함이 전해졌다.


12년 만의 인터뷰예요. 당시 임동혁 씨에 대해서 “생각의 속도가 말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표현을 쓴 기억이 나요. 요즘의 언어 구사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논리정연하더군요.

“그만큼 제가 나이를 먹은 거죠(웃음).”


독서도 많이 하지요?

“한때는 많이 읽었어요. 책 한 권 들고 화장실에 가면 볼일을 다 봐도 재밌어서 끝까지 읽곤 했는데, 스마트폰 시대에는 재밌는 콘텐츠가 워낙 많다 보니 독서를 자주 안 하게 돼요. 밀리의 서재 회원이라서 수시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엔 이국종 아주대 응급의학과 교수가 쓴 《골든아워》를 재밌게 읽었어요.”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나요?

“많아요.”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대해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이 회원자격 박탈을 논의한다고 하지요. 러시아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콩쿠르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건데요. 임동혁 씨는 이 콩쿠르에서 4위를 차지한 적이 있고 모스크바 국립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졸업했는데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 음악가로서 생각이 궁금해요.

“이건 러시아 차원의 문제라기보다 푸틴의 문제로 보는 게 본질일 것 같아요. 푸틴은 내셔널리즘이 강한 대통령이에요. 러시아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고, 자부심도 대단하고, 러시아 문화를 지키고 선진화하는 데 앞장섰어요. 대표적인 예가 음악가에 대한 대우예요. 한때 러시아 오케스트라 단원의 월급은 15만 원 수준이었어요. 이런 현실에서 실력 있는 사람이 러시아에 남겠어요? 외국으로 나가죠. 푸틴이 집권하면서 300만 원 수준으로 파격 인상시켰어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도 마찬가지예요. 불공정하고 상금도 적다는 이유로 권위가 바닥이었어요. 이 권위를 되살린 게 푸틴과 게르기예프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러시아에서 음악가로 성공하려면 푸틴과 친구가 돼야 한다는 말까지 있었어요. 이런 것들이 정당한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러시아인 중에도 러시아 전쟁을 옹호하지 않는 사람이 많거든요. 예술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팬데믹과 전쟁이라는 불온한 시대에 콘서트장을 다니는 게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있어요. 자책감도 들고, 일종의 현실 도피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이런 시대에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음악가는 자기가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돼요. 전쟁이 났다고, 팬데믹 상황이라고 하던 걸 덜 하거나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느냐, 안 하느냐는 개인의 자유죠. 저는 정치색을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건 지양하려 합니다.”


당신이 음악가로서 가는 길은 어떤 길인가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뇌하고, 음악의 다양한 차원의 감동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거예요.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깊은 비극미를 가질 수 있는지, 그러면서 누군가를 얼마나 위로할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알려주는 거죠.”


그 전달의 층위가 나이 들수록 풍부해지던가요?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바뀌듯 음악 세계도 바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좀 더 초월한 느낌이 있어요.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전달하려 했다면, 지금은 내려놓은 듯한 느낌. 음악에 진솔해야 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고요.”


12년이라는 시간이 짧지는 않지만, 임동혁 씨에게 그 세월은 유독 농밀하게 흐른 느낌을 받아요.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생 겪을 고생이나 비극을 짧은 시간에 다 경험하긴 했어요. 그래서 누군가 저에게 ‘무슨 일 있어?’ 하면 ‘여기에서 무슨 일이 더 있으면 죽는 거 아니에요?’라고 농반진반으로 답변하곤 합니다. 나이 들수록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요. 수명이 다해서, 병이 들어서….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에요. 꽤 여러 명이 떠나갔죠. 아픔들을 특히 많이 겪은 것 같아요.”


그동안 그는 흔치 않은 아픔들을 겪어냈다. 가장 큰 슬픔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중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는 임동민·동혁 형제의 재능을 알아보고 두 아들의 매니저 역할로 전업했다.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날아갔고, 어머니는 헌신적으로 형제의 뒷바라지에 힘썼다. 어머니가 요구하는 연습량은 두 형제에겐 가혹하게 느껴졌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연주자의 길에 발판이 됐다. 그런 어머니가 그의 나이 25세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당사자에게는 가혹한 말이지만, 그 고뇌의 시간들이 음악가에게는 성장과 성숙의 계기가 되기도 할 테지요.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누구한테도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음악을 대하는 시선도 달라져요. 음악 앞에서 더 겸손해진 것 같아요.”


이미지도 꽤 바뀌었어요. 2010년에는 47kg이었더군요.

“체중 변화가 심한 편이에요. 한국에만 오면 살이 쪄요. 작년에는 72kg까지 나갔어요. 지금은 57kg인데, 55~56kg 정도가 편해요.”


최적의 연주를 위해 무대에 오르기 전 리추얼이 있나요?
공연 날 점심은 장어덮밥을 먹는다고 들었어요(웃음).


“홍삼음료를 한 병 마시고, 바나나도 챙겨 먹어요. 리추얼이라기보다 힘을 내기 위해, 무대 위에서 에너지가 방전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거예요. 또 손을 잘 안 씻어요. 손가락에 유분기가 없으면 좋은 연주를 하기 어렵거든요. 일어나서 연주하기 전까지 아예 손에 물을 안 묻히려 해요.”


무대를 앞두고 연습량이 많기로 정평이 나 있지요. 300을 연습해야 90만큼 보여줄 수 있고, 100을 연습하면 30만큼 보여줄 수 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무대 위에서 실력 발휘가 잘 안 되는 유의 사람이에요. 무대에 서면 평소보다 더 잘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저는 청중 앞이라고 더 힘이 나지는 않아요. 물론 텅 빈 홀보다는 청중으로 꽉 찬 무대가 좋지만요. 청중이 좀 덜 왔으면 싶을 때도 있어요. 못 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으니 최대한 적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최근엔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코로나 자가 진단키트로 검사를 했어요. 속으로 ‘제발 확진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최대한 깊숙이 콧속으로 면봉을 넣어요. (일동 웃음) 두 줄이 뜨면 연주를 안 할 수 있으니까.”


자신에게 엄격하군요.

“엄격하죠. 엄격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피아니스트 임동혁 2편으로 이어집니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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