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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의 응시 ⑧

나무는 푸르렀고 그저 나무였다

“내가 ‘자연’이라 부르는 것 중 가장 신중하고 무해하며
용맹하고 변하지 않으면서 날마다 새로운 건 나무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나무는 처음 자리 잡은 곳을 떠나지 않는다.
죽더라도 그 자리에서 죽는다.
나무는 속임수가 없다.
까닭 없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 gettyimages
몇 해 전 베를린으로 여행을 갔다. 인천공항에서 베를린까지 비행기를 갈아타며(검색대에서 시간을 끌어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밤늦게 호텔에 도착했다.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물며 느긋하게 보내는 여행을 계획했기에 숙소를 고르는 데 공을 들였다. 며칠 동안 검색해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다소 비싼 가격에 예약했다.

한여름이었고 밤이었고 베를린은 처음이었다. 기대를 많이 하면 낭패를 보게 되는 걸까. 내가 지불한 비용만큼 호텔이 훌륭하기를 바랐고, 상상한 것보다 현지 분위기가 좋기를 바랐지만 그렇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는 동안 호텔 직원들은 무뚝뚝했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진동하는 악취에 코를 막아야 했다. 냄새의 원인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에서 시작된 냄새가 방 안까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 이런 걸 겪으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부글부글 끓었다. 피곤에 절은 남편도 실망한 듯 보였지만 말을 아꼈다.

호텔 프런트에 전화해 못하는 영어로 ‘terrible’과 ‘bad smell’을 외치며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은 현재 방이 없으니 내일 빈 방이 나오면 교체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방을 바꿀 심산으로 짐도 풀지 않은 채 잠을 청했다. 화장실 환풍기를 밤새 틀어두고, 방 창문은 열어둔 채 피곤에 지쳐 잠들었다. 호텔 지하에 있는 클럽에서 ‘쿵쿵’ 진동을 머금은 음악 소리가 창문 새로 올라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른 곳에 도착한 듯 기분이 좋아졌다. 진짜 베를린! 침구는 어젯밤보다 푹신하게 느껴졌고 밤새 환기를 시켜둔 덕에 악취도 사라졌다. 언제 나갔다 왔는지 뜨거운 커피와 도넛을 사온 남편이 아침식사를 차려뒀다. 가장 놀라운 건 이 방의 창문이었다. 널따란 창문 한가득, 여명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잎의 푸름이 보였다. 초록으로 가득 찬 창문을 내다보며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방은 창문이 명물이네!”

커다란 나무 앞에 서니 안 좋았던 기분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간밤에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풀어졌다. 호텔 직원이 방을 바꿔주겠다고 연락해왔을 땐 변덕이 죽 끓는 여자처럼 정말 좋다고, 모든 게 완벽하다며 방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왜 바꾸겠는가? 기댈 수 있는 ‘내 나무’가 창밖에 서 있는 방을 가졌는데! 방에 앉아 좋아하는 나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든든한 수호신을 곁에 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준다.


마음을 휘게 만드는 힘

베를린에서 8일을 지내는 동안 가장 좋아한 일은 ‘호텔 방에서 나무 바라보기’였다. 아주 커다란 나무라 전체 모양을 볼 순 없고, ‘떼 지은 이파리들의 합창’을 관람하듯 나뭇잎을 보고 듣는 일, 그게 전부였다. 어떤 나뭇잎은 춤추는 것 같고, 어떤 나뭇잎은 조는 것 같고, 어떤 나뭇잎은 조잘조잘 떠드는 것 같았다.

얼마 전 선배 시인이 새로 나온 시집 표지 색을 두고 “요새(사월) 막 푸르러진 버드나무 색”과 똑 닮았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사월의 버드나무, 그 이파리 색은 참 예쁘다고. 버드나무는 사람 마음을 어느 쪽으로든 휘게 만드는 데가 있다. 버드나무 앞에 서면 이상한 마음이 드는 게다. 똑바로 서 있는데도 마음이 휘청이는 것 같고, 누군가 고개를 수그린 채 우는 장면을 마주한 것 같기도 하고, 죽은 사람들이 투명하게 우르르 몰려와 나뭇잎에 매달려 그네를 타는 것 같기도 하다. 한밤의 버드나무는 귀기 어리다. 혼자 버드나무 선 길을 걸을 때면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된다. 버드나무가 긴 머리채로 나를 낚아채 갈 것 같고, 갑자기 이파리들로 내 몸을 덮을 것 같기도 하다. 한낮의 버드나무는 선녀 같다. 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한곳에 서서 바람을 맞는 여인 같다. 오래전 나는 ‘고요한 싸움’이란 시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버드나무 아래서 기다래지는 생각
버드나무는 기다리는 사람이
타는 그네”

버드나무는 기다리는 사람에겐 그네가 되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생각의 줄기가 되어준다. 사월에 피어나는 작은 버드나무 잎에는 사람의 마음을 연하게 무두질하는 힘이 있다. 작고 부드러운 이파리들이 경직된 마음을 무두질해준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자연친화적’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말인가!

한곳에서 나무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리석은 생각은 작아지고 나쁜 마음은 잘려 나간다. 비관적인 생각으로 어두웠던 내면에 고요가 차오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버드나무 잎의 아름다움을 말했던 선배가 메시지로 사진 두 장을 보내왔다. 꽃 핀 산수유나무와 꽃망울이 잔뜩 맺힌 벚나무 사진이다. 그는 며칠 전 ‘자연친화적’이란 말이 얼마나 바보 같은 말이고, 인간 중심적인 말인지 꼬집었다. 이미 자연을 ‘대상’으로 두고 말하는 자세를 비판했다. 그가 시 속으로 곱게 불러오는 자연은 설명되는 게 아닌 자연이라 했다. 어깨를 같이해 그냥 보고 옆에 머무르는 자연이라고. 나는 그의 말에서 “설명이 되지 않는” 자연이란 말이 가장 좋았다.

겨울을 살아낸 나무들은 ‘봄의 명랑’을 옷으로 입고 외출한다. 이동이 아니라, 율동을 추구하는 외출이다. 같은 자리에서 움직이기. 흔들리기. 피었다 지기. 나무의 율동엔 리듬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꽃을 피우고 잎을 뾰족이 일으키는 나무의 힘엔 리듬이 있다. 딱딱한 껍질을 뚫고 솟아나는 작고 부드러운 것들이 연주하는 음악이여! 만개하기 전 꽃망울이 맺힌 벚나무를 열 걸음 떨어져서 본 적 있는가? 그때 벚나무는 간질간질, ‘분홍 재채기’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서 벚나무들이 본격적으로 재채기를 시작한다면! 분홍을 밀어낸 흰 빛이 화사하게 터져 나올 게다. 만개한 벚꽃은 너무 화사해서, 오히려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떨어질 일을 염두에 둬서일까. 가장 좋은 것, 그다음은 쓸쓸함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가장 눈부신 사랑, 사랑의 절정엔 ‘살림’이 없어.” 선배 시인은 말했다. 나는 꽃이 진 나무의 그다음, ‘나무의 살림’을 생각한다. 잎을 내고, 열매를 맺고, 잎을 떨군 뒤 나무의 지난한 살림을 그려본다. 꽃나무 앞에서 한숨을 쉬던 어른들의 마음, 벚꽃 한창일 때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작은 등이 떠오른다.


마음대로 흔들릴 수 없을 때

나무는 단순하지 않다. 나무 안엔 단단함과 부드러움, 축축함과 건조함, 부동성과 유동성, 성장과 늙음, 화려함과 수수함, 고요함과 수선함, 크고 작음, 수평과 수직이 고루 들어 있다. 나무의 뿌리, 흙을 움켜쥔 손가락 같은 뿌리는 성장의 열쇠다. 나무는 뿌리를 이용해 흙을 움켜쥐고 물을 흡수하고 어둠 속에서 기지개를 켜며 성장한다. 이파리가 마음껏 흔들릴 수 있는 건 뿌리 덕분이다. 뿌리가 아래에서 튼튼하게 버티고 있기에 위가 가벼이 흔들릴 수 있다.

힘들 때 내 마음대로 실컷 흔들릴 수조차 없는 건 내 마음의 뿌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까? 가끔 그 창가 앞이 생각나 베를린에 가고 싶다. 그 호텔, 창문 가득히 내 나무가 일렁이던 방에 다시 가고 싶다. ‘살림’보다 ‘사랑’에 적을 두고 살던 때. 그때 나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쓰다가 잠깐, 오래 걷고 돌아와 잠깐,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깐 나무를 보았다. 나무의 이름 따윈 궁금하지도 않았다. 나무는 푸르렀고, 그저 나무였다.

내가 ‘자연’이라 부르는 것 중 가장 신중하고 무해하며 용맹하고 변하지 않으면서 날마다 새로운 건 나무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이상 나무는 처음 자리 잡은 곳을 떠나지 않는다. 죽더라도 그 자리에서 죽는다. 나무는 속임수가 없다. 까닭 없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가끔 궁금하다. 나무도 이곳에서 벗어나 다른 데로 가고 싶을 때가 있을까? 가만히 앉아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내게 나무가 이파리를 흔들어 보인다.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 나는 늘 움직여. 매일 이곳을 떠나. 매일 다른 나무가 되고, 다른 세상을 본단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는 힘을 뺀 채 바람을 따라간다. 춤추는 이파리들. 나무는 자유다.

글쓴이 박연준은 이 시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젊은 시인 중 한 명이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밤, 비, 뱀》, 산문집 《소란》 《쓰는 기분》 등을 썼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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